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코로나 백신 지재권 유예' 합의…찬반 양쪽 "효과 없다" 회의론
현 조건으론 개발도상국서 백신생산 쉽지 않아…기존 글로벌 업체들 공급도 충분
"치료제로 지재권 유예 확대하면 도움" 기대…업계에선 "확대 불필요"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이 개발도상국 등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특허)을 일시 유예하기로 합의했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지식재산권 완화에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쪽 모두 이번 합의가 백신 생산 증대에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미국 바이오센추리는 21일 WTO가 국제 코로나19 대응의 하나로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 보호 조치를 완화하는 데 합의했지만 아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WTO 산하 '지식재산권협정(TRIPS·트립스)' 논의는 지난 2020년 10월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대표가 WTO에 코로나19 관련 의약품 특허권을 5년간 일시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시작됐다.
지난 3월에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남아공, 인도 등 4개 WTO 회원국이 코로나19 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 등 사항에 잠정적으로 합의했다.
이후 WTO는 지난 12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12차 WTO 각료회의'에서 해당 내용에 합의하며 백신 지식재산권 완화에 대한 내용을 담은 각료선언과 각료결정을 채택했다.
바이오센추리에 따르면 지난 14일 피유시 고얄 인도 상공부 장관은 이번 백신 지식재산권 합의에 대해 선진국들이 실제로 개발도상국을 돕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선진국 통상 장관들은 전 세계와 시민 사회에 '개발도상국에 대해 마음이 아프고, 아프리카와 저개발국가에 관심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지식재산권 면제라기보단 기존 강제적인 라이선스(특허)에 비해 약간 나아진 정도"라고 덧붙였다.
바이오센추리는 특히 고얄 장관이 개발도상국에 백신 수출 제한을 5년 동안 해제한다는 점에 주목했다며 "단 하나의 공장도 세워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전했다. 백신 공장을 세우는 데 약 3년이 걸리고 규제기관으로부터 승인받는 데 또다시 1~2년이 걸릴 수 있다는 이유다.
바이오센추리는 또 이러한 제약은 기존 제조시설을 활용해 백신을 생산하려는 업체에도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즉 백신 판매를 위해 승인받기 위해 임상시험을 수행하면 수출로 이익을 볼 기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또 백신 개발사들의 공급 능력이 이미 전 세계 수요를 초과하고 있다는 점도 이번 합의가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백신 지식재산권 완화에 반대하는 바이오·제약산업 업계와 무역협회도 이번 WTO 합의가 백신 공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미셸 맥머리-히스 미국 바이오협회 회장은 성명을 통해 "WTO가 발표한 합의 내용은 개발도상국의 코로나19 예방접종률을 높이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제약협회(PhRMA)와 유럽, 그리고 국제 무역협회들도 유사한 성명을 발표했다.
맥머리-히스 회장은 또 바이오센추리에 이번 합의가 "세계가 다음 대유행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에 해로운 선례가 될 것"이라며 "지식재산권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물리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잘못된 이야기의 희생자가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지식재산권은 혁신과 글로벌 과학계의 협력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다"고 말했다.
토마스 쿠에니 국제제약제조협회 이사는 이번 합의가 "(백신 개발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과학자들에게 실례가 되고 모든 대륙에 있는 파트너십을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보건 관련 국제단체들도 이번 WTO 합의안에 실망감을 나타냈다. 크리스토스 크리스토우 국경없는의사회 회장은 "필수적인 모든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은 제외됐으며 모든 국가에도 적용되지 않는다"며 "이번 합의는 전반적으로 팬데믹(대유행) 기간에 사람들이 필요한 의료 도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데 효과적이고 의미있는 해결안을 제공하는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의약품 지식재산권 완화를 지지하는 비영리단체인 국제지식생태계(KEI)의 제임스 러브 이사장은 이번 합의안에 대해 "제한적이고 실망스러운 결과"라며 합의안 중 백신 지식재산권 완화보다 WTO가 6개월 이내에 코로나19 치료제와 진단기기에 대한 합의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6개월 이내에 치료제로 지식재산권 완화가 확대되면 치료제에 대한 공급과 규제 제약을 고려할 때 훨씬 더 큰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오·제약 업계는 이미 치료제와 진단기기가 전 세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대규모 생산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라며 지식재산권 확대는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바이오센추리=뉴스1, news1.kr) 성재준 바이오전문기자 | 2022-06-21 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