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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게임하는 생쥐의 뇌가 보여준 기억 저장의 비밀

산포로 2023. 3. 31. 09:12

VR 게임하는 생쥐의 뇌가 보여준 기억 저장의 비밀

미국 록펠러대
 
기억 관리와 관련한 뇌의 부위를 확인하는 실험에서 설탕물을 좋아하는 쥐의 습성이 활용됐다. 물을 마시는 애완용 쥐의 모습. 위키미디어 제공

 

과학자들이 그동안 기억을 관리하는 데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뇌의 부위가 기억을 오랜 기간 저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가상현실(VR) 게임을 하는 쥐의 뇌를 관찰한 결과로 기억에 관한 뇌의 새로운 비밀이 규명됐다는 평가다. 

 

앤드류 토더, 조수에 레갈라도 미국 록펠러대 연구원 공동연구팀은 뇌의 전방 '시상'이 기억 저장에서 주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연구결과를 30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시상은 뇌 중앙에서 꼭대기에 있는 부위로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다시 정보를 처리하는 각 부위로 전달하는 곳이다.

 

금방 잊혀지는 기억과 오랫동안 남는 기억이 뇌에서 어떻게 선별되고 저장되는지는 학계의 오랜 관심사였다. 연구팀은 “중요한 기억을 식별하고 장기간 저장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새로운 회로를 전방 시상에서 발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쥐의 뇌가 중요한 기억을 어떻게 선별하는지 관찰하기 위해 VR게임 공간에 미로를 준비했다. 미로의 골인 지점은 총 3개인데 도달하는 장소에 따라 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다르게 구성됐다. 첫 번째 방에선 쥐가 좋아하는 설탕물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물통이 설치됐다. 두 번째 방은 적은 양의 설탕물만이 제공되는 물통을 설치했다. 마지막 방에는 설탕물 대신 바람이 나오는 텅 빈 물통을 놓아뒀다.

 

실험 대상이 된 쥐는 약 3주 동안 각 골인 지점으로 가는 길을 학습했다. 각 방으로 가는 미로의 길목에는 게임상에서 접촉하면 현실에서 소리, 냄새, 시각 자극을 주는 특징적인 장애물들이 있어 쥐가 각 경로의 특징을 기억하는 것을 도왔다. 

 

쥐가 기억을 토대로 움직이는지 여부는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시간과 보상을 취하는 시간을 통해 파악했다. 더 좋은 보상이 있는 방으로 향하는 길을 기억하고 움직이는 쥐는 골인 지점까지 도착하는 데 보다 적은 시간이 걸렸다. 또 무제한으로 설탕물이 나오는 물통에 도달했을 때 더 오랜시간 물통의 주둥이를 핥았다. 

 

연구팀은 이같은 쥐의 기억 행동이 관찰될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확인했다. 뇌 영상 촬영장비를 활용해 전측대상회피질(ACC), 해마, 시상 전방 부위의 활성화 양상을 관찰했다. 전측대상회피질은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신경다발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부위다. 해마는 뇌의 겉질 밑에 존재하면서 학습 및 기억에 관여한다. 쥐가 미로를 탐험하는 동안 이들 부위는 대부분 활성화됐다. 이 중에서도 전방 시상 부위가 두드러지게 활성화됐다.

 

연구팀은 뇌의 각 부위가 기억 저장에 실제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조사하기 위해 각 부위의 활동을 억제하면서 다시 실험을 실시했다. 전측대상회피질과 해마의 경우 작용을 억제하거나, 이 부위에 있는 신경세포에 자극을 주고 활성화 시켰을 때 쥐의 기억 행동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장기 기억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다. 반면 전방 시상을 자극하는 것은 쥐들의 기억 능력을 직접적으로 향상시켰다. 전방 시상에 자극을 받은 쥐는 가장 좋은 보상이 있는 목적지로 가는 경로뿐만 아니라 보상의 정도가 적은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길까지 기억했다.

 

연구팀은 이득이 되는 경험을 했을 때 전방 시상은 행복감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인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오랫동안 저장해야 하는 중요한 기억을 선별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다만 장기간 저장되는 기억이 어떻게 안정적으로 관리되는지에 대해선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동아사이언스(dongascience.com)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2023.03.31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