산포로산행기 289

[겸재 그림 길 (59) 미호 ①] 미사리 건너 ‘미호’를 두 번 그린 뜻은?

[겸재 그림 길 (59) 미호 ①] 미사리 건너 ‘미호’를 두 번 그린 뜻은?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겸재의 그림을 따라 한강을 거슬러 오르기를 행호(幸湖, 杏湖: 행주산성)에서 시작하여 어느새 광나루 지나 남양주 미호(渼湖)까지 올랐다. 미호라는 강 이름은 이제 잊혀진 이름이 되었지만 미호나루 건너편 강 마을이 아직도 미사리(渼沙里)란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한강의 어디쯤인지는 짐작이 되리라. 남양주 구리시 왕숙천에서부터 대략 덕소에 이르는 한강 구간을 미호(渼湖)라 불렀다. 강 건너 하남 쪽은 미사리 모래벌판이었다.분원(分院) 앞을 지난 한강 물이 예봉산과 검단산 사이 협곡을 빠르게 내려오다가 팔당대교(옛 도미나루)를 지나면 강폭이 넓어지면서 유속은 느려지고 퇴적물이 쌓인다. 이렇게 쌓여 ..

산포로산행기 2024.06.28

[겸재 그림 길 (58) 광진(廣津) ②] 삼국쟁패부터 온달까지 굽이굽이 아차산

[겸재 그림 길 (58) 광진(廣津) ②] 삼국쟁패부터 온달까지 굽이굽이 아차산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옛사람은 산수화(山水畵)를 와유(臥遊: 누워서 유람한다는 뜻. 집에서 명승이나 고적을 그린 그림을 보며 즐김을 비유)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필자는 겸재의 그림 글을 쓰면서 행유(行遊: 그 반대의 의미로 쓴다면)를 위한 글로 쓰기 시작했다. 겸재의 그림을 보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겸재의 많은 그림들은 본인이 잘 알고 있는 산과 물을 그렸다는 점이다. 특히 인왕산과 장동, 양천, 내연산 같은 곳은 속속히 밟아 보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점들이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겸재는 와유층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자신은 많은 대상 지역을 행유(行遊)했을 것이다. 이제 겸재의 광진(廣津) 도(圖)를 따..

산포로산행기 2024.06.21

[매월당 싯길 (6) 금강산길, 김화] 그가 간 길은 분단되고, ‘꽃강’만 흐르네

[매월당 싯길 (6) 금강산길, 김화] 그가 간 길은 분단되고, ‘꽃강’만 흐르네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매월당은 날이 밝자 행장을 꾸려 다시 금강산 길에 오른다.영평현 관아는 지금의 포천 영중면 양문리에 있었다. 옛 양문역(梁文驛)이 있던 지역이다. 북관대로(北關大路: 경성과 함경도 경흥을 잇던 길)는 강원도 김화(金化)로 향한다. 지금의 43번 국도인데 달리 호국로라 부르고 있다.길을 나서 북으로 방향을 잡으니 길 옆 작은 산줄기에 고성(古城)의 흔적을 만났을 것이다. 명성산(鳴聲山)에서 이어져 온 산줄기인데 918년 궁예가 왕건에게 최후를 맞은 산성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곳 마을 이름은 지금도 성동리(城東里)이니 긴 인연을 가진 마을 이름이다. 산봉우리에는 후세에 순조의 큰아들 효..

산포로산행기 2024.06.14

[겸재 그림 길 (57) 광진(廣津) ①] 70대 영조가 정조 데리고 광나루 건넌 뜻은

[겸재 그림 길 (57) 광진(廣津) ①] 70대 영조가 정조 데리고 광나루 건넌 뜻은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어느덧 격세지감이 느껴지지만 한강에서 물놀이가 성행하던 날들이 있었다. 지금은 한강 고수부지에 인공 풀을 만들어 물놀이를 즐기는데 요즈음의 해수욕처럼 ‘강수욕’을 즐기던 시절에 서울 동쪽에는 뚝섬유원지와 광나루유원지가 삼복의 더위를 식혀 주었다.뚝섬유원지는 삼전도 나루 북쪽 지금의 시민의 숲 앞 백사장이었고, 광나루유원지는 워커힐 쪽과 건너 천호동 쪽 강변 백사장에 인파가 몰렸다. 겸재의 동문조도(東門祖道)를 소개할 때 이미 살펴보았듯 동대문에서 기동차가 출발하여 뚝섬과 광나루를 연결해 주었다.영조 17년(1741년) 그린 것으로 알려진 경교명승첩 속 광진(廣津)도(圖)를 보면 아차..

산포로산행기 2024.06.07

[겸재 그림 길 (88) 경포대] 경포대의 편액들을 혹평한 강릉 천재 허균

[겸재 그림 길 (88) 경포대] 경포대의 편액들을 혹평한 강릉 천재 허균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한국의 중년 이상 세대에게 강릉(江陵)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던 이미지가 경포대와 신사임당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요즈음 세대라면 아마도 커피와 힐링이 그보다 앞설 것 같다. 강릉을 가게 되면 길동무들에게 항상 묻는 질문이 있다. 경포대를 가 보았느냐고. 그러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며 누구를 무시하는 거냐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막상 경포대에 가면 반쯤은 “아니, 바다로 안 가고 어디로 가느냐?”고 한다. 많은 이들이 경포대 해수욕장을 경포대라 생각한다. 젊은 날 여름이면 가고 싶어 했던 곳이니까. 그리고 경포대 간다 하면 그 바닷가로 갔으니까. 필자도 제일 먼저 접한 경포대(鏡浦臺)는 그 해수..

산포로산행기 2024.05.31

[겸재 그림 길 (87) 낙산사] 왕족이 태어나고 원효대사가 망신당한 낙산사

[겸재 그림 길 (87) 낙산사] 왕족이 태어나고 원효대사가 망신당한 낙산사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오늘은 겸재의 해악진경(海嶽眞景) 병풍 그림 속 낙산사를 찾아간다.간성(杆城) 청간정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는데, 걷는 이들이라면 동해를 곁에 두고 해파랑길을 걸어 내려가는 길이다. 속초를 지나 양양 땅에 들어서면 옛 지도에 물치시(沕淄市)라고 쓰여 있는 물치항을 지나고 머지않아 낙산사(洛山寺)에 닿는다.양양(襄陽)은 지금은 강릉과 속초 사이 조그만 읍이지만 한때는 양양도호부(襄陽都護府)였다. 한양에서 이쪽을 가려면 산줄기를 넘어야 하는데 북쪽으로부터 오색령(五色嶺, 지금의 한계령), 박달령(朴達嶺, 또는 弼如嶺), 조침령(阻枕嶺), 구룡령(九龍嶺)이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이들이 종주..

산포로산행기 2024.05.25

[매월당 싯길 (5) 금강산길, 영평] 없어진 영평 지나 무릉도원 향해 가다

[매월당 싯길 (5) 금강산길, 영평] 없어진 영평 지나 무릉도원 향해 가다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포천에 날이 밝자 매월당은 금강산 길에 다시 오른다. 운수납자(雲水衲子: 수행승)의 유람 길이니 달리 바쁠 것도 없다. 길은 태조 이성계도 무수히 다녔을 북관대로(北關大路)다. 말이 대로이지 우마차 하나 제대로 가기 힘든 오솔길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만세교를 지나면 이윽고 영평(永平) 땅이다. 지금으로 보면 43번 국도를 따라 북으로 가는 길이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통행인도 늘어 이 다리 옆에는 다리(脚)를 쉬어 갈 수 있는 가겟집도 하나 생겼다(만세점). 매월당 시절에도 있었으려나…, 그렇다면 나그네 목 한 번 축이고 길을 도울 수 있었을 텐데.영평(永平)은 지금은 없어진 땅이다. 포천의 ..

산포로산행기 2024.05.17

[겸재 그림 길 (105) 화표주] 바위기둥 올라앉아 고개 돌린 학은 누구?

[겸재 그림 길 (105) 화표주] 바위기둥 올라앉아 고개 돌린 학은 누구?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2006년 독일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던 겸재 그림 21점이 왜관수도원으로 영구 임대 형식을 빌어 돌아왔다. 실로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잠시 필자의 졸고 겸재 그림길 22(2018년 12월) 글을 되돌려 보려 한다. 조선을 사랑하고 안타깝게 여긴 베네딕도 선교회의 노베르트 베버(Norbert Weber: 1870~1956) 신부는 1911년에 이어 1925년에도 또 한 번 조선을 방문하는데 이때는 촬영 기사를 대동하고 왔다. 금강산을 비롯하여 여러 풍정을 이번에도 일반 사진과 활동사진으로 기록한다. 이때의 기록은 1927년 ‘In der Diamantenberg..

산포로산행기 2024.05.03

[겸재 그림 길 (104) 반구대] 그림·자연·유적이 모두 다채로운 명소 반구대

[겸재 그림 길 (104) 반구대] 그림·자연·유적이 모두 다채로운 명소 반구대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2008년 옥소(玉所) 권섭(1671~1759)이 엮은 공회첩(孔懷帖)에 실린 겸재의 그림 두 점이 세상에 알려졌다. 옥소 권섭은 이미 졸고 ‘겸재 그림 길(73) 단양의 구담봉 옥순봉’에 소개한 바 있는 문인이며 학자에 그림도 즐기고 여행가로도 빠지지 않는, 겸재(1676~1759)와 같은 시대를 산 인물이었다. 그가 엮은 공회첩에는 아우 권영(1678~1745)의 편지와 겸재의 그림 2점(반구, 옹천), 그리고 자신의 발문이 수록돼 있다 한다.울주 대곡천 대곡박물관에서 펴낸 자료에 따르면 권섭의 아우 권영은 문과에 급제하고 대사간을 역임한 인물인데,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에 형 옥소에게..

산포로산행기 2024.04.26

[매월당의 시 찾아 가는 길 (4) 금강산 길, 포천] 금강산 길목 ‘물 품은’ 포천의 물맛 술맛

[매월당의 시 찾아 가는 길 (4) 금강산 길, 포천] 금강산 길목 ‘물 품은’ 포천의 물맛 술맛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분포(盆浦)의 절(옥수동 미타사)을 떠난 매월당은 일단 한양으로 들어왔다. 먼 길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금강산 길이다. 조선인들에게 최고의 여행지는 단연 금강산이었다. 조선 중기 이후가 되면 선비라면 한 번은 다녀오고 싶어 했고 더욱이 화인(畵人)이나 시(詩) 좀 쓰는 이라면 금강산을 그리거나 읊은 작품 한두 개는 갖기를 원했다. 그뿐이겠는가? 번암 채제공이 쓴 만덕전(萬德傳)에는 금강산을 다녀온 여인 이야기가 있다. 1795년(정조 19년) 제주에 큰 기근이 있었다. 만덕이라는 기녀 출신 아낙이 있었는데 장사로 수천금을 모았다. 이때 그녀는 천금의 재물을 내어 관아에서도..

산포로산행기 2024.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