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3개 학과 공동연구팀, 다학제적 접근 통해 뇌전증 발병 기전 규명
KAIST는 의과학대학원 이정호 교수, 바이오및뇌공학과 백세범 교수, 생명과학과 손종우 교수 공동 연구팀이 MTOR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약물 저항성이 높은 뇌전증이 발병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극소수의 신경세포에 발생한 돌연변이가 신경망의 과다 활동(hyperactivity) 상태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밝혀, 뇌전증의 발병 원인 및 치료법 개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특히 3개 학과간 공동 연구팀의 다학제적인 접근을 통해 세포 내 유전학적인 관점에서부터 단일 신경세포의 전기생리학, 이로부터 근접한 거리에 있는 뇌조직의 네트워크, 그리고 뇌 전체 수준에서의 신경망 수준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실험 및 시뮬레이션 연구가 이루어져, 뇌전증의 복잡한 발병 메커니즘을 전반적으로 설명하는 성과를 얻었다.
국소피질 이형성증은 대뇌발달 과정에서 일부 신경줄기세포의 mTOR 경로상의 체성유전변이(MTOR, TSC, DEPDC5) 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흔한 뇌전증의 원인 중 하나이며 항뇌전증제 약물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아 치료가 어렵다. 이에 연구팀은 국소피질 이형성증 환자의 실제 조직과 같은 질환을 가진 동물 모델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개별 신경세포의 체성유전변이가 신경망 수준의 발작도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원리를 규명했다.
먼저 연구팀은 이러한 체성유전변이는 뇌 조직의 5% 이하인 적은 수의 신경세포에서 발생하며, 해당 신경세포들의 전기적 성질이 정상 세포와는 다르게 변화하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대다수 정상 세포를 포함한 전반적인 신경망 활동의 시뮬레이션 결과, 이러한 돌연변이는 매우 적은 비율의 신경세포에만 국한돼 있어, 이 세포들 자체의 전기적 성질 변화만으로는 전체 신경망의 비정상적인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뇌전증에서 보이는 신경망 수준의 발작 활성도가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에 연구팀은 후속 실험을 통해, 뇌전증 발작을 유도할 수 있는 활성도가 MTOR 체성 유전변이를 가진 신경세포가 아니라 그 세포들 주변의 변이가 없는 신경세포에 의해 발생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유전자 변이를 가진 신경세포의 활성도가 뇌전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세포가 주변 대다수 비변이 신경세포에 특정 변화를 유도하고 이로 인해 전체 신경망 수준의 발작 활성도가 발생한다는 뜻으로, 뇌 체성유전변이로 인한 비세포 자율성 활성도(non-cell autonomous hyperexcitability)를 보여주는 한 예가 된다.
이에 착안해 추가적인 동물실험과 수술 후 환자 뇌 조직을 이용한 연구를 통해 MTOR 체성유전변이를 가진 세포에서는 ADK(adenosine kinase, 아데노신 키나제) 유전자가 과발현되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이로부터 주변 대다수 비변이 신경세포의 네트워크 체계가 교란돼 과활성도가 유도되고, 더 나아가 전체 신경망 수준의 과다 활동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KAIST 의과학대학원 고현용 박사, 바이오및뇌공학과 장재선 박사, 생명과학과 주상현 학생이 공동 제1 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는 신경학 분야의 국제 학술지 `애널스 오브 뉴롤로지 (Annals of Neurology)' 7월 29일 字에 게재됐다. (논문명: Non-cell autonomous epileptogenesis in focal cortical dysplasia,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full/10.1002/ana.26149)
이정호, 백세범, 손종우 교수는 "약물 저항성이 높아 기존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던 뇌전증의 발병 원인에 대해 한층 더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연구ˮ라며 "한 분야의 실험이나 연구 기법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유전체학, 신경생물학, 계산뇌과학에 걸친 다학제적 접근으로 해결책을 제시한 효과적인 공동연구의 좋은 예시였다ˮ라고 언급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이공분야기초연구사업의 리더연구자지원사업 및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보건복지부의 질환극복기술개발사업, 서경배 과학재단, 그리고 소바젠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 연구개요
1. 연구 배경
간질이라고도 불리는 뇌전증은 소아와 젊은 성인에 걸쳐 폭넓게 발병하는 대표적인 신경질환 중 하나로, 사회적 편견 뿐만 아니라 심하면 돌연사를 일으킬 수는 질병이기에 의학 및 신경과학 분야에 걸쳐 활발하게 연구되어 왔다. 특히 FCD (focal cortical dysplasia, 국소 피질 이형성증) 은 가장 흔한 뇌전증의 원인 중 하나이면서, 약물 치료에 대해 저항성을 보여 미충족 의료수요가 요구되는 질환이다.
최근 유전체학 연구 기법이 발전함에 따라 이 FCD의 원인이 대뇌발달 과정에서 일부 신경줄기세포에서 발생한 mTOR 경로상의 체성유전변이 (MTOR, TSC, DEPDC5) 임이 알려졌지만, 어떠한 기전을 통해서 이들 유전자 변이들이 뇌전증을 포함한 신경학적 이상 증상의 표현형을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FCD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발병 기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임에도, 소수의 신경세포에서 기원하는 돌연변이가 어떻게 전반적인 뇌신경망의 활동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학계의 많은 관심 주제 중 하나였다.
2. 연구 내용
이에 연구팀은 돌연변이가 발생한 소수 신경세포에서 일으키는 여러 가지 변화들을 실험적으로 측정 및 모델링하면서 주변 신경망의 과다 활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여부를 확인했다. 먼저 돌연변이를 가진 신경세포의 전기생리학적인 방법을 통한 물리적 성질을 분석한 결과, 정상 신경세포에 비해 세포막의 정전용량 (capacitance) 이 증가하거나 흥분성/억제성 시냅스가 더욱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질 변화를 반영해 전반적인 신경망 활동을 시뮬레이션 한 결과, 극소수인 돌연변이 신경세포에 발생한 이러한 성질 변화가 대다수 주변 정상 신경세포의 과다 활동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소수 신경세포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더라도 대다수의 신경세포들은 여전히 정상 상태이며, 이들 간의 대다수 시냅스 연결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전반적인 신경망 활동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대신 연구팀은 관심대상을 바꾸어 돌연변이를 가진 신경세포가 아닌, 그 주변에 존재하는 비변이 신경세포에서 측정한 결과 상당히 높은 과다 활성도를 가진 것을 통해 발견하였다. 즉, 돌연변이로 인한 비세포자율성 활성도 (non-cell autonomous hyperexcitability)를 확인한 것이다.
이에 연구팀은 소수의 세포가 다수의 세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으로 세포 바깥으로 특정 성분을 분비하거나 흡수하는 메커니즘을 타겟했고, 이에 대한 실험으로 돌연변이 신경세포에서는 ADK 효소가 과다 발현됨을 확인했다. 세포 내에 ADK가 과다 발현되면 이는 아데노신 흡수로 이어져, 세포 바깥 공간(extracellular space)에는 아데노신 양이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세포 바깥 공간을 공유하는 주변 정상 세포들에서도, 아데노신 관련 대사경로가 교란되어 과다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돌연변이가 발생한 뇌조직에 ADK 억제제를 투여하자, 정상 신경 세포들이 보이던 과다 활동이 정상 뇌조직 수준으로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3. 기대 효과
이러한 결과는 돌연변이가 발생한 소수 신경세포의 이상 발화 활동 자체가 뇌전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포 바깥 공간의 변화를 거쳐 간접적으로 주변 정상 세포들의 이상 활동을 유도한다는 새로운 비세포자율성 활성도의 한 예를 제시한다. 이러한 기전으로부터 병태생리의 핵심 요인을 타겟하여, 뇌전증에 대한 더욱 정교한 치료 기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평가된다. 또한 자폐증, 정신분열증, 치매, 그리고 교모세포종 등 뇌 체성유전변이에 의해 발생하는 다른 뇌 질환에서의 비슷한 기전 및 설명이 유사하게 적용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다.
의학약학 KAIST (2021-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