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포로산행기 280

[겸재 그림 길 (51) 동작나루 노량나루 ②] 대대로 王 낸 창빈안씨 묘역이 현충원 되기까지

[겸재 그림 길 (51) 동작나루 노량나루 ②] 대대로 王 낸 창빈안씨 묘역이 현충원 되기까지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호국지장사 경내를 나서서 우측 언덕길로 잠시 오르면 철 펜스 안쪽에 바위들이 나타난다. 그 바위 가운데에서 크기 10여cm쯤의 사각형 홈을 찾을 수 있다. 무심히 보면 그냥 바위를 파낸 홈일 뿐이다. 그러나 그 홈은 마애사리공(磨崖舍利孔)이다. 흔히 마애부도(浮圖, 浮屠)라고 하는데 사리를 넣는 구멍인 것이다. 요즈음 말로 하면 유골함인 셈인데 조선 중기 이후가 되면 절은 매우 가난해지고 신역도 고되어졌다. 시주(施主)가 줄어드니 절 살림 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기껏해야 정성을 비는 할머니들이 주신도가 되었으며 그나마 형편이 좀 나은 절은 궁궐의 궁녀, 벼슬아치 집안의 아녀자..

산포로산행기 2024.09.13

[겸재 그림 길 (50) 동작나루 노량나루 ①] 드론 띄우듯 삼남대로 서울길 그리다

[겸재 그림 길 (50) 동작나루 노량나루 ①] 드론 띄우듯 삼남대로 서울길 그리다 (CNB저널 = 이한성 옛길 답사가) 한강변을 그린 겸재의 또 다른 그림에 동작진(銅雀津)과 서빙고망도성(西氷庫望都城)도가 있다. 동작진도는 경교명승첩 속 그림인데 영조 20년경(1744년) 그린 그림이라 한다. 최근 살펴본 몇 편의 그림들이 양천에서 한강을 타고 오르면서 배 위에서 바라본 시각인 것과는 달리, 이 그림은 동작진 건너 육지, 즉 지금의 이촌동 앞 강변 모랫벌쯤 되는 곳에서 강 건너 동작동 현충원 방향을 바라보며 그린 그림이다. 또 다른 한 편의 그림은 반대로 동작나루쯤에서 드론을 띄우듯 한양도성(漢陽都城)을 비스듬히 내려다본 이른바 부감법(俯瞰法)으로 그린 그림이다.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다는데 필자는 사진..

산포로산행기 2024.09.06

[겸재 그림 길 (45) 행주산성 ③] 산 권력에 저항한 추강이 낚싯대 드리운 곳

[겸재 그림 길 (45) 행주산성 ③] 산 권력에 저항한 추강이 낚싯대 드리운 곳 (CNB저널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조선 시대 최고의 별장촌(別莊村) 행주 지역 서쪽을 겸재 그림과 함께 살펴보며 지나왔다. 이제는 동쪽 덕양산(德陽山, 幸州山城)을 돌아보고자 한다. 출발은 귀래정(歸來亭)이 있었을 곳에서 남쪽 강변(곧 杏湖)부터다. 이곳에는 행주산성역사공원이 잘 꾸며져 있다. 번잡하지도 않고 강변도 넓은 데다가 행호(杏湖) 너머로는 겸재가 현령으로 지내면서 행복하게 그림을 그렸을 궁산(宮山)이 보이고 그 곁으로는 개화산이 행주산성과 마주하고 있다. 예전에는 나룻배로 건너다니던 강 건너 마을이었다.사진 1 답사 코스부터 살펴보련다. 번호 1은 출발 지점 역사공원이다. 이곳에서 화살표 방향으로 메타세콰이어..

산포로산행기 2024.08.30

[겸재 그림 길 (44) 행주산성 ②] 겸재는 웅어 보내고, 척재는 답시 쓰고

[겸재 그림 길 (44) 행주산성 ②] 겸재는 웅어 보내고, 척재는 답시 쓰고 (CNB저널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기왕에 행호관어도를 보면서 행주산성 앞 웅어(葦魚) 이야기를 꺼냈으니 웅어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가려 한다. 동국세시기에서  언급했듯이 웅어 잡이가 가장 활발했던 곳은 행주산성(幸州山城) 앞 강물이었다. 유역이 넓고, 유속이 느려 행호(幸湖)라 불렀던 곳이다. 겸재가 양천 현령 시절 이곳 행호에서 고기잡이 하는 모습을 보며(觀漁) 그린 그림이 경교명승첩에 남아 있는 행호관어도(杏湖觀漁圖)임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이 그림에는 5살 연상의 친지 사천 이병연(槎川 李秉淵, 1671∼1751년)이 제시(題詩)를 붙였다. 春晩河豚羹(춘만하돈갱) 늦봄에는 복어국夏初葦魚膾(하초위어회) 초여름에는 ..

산포로산행기 2024.08.23

[매월당 싯길 (8) 금강산에서 철원으로] 그의 시 남은 보리나루는 지금 어디에

[매월당 싯길 (8) 금강산에서 철원으로] 그의 시 남은 보리나루는 지금 어디에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매월당은 단발령에서 귀경 길에 오른다. 그것 또한 가까운 길은 아니다. 어느 길을 택하여 서울로 돌아갈까? 금강산으로 갈 때 택했던 포천 ~ 영평 ~ 김화 ~ 금성 ~ 단발령 길을 거꾸로 돌아갈까? 아니면 단발령 ~ 금성 ~ 평강/또는 김화 ~ 철원 ~ 연천 길을 택할까? 매월당은 그답게 철원 ~ 연천 길을 택하여 한양으로 돌아온다. 운수납자(雲水衲子: 구름과 물처럼 흘러가는 수행자)인 그에게는 새로운 길이 구미에 맞았을 것이다. 단발령에서 철원까지 오는 길도 만만한 길은 아니었다.고려 때 큰 학자인 이곡(李穀)은 일찍이 금강산 유람을 했는데 그의 문집 ‘가정집(稼亭集)’에는 금강산 및 동..

산포로산행기 2024.08.16

[겸재 그림 길 (43) 행주산성 ①] 행주산성의 ‘행(幸)’과 웅어 유래는?

[겸재 그림 길 (43) 행주산성 ①] 행주산성의 ‘행(幸)’과 웅어 유래는? (CNB저널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겸재의 양천팔경첩에는 행주산성 주변을 그린 두 점의 그림이 있다. 두 그림은 행주나루 앞 언덕에 있던 정자를 그린 그림으로, 낙건정(樂健亭)과 귀래정(歸來亭)이다. 그런데 이 두 그림은 물론 이곳 행주 지역을 더 넓게 그린 그림이 있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경교명승첩 속 행호관어(杏湖觀漁)도(圖)이다. 이 그림은 행주 지역 좌측 별장 지대와 그 앞에서 고기잡이 하는 배들을 바라본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시화상간(詩畵相看) 하기로 한 사천 이병연의 시(詩)도 고스란히 붙어 있다. 또 하나 이곳을 염두에 두고 그린 것 아닐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하는 행주일도(涬州一棹: 행주 한 척..

산포로산행기 2024.08.09

[겸재 그림 길 (56) 송파진 ③] 받침대가 두 개라서 더 슬픈 삼전도비

[겸재 그림 길 (56) 송파진 ③] 받침대가 두 개라서 더 슬픈 삼전도비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석촌호수 가(邊) 사람 발길 드문 모서리에 서 있는 삼전도비는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마지막 하나 짚고 가자. 사진 1에서 보듯 우뚝 세워진 삼전도비(대청황제공덕비) 옆에는 그보다 규모가 작은 귀부(龜趺)가 하나 자리하고 있다. 비신(碑身)은 없다. 또 무슨 수모를 당한 비가 있었던가? 걱정되는 마음이 불현듯 일어난다.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곁에 내용을 설명한 돌이 하나 놓여 있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 청태종의 전승 기념을 위해 비를 건립하던 중, 더 큰 규모로 비석이 조성되기를 바라는 청나라 측의 변덕으로 원래에 만들어진 귀부가 용도 폐기되면서 남겨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산포로산행기 2024.08.03

[겸재 그림 길 (55) 송파진 ②] 청황제 칭송글 쓴 이경석과 이를 비꼰 송시열 중 누가 더 애국?

[겸재 그림 길 (55) 송파진 ②] 청황제 칭송글 쓴 이경석과 이를 비꼰 송시열 중 누가 더 애국?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지난 호에 소개했듯이 겸재의 송파진(松坡津: 송파나루)도(圖)는 석촌호수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송파대로 북쪽 롯데 쪽에서 석촌호수 건너 송파대로 남쪽을 향해 그린 그림이다. 지금은 석촌호수 남북단을 송파대로가 지나지만 그때는 송파강을 잇는 나루였음은 이미 설명하였다.이렇게 한강의 본류였던 송파강에는 두 개의 나루가 있었음을 상기하자. 하나는 삼전도(三田渡: 삼밭나루)이며 또 하나는 병자호란 이후에 번성한 송파나루다. 겸재가 주로 활동한 영조 시대에는 이미 삼전도는 지고 송파나루가 번성기를 누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져가는 삼전나룻가에는 조선 백성이라면 누구라도 차마 눈뜨고..

산포로산행기 2024.07.26

[매월당 싯길 (7) 금강산] 발 부르트도록 금강산 날아다닌 김시습과 생육신

[매월당 싯길 (7) 금강산] 발 부르트도록 금강산 날아다닌 김시습과 생육신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매월당의 금강산 길을 쓰려니 마음이 싸하다. 통일 후에 쓸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통일 이후에는 다시 답사길 겸해서 쓰기로 하고 일단은 옛 글과 옛 그림으로라도 그의 싯길을 이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일전에 겸재 그림 길을 쓰면서, 청와대 안에서 보아야만 하는 겸재의 그림들을 어깨너머로 소개하면서 청와대 문이 열리면 상세히 글을 쓰겠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 약속을 생각보다 짧은 시간 안에 지킬 수 있었다. 매월당의 금강산 길도 머지않은 날 그렇게 될 것이다.매월당집에는 매월당이 김화(金化)에서 쓴 시 다음으로 금강산 속에 자리 잡은 장안사(長安寺)를 쓴 시로 이어진다. 아마도 그사이 길..

산포로산행기 2024.07.19

[겸재 그림 길 (54) 송파진] 잠실이 강북땅 → 섬 → 강남땅 된 사연

[겸재 그림 길 (54) 송파진] 잠실이 강북땅 → 섬 → 강남땅 된 사연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겸재의 경교명승첩을 따라 한강을 오른 지도 여러 날 되었다. 오늘은 송파진(松坡津)이다. 겸재의 그림을 보면 송파진이 특별히 소나무 언덕(松坡)이 있는 나루(津)는 아니다. 이 지역은 전부터 광주목 중대면 송파리(中臺面 松坡里)였는데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언덕에 소나무가 많았던 모양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도 88올림픽 무렵 중대면에 해당하는 가락동에 살았었는데 뒷동네 야산에 소나무가 심심치 않았던 기억이 난다. 겸재의 송파진 그림에는 송파나루 강가에 버들이 늘어져 있고 주변 민가들에는 수종은 알 수 없지만 침엽수는 아닌 나무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으로는 확인이 안 되지만 그림의 맨 뒤쪽 라인을 형..

산포로산행기 2024.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