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포로산행기

[산포로기행 이한성 교수의 이야기가 있는 길,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창의문~백사실~호경암~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산포로 2019. 9. 1. 10:39

[산포로기행 이한성 교수의 이야기가 있는 길,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창의문(자하문)~백석동천~백사실~일붕선원~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하늘교~김신조루트~호경암~서울시 성북구 성북동]19년 8월 31일


* 구간 :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창의문(자하문)~백석동천~백사실~일붕선원~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하늘교~김신조루트~호경암~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 일시 : 2019년 8월 31일(토)
* 모임장소 및 시각 :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창의문(자하문) 오전 10시
* 날 씨 : 맑음(최고 영상 29도 최저 영상 21도)
* 동반자 : 홀로산행
* 산행거리 : 13.4km
* 산행지 도착시각 :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창의문(자하문) 오전 10시
* 산행후 하산시각 :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오후 4시
* 산행시간 : 약 6시간(식사 및 사진촬영시간 포함)




[이한성의 이야기가 있는 길] ⑬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감춘듯한 계곡과 농막, 부암동 백사실은 누구 작품일까
창의문~백사실~마애신장~숙정문~삼청동~북촌 길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서 탄 버스가 자하문 고개에서 정차한다. 자하문의 원이름은 창의문(彰義門: 의를 밝히는 문)이다. 태조 5년(1396년) 서울 도성을 쌓으며 4대문, 4소문을 지었는데 그 중 북소문(北小門)에 해당하는 문이 창의문이다.


자하문(紫霞門: 붉은 노을 문)은 창의문의 이칭(異稱)으로 자하동은 창의문의 남쪽 산천과 마을을 부르던 이름이었다.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 지금의 청운동, 효자동을 포함한 북악산, 인왕산 주변을 그린 화첩)에는 자하동(紫霞洞) 그림이 있는데 창의문이 있을 위치를 포함하여 북악산 서쪽으로 비스듬히 비낀 큰 바위와 인왕의 동쪽을 그린 멋진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 자하문이란 이름이 자하동에 있는 문이라서 그런 이칭으로 불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이야기가 있는 길 2’에서 이야기하였듯 풍수 학생 최양선(崔揚善)의 “창의문과 숙청문(肅淸門: 숙정문/肅靖門의 본래 이름)은 경복궁의 좌우 팔과 같아 손상되면 안 된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태종실록 14년 6월조에 실려 있다. 그래서 두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었다. 숙청문이야 본래 산 속에 있어서 통행하는 사람이 드무니 혜화문(동소문)으로 통행해도 충분했으나 창의문은 홍제원에서 넘어 오는 사람도 많고, 성 너머 백성들도 많았으니 문을 닫아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태종실록 동년 동월 조에 보면 공신 이숙번(李叔蕃)의 집 앞에 새로 서전문(西箭門: 지금의 경희궁 서쪽 담과 사직터널 중간쯤으로 예상)을 세워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세종4년 1422년 이 서전문을 헐고 돈의문(서대문)을 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앞 고개에 세우니 사람들은 이 문을 ‘새문(新門)’이라 불렀고 지금도 이 지명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신문로, 새문안교회 등).



오늘의 갈 길을 창의문을 통과해 나아가 본다. 서울 도성길을 정비하면서 이 길도 잘 다듬어 놓았다. 홍예를 빠져 나와 문루를 올려다보면 창의문(彰義門)이란 편액이 선명하다. 도성 8개 문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문이기에 큰 손상 없이 깨끗하다. 여기서부터는 은은한 커피 내음이 구미를 당긴다. 창의문 옆 첫 가게가 장안에서 커피 맛 괜찮다고 소문난 커피집이다. 다소 비싸기는 하지만 필자는 이곳에 오면 커피 한 잔 하는 사치를 즐긴다.


필자가 정신적으로 힘들어 할 때 이 곳 커피 맛을 알게 해 주고 힘이 되었던 어느 분이 계셨다. 덕분에 힘든 터널을 잘 지나올 수 있었다. 사람의 인연이 돌아볼수록 차향(茶香)이나 커피 향 같은 것이면 좋지 않겠는가?


부암동은 원래 붙임바위 있던 곳 구멍 숭숭 뚫린 바위에 돌을 대고 손을 떼도 돌 붙어 있으면 아들 낳았다는데…



이곳 부암동의 많은 부분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어 60년대 서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집들이 남아 있다. 커피 집에서 건너다보면 40년 가까이를 옛 모습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는 이발소가 있다. 그 이름 ‘대성이용원’. 그런데 웬일인지 얼마 전까지 있던 이발소가 보이지를 않는다. 문을 닫은 것일까?


이제 백사실(白沙室)로 가기 위해 ‘부암동 산책로 가는 길’로 들어선다. 30여m 가면 모퉁이에 삼각형으로 서 있는 낡고 붉은 3층 건물이 있는데 이곳에서 좌로 내려가면 환기미술관(김환기 화백을 기념하는 미술관)이며, 우측 비스듬한 오르막길이 백사실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바로 이 붉은 건물 1층이 부암동의 명물, 아니 강북의 명물 ‘동양 방앗간’이다. 이름은 방앗간이나 업종은 떡집이다. 인절미를 비롯해 개떡, 절편, 증편, 약식…. 각종 떡이 있는데 나오기가 무섭게 아침나절이면 모두 팔려 나가는 기이한 떡집이다. 차옥순 할머니 내외분이 수십 년을 이 자리에서 좋은 재료에 수제로 만드는 떡이라서 한 번 맛을 보면 다시 찾아온다고 한다.



그런데 부암동이란 지명이 유래된 부암(付岩: 붙임바위)은 어디 있는 것일까? 자하문 고개를 넘어 세검정 3거리 방향으로 가다가 보면 하림각 건너편에 ‘종로구청 부암 경로당’이 있다. 그 곳 외벽 하단에 안내판이 하나 붙어 있다. 그 내용은 부암지(附岩址: 붙임바위 터. 付와 附는 ‘붙이다’는 뜻이 있으며, 부암동은 付 자를 쓴다)이다. 부침바위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거나, 아들 낳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소원을 빌었던 바위다.


1970년까지 있었던 부침바위는 약 2m 높이에 표면에는 벌집처럼 구멍이 뚫린 자국이 있었는데 여기에 돌을 대고 비비면 손을 떼는 순간 돌이 붙고 옥동자를 낳는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부침바위 자체는 없어지고 지명만 남은 것이다.




















길을 재촉하여 백사실로 향한다. 가는 길 중간에는 커피 집을 배경으로 한 TV극의 촬영 장소였다는 카페가 있는데 언제나 사람들이 많다. 집들이 있는 길이 끝나자 숲길로 들어선다. 우측 큰 바위에 ‘白石洞天’(백석동천)이라는 각자(刻字)가 단정하고 힘찬 해서체로 쓰여 있다. 우리가 ‘백사실’이라고 부르는 골짜기를 이르는 지명이다.




한편 창의문 남쪽 골짜기 백운동(白雲洞: 자하문 터널 위 골짜기)에는 ‘白石洞天(백석동천)’과 크기나 힘찬 해서체의 필력으로나 거의 겨룰 만한 ‘白雲洞天’(백운동천)이라는 각자가 있다. 광무 칠년 계묘 중추 동농(光武七年 癸卯 中秋 東農)이 새겼으니 1903년 계묘년 가을에 법무대신을 지낸 동농 김가진(金嘉鎭)이 ‘白石洞天(백석동천)’을 본받아 새겼을 것이다.


창의문을 사이에 두고 白石洞天(백석동천)과 白雲洞天(백운동천)이 남북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각자의 뜻을 살펴보자. 백석(白石)은 흰 돌이라는 뜻이니 굳이 설명이 필요 없고, 동천(洞天)에서 동(洞)은 골짜기를, 천(天)은 천지(天地)를 뜻한다. 따라서 동천이란 말은 산골짝 경치 좋은 곳이며 신선이 사는 곳이다.




탄핵 당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올라 “서울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 있냐”고 놀랐다는 말 그대로 감춰 두고픈 백사실.






그래서 그랬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당했을 때 이곳에 산책 나온 후 “서울 한복판에 이렇듯 아름다운 곳이 있느냐”며 반했다고 한다. 어디 노무현 대통령뿐이랴? 필자와 함께 이곳을 찾아 왔던 어떤 학인은 메모를 남겼는데, 파인 김동환 시인의 ‘아무도 모르라고’라는 시구였다.


떡갈나무 숲 속에 졸졸졸 흐르는
아무도 모르는 샘물이길래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지요.
나 혼자 마시곤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는


눈 쌓인 날, 낙엽 짙은 가을날, 몇 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필자도 아무도 모르라고 덮어 놓고 오고 싶었던 기억이 새롭다. 주춧돌과 석물만 남은 옛터에 백 여 평 남짓한 연당(蓮塘)은 참으로 시간을 넘은 그 어딘가에 존재하는 세계 같았다.


白石洞天(백석동천)                  백석동천


白岳深懷隱秘隈(백악심회은비우) 백악 깊은 품에 산모퉁이 감추었는데
言將默語緖人來(언장묵어서인래) 연 닿는 이 오시라고 묵언으로 말씀하네
蓮堂柱礎跏五百(연당주초가오백) 蓮堂(연꽃을 구경하기 위하여 연못가에 지어 놓은 정자)의 柱礎(주춧돌)는 500년 가부좌 트시고서
慇謐耳言遺憬追(은밀이언유경퇴) 은밀한 귀엣말로 그리움은 두고 가라시네
. - 필자의 시




건물터에서 개울물 따라 내려가면 ‘개도맹’(개구리, 도롱뇽, 맹꽁이)이 사는 흰 바위로 덮인 계곡이 있고, 계속 하류로 내려가면 일붕선원을 지나 세검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오늘의 걷기는 골짜기 위로 올라가 북악스카이웨이 산책길로 방향을 잡는다.


60년대의 집들이 퇴락한 채로 시간 너머에 자리하고 농사 방법도 그 시절 그대로다. 필자는 여름에 이곳에 오면 오이를 사는데, 아이 때 먹던 꼬부랑 할머니 같은 조선 오이의 맛을 잊지 못해서이다.



백사실은 의문투성이이다. 백사실 이름은 어디서 온 것이며 이 별서(別墅: 농막)는 누구의 흔적일까? 아마도 ‘실’은 닭실, 한실, 버드실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을(洞)이나 골자기(洞)를 뜻하며 ‘백사’는 ‘백석’의 와전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백석동→백석실→백사실이 된 것은 아닐까?


이 곳 주인에 대해 흔히 백사(白沙) 이항복을 떠올리는데 백사 이항복은 인왕산 아래 필운대(현 배화여고 내)에서 살았으니 관련이 없는 것 같고, 윤두수의 넷째 아들 백사 윤훤(白沙 尹暄)이나 자하 신위(紫霞 申緯)가 더 가깝게 거론되고 있다. 스카이웨이 산책길로 오르는 길목에서 고염을 만난다. 어디 가도 만나기 힘든, 이제는 거의 없어진 과실나무이다. 까치도 숨어서 고염으로 주전부리를 한다. 나도 몇 개 따 먹는다. 스카이웨이 산책길로 오르자 복자기 잎이 빨갛게 불탄다.








이 길로 2km여 가면 팔각정이다. 다시 1km여 산책길을 따라가면 40여 년 동안 막혀 있다가 재작년에 길을 연 이른바 ‘김신조 루트’를 만난다. 성북구청이 전망대도 만들어 놓았다. 이 길은 1968년 1월 공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공격하기 직전 발각되어 도망친 퇴로 중의 하나다. 호경암이란 바위에는 50여 발의 탄흔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길을 개방하면서 길과 전망대를 잘 개설해 걷기에 불편이 없다. 10여 분 하산 길로 내려오면 골짜기가 시작되는 상류 지점으로 내려오는데 시원한 샘물이 자리하고 있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샘물에서 목을 축인다. 그리고 샘 좌측 10여m 떨어져 있는 바위를 살펴보자.


이 바위에는 무속신앙의 대상이 되는 무속의 신들을 새긴 마애신상(磨崖神像) 세 분이 모셔져 있다. 무속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아마도 보물 같은 마애상일 텐데 이 마애상을 아는 이들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방치돼 있다. 혹시나 훼손될까 걱정스럽다. 첫 번째 마애상은 아마도 8도 무당의 어머니인 성모(聖母)인 것 같고, 파마머리인 듯 한 젊은 여자상은 바리공주 아닐까 추측해 보고, 씩씩한 장군상은 무속의 장군인 신장(神將) 같다. 아무 기록도 없어서 누가 언제 조성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누군가 가끔 기도를 올리는지 사발에 정안수가 떠 있다.











마애상을 떠나 나무층계를 따라 오른다. 오르는 것도 잠시, 전망대가 자리한 구릉 위를 지나 능선 하나를 넘는다. 편한 나무 난간길이다. 길은 외길이어서 길 잃을 염려는 없다. 70~80년대 서울 연인들의 필수 데이트 코스였던 삼청동 길.


지금은 갈곳도 많아 동네 분들만 거닐지만 옛 멋은 그대로 남아.









길을 다 내려오니 좌측으로는 성북동 삼청각이 바로 코앞이다. 이곳으로 가지 말고 길 따라 가면 숙정문으로 오르는 안내소가 있다. 이 안내소에서 5분여 오르면 서울도성의 숙정문(肅靖門)이다. 이 문도 창의문처럼 서울 도성을 축조할 때인 태조5년 1396에 축조했는데 그 동안 홍예만 남고 파괴되었던 것을 1976년에 복원하였다. 지금 문에 붙어 있는 편액의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 글씨다. 이 문도 창의문과 마찬가지로 최양선의 풍수로 인해 오랜 동안 닫혀 있었다. 한편 이 문의 또 다른 이름은 소지문(昭智門)이다. 동양 사상의 가장 기본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이다. 서울도성의 문도 모두 이 오행사상에 따라 이름을 붙였다.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방향은 동서남북과 중앙) 오상(五常)에 의거하여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동대문(흥인지문/興仁之門: 仁), 서대문(돈의문/敦義門: 義), 남대문(숭례문/崇禮門: 禮), 북대문(소지문/昭智門: 智), 보신각(普信閣: 信)…. 북대문이 소지문(昭智門)이었던 사실을 알지 못하고 북쪽 문을 탕춘대성의 홍지문(弘智門)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있는데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숙정문을 뒤로 하고 다시 성벽길을 따라 남으로 내려간다. 5분여 지나 말바위(末岩 또는 馬岩)에 도착하면 삼청동이 바로 코앞이며 북촌이 고스란히 내려다보인다. 나무층계 길을 따라 15분, 삼청공원에 닿는다. 1934년 일제가 조성한 공원이다. 우리 젊었던 시절, 서울에서 달리 갈 곳 많지 않았던 그 시절에 이곳에서 데이트를 즐긴 젊은이들이 많았다. 이제는 갈 곳이 너무 많아 데이트 족은 떠나고 동네 분들의 산책 코스가 되었다.




저녁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시각에 삼청동을 내려와 좌측 골목길에 자리 잡은 서민적 한식당 ‘경복궁’에 들려 고등어 묵은지로 입맛을 돋운다. 북촌은 이제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갤러리가 많이 생기고, 분위기 좋은 커피집도 많아 저녁 나들이가 즐거운 곳이다. 기왕 예까지 온 김에 인현왕후 민비의 사가(私家) ‘감고당’ 터를 지나 인사동 네거리로 넘어온다. 언제 가도 조선의 차향(茶香)을 잃지 않고 있는 ‘들꽃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커피로 시작해 전통차로 마무리한 한 나절의 여정을 접는다.




이한성 동국대 교수


* 교통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 전방 50m 시내버스 0212, 1020, 7022 탑승 ~ 자하문고개 하차
* 걷기 코스 창의문 ~ 백사실 ~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 ~ 김신조루트 ~ 호경암 ~ 마애신장 ~ 숙정문 ~ 삼청공원 ~ 북촌


※ ‘이야기가 있는 길’ 답사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함께 모여 서울 근교의 마애불과 문화유적지 탐방을 합니다. 3, 4시간 정도 등산과 걷기를 하며 선인들의 숨겨진 발자취와 미의식을 찾아갑니다. 참가할 분은 comtou@hanmail.net(조운조, 본지 Art In 편집주간)로 메일 보내 주시면 됩니다.


▲ cnbnews 제205호 편집팀⁄ 2011.01.17 14:19:28
http://weekly.cnbnews.com/news/article.html?no=105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