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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에 혁명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받으며 2020년 노벨 화학상 영예가 돌아간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 특허 분쟁의 2라운드에서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가 공동 설립한 브로드연구소가 승리했다. 미국 특허청이 약물 개발에 필수적인 진핵세포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는 기술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보다 브로드연구소가 먼저 개발했다고 판단 내린 것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신약 개발에 이용하는 바이오 기업의 수가 많은 상황에서 이번 결정으로 UC버클리의 특허를 활용해 온 기업들이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미국 특허청 항소심이 브로드연구소가 인간을 포함한 진핵세포 편집 기술을 실제 구현했다고 판결내렸다”고 1일 보도했다.
양 기관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진핵세포에 이용하는 기술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개발에서 더 진보한 기술인지를 놓고 맞붙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처음 발표한 쪽은 UC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 UC버클리 교수와 당시 같은 연구실에 있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 연구팀이다. 그러나 브로드연구소의 펑장 교수팀은 처음으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진핵세포에 적용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펑장 교수팀은 미국의 신속심사제도를 이용해 앞서 특허를 출원한 UC버클리보다 먼저 특허 심사를 받았고 결국 2017년 먼저 특허를 취득했다. UC버클리는 2018년 뒤늦게 특허를 취득했다. UC버클리는 곧바로 특허가 침해받았다며 이의를 신청했고 특허 분쟁 1라운드가 시작됐다. 미국 특허심판원이 2018년 브로드연구소 연구 결과가 독자 특허를 받을 수 있다고 판정하면서 사실상 UC버클리가 분쟁에서 졌다.
당시 분쟁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이용 대상에 관해서였다면 이번에는 진핵세포 적용 기술을 개발한 시점을 둘러싸고 논쟁이 이어졌다. 브로드연구소 측은 펑장 교수가 2012년 7월 진핵세포에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작업을 했다고 주장했다. UC버클리는 논문에서 DNA를 절단하는 효소를 운반하는 가이드 메신저리보핵산(RNA)이 진핵세포 유전자 교정에 필요하다고 이미 기술했다는 주장을 폈다.
특허심판원이 브로드연구소의 손을 들어주면서 UC버클리의 특허를 구매한 기업들은 진핵세포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기 위해 브로드연구소의 특허를 사야 하는 상황이 됐다. UC버클리는 항소 의지를 밝혔다. UC버클리는 성명을 내고 “특허심판원이 많은 오류를 범했다고 생각한다”며 “이의를 제기하기 위한 다양한 선택지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브로드연구소는 “특허심판원이 반복적으로 확인했듯 진핵세포에서 사용방법을 담은 기술은 특허적으로 구별되며 생화학적인 시험관 실험 결과에서 기대되는 사항이 아니다”고 밝혔다. 브로드연구소는 비용이 많이 드는 특허 분쟁을 끝내기 위해 오랫동안 공동 특허 계약을 모색해 왔다고도 강조했다.
UC버클리대가 매우 불리해진 만큼 양측이 이제는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제이콥 셔코우 미국 일리노이대 변리사는 “UC버클리와 UC버클리 특허에 연관된 기업들이 훌륭한 임상시험 자료는 갖고 있지만 특허권은 없고, 반면 브로드연구소는 좋은 특허를 가지고 있다”며 “양쪽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갖추면 보통 합의의 기회가 온다”고 말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에는 양 기관 외에도 툴젠과 양 기관 사이의 저촉심사도 걸려 있는 상황이다. UC버클리와 브로드연구소는 툴젠이 2013년 미국 특허청에 출원했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특허를 대상으로도 저촉심사를 요청해 심사가 진행중이다. 툴젠은 양 기관과 달리 유전자가위의 교정 대상을 진핵세포와 표적 DNA로 명시하면서 특이적인 가이드 RNA 등을 특허에 올려 뒀다.
동아사이언스 (dongascience.com)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2022.03.02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