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역억제제 테플리주맙(제품명 티지엘드)은 1형 당뇨병 발병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가진 최초의 치료제다. 기존 1형 당뇨병의 유일한 치료법이었던 인슐린은 병의 진행 속도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미국 제약사 프로벤션바이오가 제조하고 다국적제약사 사노피가 미국 내 판매를 담당하는 테플리주맙은 지난해 11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으면서 당뇨병 환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테플리주맙은 올해 본격적으로 미국 전역에 공급될 전망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15일(현지시간) 1형 당뇨병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한 테플리주맙을 2016년 임상시험 당시부터 투약한 후 6년 반 동안 병이 발생하지 않은 미국 20대 여성의 사례를 이례적으로 소개했다. 앞서 프로벤션바이오는 테플리주맙에 대한 임상시험 결과 당뇨병 발병 시기를 평균 2년 늦출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 네이처에 복용 사례가 소개된 미국의 20대 여성은 가족(여동생)이 1형 당뇨병과 합병증인 당뇨병 케토산증을 앓았다. 가족 중 환자가 발생하면서 이 20대 여성도 지속적으로 혈당과 인슐린 수치를 관리하고 주기적으로 당뇨병 징후 검사도 받아야 했다. 가족력으로 1형 당뇨병 발병 가능성이 높았던 이 여성은 2016년 테플리주맙 임상시험에 참여해 2주간 14바이알(병)을 투여받았다.
2011~2018년 당시 78명의 1형 당뇨병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테플리주맙의 효과를 살핀 연구에서는 약을 복용하고 평균 5년 뒤에 병이 발병했다. 위약을 복용한 사람들은 평균 2년 후에 발병했다. 이 여성의 경우 약을 복용하고 6년 6개월이 넘도록 병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같은 연구에서 이례적으로 10년 이상 1형 당뇨병이 발생하지 않은 사례도 확인됐다.
1형 당뇨병 유관단체들은 테플리주맙의 이같은 성과에 환영을 표했다. 애런 코왈스키 미국 청소년당뇨재단(JDRF) 이사장은 “테플리주맙은 1형 당뇨병을 고치는 최초의 치료법으로 이 분야에 있어 매우 큰 진전”이라고 전했다.
테플리주맙은 1형 당뇨병에 대한 치료나 예방 효과는 없지만 발병 시기를 늦춘다. 주로 소아에게서 발생하는 1형 당뇨병은 면역세포가 체내에서 인슐린의 분비를 담당하는 췌장의 베타세포를 공격하면서 인슐린 분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자가면역질환이다. 테플리주맙은 췌장의 베타세포를 공격하는 T세포를 차단해 인슐린의 정상적인 분비를 돕는 방식으로 발병을 지연시킨다.
학계에서는 T세포를 차단해 발병을 지연시키는 테플리주맙의 작용 방식에도 주목하고 있다. 1형 당뇨병뿐만 아니라 류머티스 관절염이나 다발성경화증과 같은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응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테플리주맙처럼 T세포를 차단하는 방식의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제 아바타셉트는 1형 당뇨병을 지연시키는 데 일부 효과가 확인됐다. 서로 다른 질환이지만 치료제 개발 전략에서 공통적으로 T세포를 차단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류머티스 관절염 전문가인 폴 에머리 영국 리즈대 교수는 “1형 당뇨병 환자 치료법은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의 모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동아사이언스 (dongascience.com)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2023.02.16 1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