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이상 무병장수, 아미쉬족의 비밀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노화의 열쇠 될까
무병장수는 인류의 오랜 꿈이다. 장수와 관련해 과학자들의 주요 연구대상 가운데 하나는 어떤 유전자가 장수에 연관돼 있느냐이다. 지난 7월 미국 보스턴대 연구팀은 100세까지 장수할 있는지 여부를 예측할 수 있는 유전자 서열을 규명했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게재했다.
당시 연구팀은 뉴잉글랜드 지역 100세 이상 노인 1천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에게서 일반인과 구별되는 150여개의 유전자 변이조합을 발견했으며, 이를 통해 장수를 맞힐 수 있는 확률이 77%에 이른다”고 밝혔다.
위의 연구와 같이 ‘누가 100세까지 장수할 수 있을지’를 예측할 수 있는 이른바 ‘장수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노화연구의 한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어떤 인자가 사람들의 건강을 오랫동안 유지하게 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전자가 장수에 대한 예측 연구라면 후자는 무병장수에 대한 원인 분석연구로 볼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 하플로 그룹X, 무병장수에 영향
최근 미국 마이애미대 연구팀은 80세 이상 장수하는 아미쉬(Amish) 사람들에 대한 연구에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건강장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규명했다. 아미쉬는 현대 기술 문명을 거부하고 소박한 농경생활을 하는 미국의 한 종교 집단이다.
연구를 주도한 윌리암 스콧(William Scott) 마이애미 의과대 인간유전학 교수는 “우리는 당신이 얼마나 장수할 지를 예측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얼마나 건강하게 늙을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건강한 80대 아미쉬 사람들의 15%가 하플로 그룹X(haplogroup X)라는 특이한 유전자 패턴을 보였다고 밝혔다. 세포 내 소기관의 하나인 미토콘드리아는 독자 유전자를 갖고 있으며 이 유전자를 미토콘드리아 DNA(mtDNA)라고 부른다. 하플로 그룹은 같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형을 가진 그룹을 일컫는다.
하플로 그룹X는 하플로 그룹N으로부터 분화했으며 X1과 X2 두 종류의 하위그룹으로 나눠진다. 대략 유럽인, 아시아인, 북아프리카인의 2% 가량이 하플로 그룹X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가 갖고 있는 DNA와는 달리 독자적인 DNA를 갖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DNA는 세포 내 핵 속에 있는 DNA로써 미토콘드리아 DNA와는 구별된다. 이 미토콘드리아 DNA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할 때 난자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로부터 유전되기 때문에 모체 유전이라고 부른다. 세포 소기관 중에는 미토콘드리아 이외에 식물세포의 엽록체가 자신만의 DNA를 가지고 있다.
그간 장수 연구에서 미토콘드리아가 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란 학설이 지배적이었다. 인체 내에서 미토콘드리아는 생체에너지를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생체 에너지를 ATP라고 일컫는데 미토콘드리아는 음식물로부터 이 ATP를 합성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또한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성장과 분화에도 관여한다. 하지만 이 같은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은 점점 나이가 들면서 쇠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미토콘드리아 기능의 쇠퇴에 대한 원인규명과 이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밝히는 것은 그동안 과학계의 오랜 숙원 가운데 하나였다. 아미쉬계 유럽 후손들은 9개의 하플로 그룹으로 나눠진다. 스캇 연구팀은 건강한 아미쉬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9개의 하플로 그룹 가운데 X 그룹이 가장 빈도가 높게 나타났다는 점을 규명했다. 연구팀은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미국 인간유전체학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아미쉬와 같이 고립된 생활은 하는 특정집단은 장수연구의 좋은 표본이 될 수 있다. 스캇 연구팀은 미국 인디애나주와 오하이오 주에 거주하는 아미쉬파를 연구했지만 메릴랜드대 연구팀은 펜실베니아 아미쉬파를 연구했다.
캔사스대 생물인류학 마이클 크로포드(Michael Crawford) 교수팀은 아미쉬 같은 특정종교집단인 미 중부 지역의 메노를 연구했다. 크로포드 교수는 “아미쉬, 메노와 같은 특정집단연구의 장점은 환경과 관련한 변수를 줄일 수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메노와 아미쉬 모두 술을 마시지 않으며 담배도 피지 않는다. 그들 대부분은 현대인처럼 컴퓨터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대신에 어떤 종류이든 일정량의 육체적 노동을 한다.
아미쉬나 메노와 같은 특정집단에 대한 연구에도 단점은 있다. 크로포드 교수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과 관련해 환경과 생활방식이 유전자만큼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연구를 위한 실험군과 실험군의 성과를 비교하기 위한 대조군이 모두 같은 집단에서 추출됐다면 환경영향의 가능성 해명이 한층 애매하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종족의 결합의 강도가 아주 세서 유전자 다양성이 크게 제한돼 있다면 과학자들이 연구하기에 용이하지 않을 수 있다.
“노화는 하플로 그룹 그 이상의 문제”, 반론도 있어
한편 장수와 미토콘드리아의 연관가능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니르 바질라이(Nir Barzilai)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대 노화연구소장은 95세 이상의 아쉬케나지 유대인에 대한 2편의 연구논문에서 “하플로 그룹은 노화와 연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화와 관련한 미토콘드리아 가설은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그것은 아직은 충분치 않은 근거”라고 덧붙였다. 바잘라이 연구팀은 하플로 그룹 대신 미토콘드리아 내의 단백질 조각이 노화와 관련돼 있음을 규명했다. 바질라이 소장은 “노화는 단순히 하플로 그룹 그 이상의 복잡한 것과 연관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하게 늙어가는 것과 유전자의 관련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갑론을박이다. 콜롬비아대 공공건강학 린다 프라이드(Linda P. Fried) 학장은 건강노화로 유명한 맥아더재단이 수행한 1990년대 스웨덴 쌍둥이에 대한 연구를 예로 들며 반박했다. 그는 “육체적 기능 다양성의 30%, 인지기능 다양성의 50%만이 유전적 요인에 기인한다”며 “결국 유전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스캇 교수팀 역시 자신들의 연구가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스캇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일반화할 수 있을지를 확인하기 위해 비아미쉬계 유럽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계획 중이다. 이와 함께 연구팀은 하플로 그룹X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보다 폭 넓은 연구를 준비 중에 있다.
다음 연구에서 스캇 연구팀은 환경과 생활방식에 대한 연구도 함께 수행할 계획이다. 아미쉬 사람들은 건강한 식단, 강한 종교적 믿음, 현대 농업장비를 배제한 재래식 농경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스캇 교수는 “아미쉬 사람들은 평균적인 현대인들보다 육체적으로 보다 활동적”이라며 “우리는 이러한 환경요인들이 어떻게 미토콘드리아에 영향을 미치는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화의 원인, 노화시계 ‘텔로미어’ 유력
한편 왜 사람이 늙는지 노화의 원인에 대해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텔로미어’가 유력후보로 지적되고 있다.
텔로미어는 인간의 DNA 양 끝에 위치한 반복적인 짧은 염기서열을 일컫는다. 이 텔로미어는 세포가 한 번 분열할 때마다 길이가 조금씩 줄어든다.
텔로미어가 어느 정도 일정 길이보다 짧아지면 (사람의 경우 1~2kb, 1kb는 DNA 염기 1천개의 길이) 세포는 복제를 멈추고 죽는다. 텔로미어의 길이는 보통 5~10kb이며 한 번 세포 분열할 때마다 50~200bp(1bp는 DNA 염기 1개의 길이)만큼 짧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이 정상적인 노화과정으로, 텔로미어는 이 때문에 ‘노화시계’라고도 불린다. 한편 죽지 않고 무한증식하는 암세포의 경우 이 텔로미어의 짧아지는 현상을 보완하는 텔로머라제라는 효소를 갖고 있어 죽지 않고 계속 증식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의대 엘리자베스 블랙번(Elizabeth Blackburn), 존스홉킨스 의대 캐럴 그리더(Carol Greider), 하바드 의대 잭 소스택(Jack Szostak) 교수는 텔로미어와 텔로머라제 효소에 대한 연구로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2010.1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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