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NA 합성에서 '기다림의 미학' 규명
- KAIST-서울대 공동연구를 통해 학계의 통념과 상반된 전사종결인자 단백질의 동역학적 특성 발견
- RNA 합성에서 멈춤의 역할 규명하고 새로운 생물학적 기능 발견
- 전사 종결 관련 세균 생리 연구와 항생제 개발에 새로운 실마리 제공 기대
DNA에서 RNA를 생성하는 과정을 마무리 짓는 전사종결인자가 단백질 로(이하 Rho)이다. 일반 단백질이 작용물질에 미리 붙어 있으면 반응이 빨리 된다는 통념과 다르게 RNA 중합효소에 붙어 기다리는 Rho는 중합효소가 오래 멈출수록 종결 효율이 높아진다는 유의미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자연에서 기다림의 미학이 증명된 것이다.
KAIST(총장 이광형)는 생명과학과 강창원 명예교수(KAIST 줄기세포연구센터 고문)와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홍성철 교수의 공동 연구팀이 KAIST 화학과 강진영 교수, KAIST 생명과학과 서연수 교수 연구팀과 협업 연구를 통해 RNA 합성 종결인자의 동역학적 특성을 발견했으며 그런 특성이 유전자 발현 조절에 미치는 생물학적 기능을 규명했다고 27일 밝혔다.
공동 연구팀은 세균의 전사 종결에 단백질 Rho가 관여하는 분자기작에 관해 작년에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Rho가 중합효소에 미리 결합해 RNA의 특수부위를 기다린 후 중합효소‧DNA‧RNA의 전사 복합체를 해체하는 방식과 Rho가 RNA에 먼저 결합해 중합효소를 쫓아간 후 복합체를 해체하는 방식, 쫓아간 후 RNA만 방출하고 중합효소가 DNA에 남는 방식 등 세 갈래로 나뉘어 진행된다. (그림 참조)
그런데 흥미롭게도 세 갈래 진행하는 속도가 기존 통념과는 다른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기존에는 Rho가 RNA에 붙어 중합효소를 쫓아가서 끝내는 방식과 비교하면 Rho가 중합효소에 미리 붙어 기다렸다가 끝내는 방식이 쫓아가는 시간이 들지 않기 때문에 더 빠를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공동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기다려서 끝내는 방식이 오히려 더 느렸다. 그런데 느린 기다림 방식은 중합효소의 멈춤 시간이 길수록 종결 효율이 높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반면에 쫓아가는 빠른 방식은 종결 효율이 중합효소 멈춘 시간과 상관이 없으며 상황에 따라 변화의 여지도 없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혔다.
RNA가 방출되는 전사 종결이 일어나려면 RNA의 연장 합성이 일단 멈춰야 한다. 종결이 더디게 일어나려면 멈춤이 오래 유지되어야 하므로 전사 멈춤 시간과 전사 종결 효율의 상관관계를 이번 공동 연구에서 분석했다. 연구 결과, 기다려서 전사의 세 갈래 끝내기 방식이 진행하는 속도가 제각각 다를 뿐 아니라 그 조절 양상도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규명한 것이다.
생물물리학 분야 첨단 기술인 단일분자 실험을 수행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송은호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제1 저자로 참여한 이번 논문(제목: Transcriptional pause extension benefits the stand-by rather than catch-up Rho-dependent termination)은 저명 국제학술지 핵산연구(Nucleic Acids Research, 최근 영향지수 = 19.160)에 지난 2월 10일 자 게재됐다. KAIST 팔린다 무나싱하 박사, KAIST 황승하 박사과정 대학원생도 참여해 저자가 총 7명이다.
송은호 제1 저자는 "기존 통념과 상반된 결과를 처음 발견했을 때 당황스러웠지만 데이터를 꾸준히 쌓아가고 적절한 통계 모델을 통해서 그 결과를 검증해냈을 때 뿌듯했고, 또 이 발견의 생물학적 역할을 규명했을 때 더욱 기뻤다ˮ며 "항생제 개발 등에 중요한 단서를 줄 것이다ˮ라고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번 공동 연구에는 단일분자 형광 기술을 구사하는 물리학자, 유전자 발현을 탐구하는 생명과학자, 중합체 구조를 분석하는 화학자가 두루 참여했다.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가 꾸준히 협업하는 다학제 기초과학 연구의 우수 사례이며,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 KAIST 고위험‧고성과 연구사업의 지원을 받았고, 논문게재비는 KAIST에서 지원했다.
□ 연구개요
1. 연구 의의
○ 일반적으로 어떤 단백질이 작용물질에 미리 붙어 있으면 반응이 빠르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 그 통념과 반대로 더 느리게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미리 붙어 있더라도 작동 자체가 더 더딜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생화학 연구에서 작동원리를 이해하는 데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 첨단 단일분자 형광 기술이 아니라면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것이 어렵다. 이런 점에서 이번 연구는 단일분자 형광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 전사 멈춤은 모든 전사 종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전사 멈춤의 기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향후 다른 전사 종결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 연구 배경
○ 선행 연구를 통해서 Rho에 의한 전사 종결은 기다린 후 해체, 쫓아간 후 해체, 쫓아간 후 잔존이라는 세 갈래로 진행됨을 밝혔었다.
○ 기다린 후 해체는 다른 갈래에 비해 더디게 일어나기에, 멈춘 시간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3. 연구 내용
○ 단일분자 형광 기술을 이용해서, 다양한 종결자와 돌연변이체에서 나타나는 멈춘 시간과 종결 효율을 측정했다.
○ 멈춘 시간이란 RNA 중합효소가 거푸집 DNA의 특정 위치에 멈추어 있는 시간을 말한다.
○ 통계 분석 결과, 기다린 후 해체 방식만이 멈춘 시간과 종결 효율 사이에 유의미한 양(+)의 상관관계를 갖는 것을 확인했다.
○ 이런 상관관계는 생체 환경을 모방한 여러 조건에서도 유지되는 것을 확인했다.
○ RNA의 다양한 구조 변화로 종결 효율을 조절하는 종결자에서도 이 상관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 Rho가 중합효소에 미리 붙어 있어도 여러 구조적 변화가 동반되어야 RNA에 결합할 수 있으므로 더디게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 작년에 보고한 세 갈래 끝내기의 후속 연구로서, 갈래마다 특성이 다른 기능을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 서울대 단일분자 생물물리학 연구실, KAIST 생화학 연구실, 핵산 생화학 연구실, 분자 생물리학 연구실의 공동 연구로 진행되었다.
4. 기대 효과
○ 전사의 멈춤이 종결에 미치는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하여 분자생물학 발전에 이바지했다.
○ 전사 종결의 여러 갈래가 생물학적으로 어떤 기능을 달리하는지 밝혀 전사 종결의 분자기작을 깊이 이해했다.
○ 전사종결인자를 이용한 응용연구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이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 전사 멈춤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사람과 같은 진핵생물의 전사 종결에서 전사 멈춤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 RNA 구조 변화로 조절되는 전사 종결이 항생제 개발 등에서 관심을 받는 만큼 이런 항생제 개발에 중요한 단서를 줄 것이다.
□ 연구 이야기
세균 단백질 Rho는 RNA 중합효소의 RNA 생성과정을 마무리 짓게 하는 전사종결인자이다. 이 단백질이 RNA 중합효소가 만들어 낸 RNA에 붙은 후 중합효소를 쫓아가서 전사를 끝내는 모델이 교과서에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Rho가 RNA 중합효소에 미리 붙어 기다렸다가 종결한다는 학설도 제시되었는데, 이 공동 연구팀이 실제 이 두 가지가 모두 함께 작동한다는 것을 최근 입증했다. 그런데 이 작동원리에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 통념상 미리 붙어 기다린다면 작동을 빨리할 걸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미리 붙어 있는 경우가 가장 느리게 전사 종결을 일으켰다. 이번 연구는 왜 미리 기다리지만, 오히려 더디냐는 질문에 답하는 여정이었다.
첫 번째 기다림 – 미리 기다린다.
RNA 중합효소는 흡사 실타래를 만드는 기계와 같다. 눈이 없는 중합효소가 실타래 기계를 쫓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일까? 그 기계가 만드는 실을 부여잡고 그 실을 따라 기계를 향해 달려가는 방법이 하나 있다. Rho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이렇게 쫓아가는 방식을 가장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실타래 기계에 바로 붙어 있으면 더 쉬울 수 있어서 Rho 역시 이런 전략도 구사한다. Rho가 이렇게 기다리면 굳이 실타래를 따라 쫓을 시간이 필요 없다. 그렇기에, Rho는 쫓아가는 방식보다는 미리 붙어 기다리는 방식이 실타래 기계, 즉 RNA 중합효소를 더 빠르게 떼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기다리는 것이 종결 효율을 높일 것으로 생각했었다.
두 번째 기다림 – 충분히 기다린다.
하지만 이 공동 연구팀이 작년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는 이런 예상과 상반되는 결과가 있었다. Rho가 중합효소를 쫓아가는 방식이 중합효소에 미리 붙어 기다리는 방식보다 전사 종결이 빠르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나름 느려짐의 기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Rho의 대표적 기능이 전사 종결이기 때문에, 느린 정도에 해당하는 멈춘 시간과 종결 효율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쫓아가는 방식은 느려질수록 효율이 올라가는 관계를 보이지 않았지만, 기다리는 방식은 느려질수록 효율이 올라가는 관계를 보였다. 이렇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확인함으로써 느린 이유가 명확해졌다. 더 잘 작동하기 위해서 느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관관계가 RNA 스위치(riboswitch)에 의해 조절되는 종결자에서 미리 기다리는 방식만 그 기능이 작동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렇게 멈춘 시간과 종결 효율 사이에 나타난 상관관계가 생물학적 기능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기다림을 톺아보기
얼핏 위 두 가지 기다림은 서로 모순된 관계로 보일 수 있다. 기껏 미리 붙어서 기다렸으면 빠르게 작동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토끼와 거북이의 전래 동화 속 토끼와 같이 미리 붙어 있는 것을 믿고 게으르게 작동한다는 인상도 받는다. 하지만 이렇게 기다리는 것이 결국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의미가 달라진다.
위의 첫 번째 기다림은 단백질이 붙어서 작동할 수 있다는 보장을 주고, 두 번째 기다림은 이 보장을 바탕으로 충분히 기다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만약 언제부터 기다릴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막연하게 길게 기다릴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미리 붙어서 기다리는 시점이 정해진다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두 가지 기다림의 협업이 전사의 정교한 조절 과정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보장된 시작점과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 여유는 얼마나 기다릴 것인지에 대한 시작과 끝을 만들어 주었고, 그 정해진 기간이 달라지는 것을 통해서 주변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런 인지를 바탕으로 대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분자생물학적 작동원리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을 미리 대비하면 그다음 과정에 더 충분한 시간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어떤 중요한 시간을 충분히 두기 위해서는 앞선 과정이 반드시 시작돼야 한다는 사실. 일견 들여다보면 미리 시작했으면 빨리 끝낼 것이지 또는 기다릴 거면 무엇 하러 미리 붙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이상을 바라보면 외관상 모순된 두 기다림이 더 큰 의미를 위한 기다림인 것이다.
생명과학 KAIST (2023-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