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년 간 새들은 어떻게 진화했나'..방대한 진화계통도 작성
중국, 덴마크 등 국제공동연구진, 48종 유전체 비교
사이언스 논문 8편...“인간 말하기와 새의 발성학습 신경회로 유사점”
“이빨 없는 부리 1억 년 전 출현” “새들의 조상은 한때 최상위 포식자"
20개국 80여 기관서 200여명 연구자 참여...서울대 김희발 교수 등도
» 새들의 진화계통을 표현한 생명의 나무. 출처/ 미국 일리노이대학
지금까지 없던 최대 규모로 조류 48종의 유전체(게놈)를 분석한 국제 공동연구진이 조류 전체를 거의 다 포괄하는 조류 진화계통도를 작성했다. 이런 진화 계통 분석을 통해, 조류가 공룡 멸종 이후에 다양한 종으로 분화하는 ‘(종 분화의) 빅뱅’ 시대를 맞았다는 학설이 확인되었다.
또한 일부 새들의 발성학습과 인간의 말하기와 관련한 유전자들에서 유사점이 발견됐으며, 인간의 남성 염색체인 와이(Y)가 퇴화하는 것과 달리 조류의 여성 염색체인 더블유(W)는 여전히 왕성한 기능과 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체 차원에서 새들의 이빨 소실, 깃털 색깔 등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여러 단서가 제시됐다. 이와 함께 이번 연구에선 매와 독수리, 앵무새나 명금류까지 포함하는 육지 새들의 초기 공통조상이 한때 최상위 포식자(apex predator)였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자들은 전했다.
‘국제 조류 계통분석 컨소시엄’이라는 이름의 국제공동연구에는 중국 베이징게놈연구소(BGI),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등을 중심으로 20개 국 80여 연구기관에서 200여 명 과학자들이 참여했으며, 4년 간의 연구를 거쳐 29편 논문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8편은 과학저널 <사이어스> 특집판으로 발표됐다. 김희발 서울대 교수(농생명공학부) 등 국내 연구자도 100여 명 공저자 중 일부로 이 연구논문에 참여했다.
[사이언스 특집 http://www.sciencemag.org/content/346/6215/1308.short]
현존 조류의 전체 그림을 그릴 정도로 방대한 규모로 진행된 이번 유전체 분석에선 주요한 조류 계통을 각각 대표할 만한 종이 최소 1종씩 선정돼 분석됐다. 45종(까마귀, 오리, 비둘기, 매, 독수리, 딱따구리, 타조 등)의 유전체 염기서열이 이번에 새로 해독됐으며, 이미 해독된 3종(닭, 칠면조, 피리새)의 유전체 염기서열 정보를 합해 모두 48종 유전체가 비교, 분석됐다. 방대한 연구결과 중에서 눈에 띄는 몇 가지를 정리해본다.
조류의 급속 진화 ‘빅뱅’
-» 출처 / Science/AAAS, (클릭하면 화면 확대)
국제 공동연구진이 48종의 전장 유전체를 대상으로 종 분화의 시기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이번에 제시된 조류 계통분화도(옆 그림)에도 나타나듯이 6600만 년 전쯤 공룡을 비롯해 생물종의 대멸종 시대를 겪고도 살아남은 조류의 먼 조상이 이후 1000만~1500만 년 동안에 폭발적으로 분화하면서 현재의 종 다양성에 이른 것으로 해석됐다. 현재 조류 종은 1만 종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게 번성했는데, 그 바탕은 1억 년의 조류 역사에서 6600만 년 전부터 5000만 년 전까지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런 ‘빅뱅 진화’ 시기에 마련된 셈이다. ‘대멸종 이후, 조류의 빅뱅 진화’로 압축되는 결과는 현존 조류의 대부분을 이루는 "신조류(Neoaves)"가 훨씬 이전 시기에 이미 번성했을 것이라는 기존 학설과는 아주 다른 것이라고 연구진은 전했다. (잘 정리된 보도자료)
하늘 나는 새, 유전체도 가볍다
하늘 나는 새는 몸도 가볍지만 유전체도 가볍다는 게 이번 연구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중국 베이징연구소 연구진은 조류와 가까운 생물인 파충류 유전체와 비교하니 조류 유전체에는 반복 염기서열이 훨씬 적었으며, 파충류에서 갈라진 이후 초기 진화에서 수백 개 유전자가 소실된 것으로 분석됐다고 전했다. 조류의 유전체 염기서열 정보 규모는 포유류의 것과 비교할 때 대략 70% 적다. 다음은 보도자료에서 밝힌 중국 베이징게놈연구소 연구진의 말이다.
“(새들에선 사라진) 다수 유전자들이 사람 몸에선 필수 기능을 합니다. 예컨대 생식, 골격 형성, 폐 시스템 등이죠. …이런 핵심 유전자들의 소실은 아마도 새들한테 나타나는 서로 다른 여러 표현형질이 진화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봅니다. 흥미로운 발견이지요. 왜냐면 많은 사람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아주 다른 것이니까요. 사람들은 이노베이션이라는 것은 유전물질의 소실이 아니라 새로운 유전물질의 창조에 의해 이뤄진다고 보통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때로는 ‘적을수록 좋다(less is more)’는 거죠.” (보도자료)
48종의 유전체를 비교한 연구진은 조류의 유전체 ‘구조’는 다른 조류 종 간에도 상당히 비슷하게 1억 년 이상 동안 유지되어 왔다고 전했다. 포유류에 비하면 진화 속도는 느렸다는 것인데, 그렇더라도 발성학습 같은 일부 형질은 비슷한 생활방식을 지닌 종들 사이에서 훨씬 빠르게 진화해 먼 종들 간에도 수렴 진화의 패턴이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조류에선 이런 '수렴진화'가 상당히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http://www.youtube.com/watch?v=RcqRXMocu30&feature=player_embedded
새의 발성학습과 사람의 말하기
일부 새는 어떻게 ‘발성학습(vocal learning)’의 능력을 갖췄을까? 동일 종이나 다른 종의 발성을 듣고 배워서 따라하거나 흉내낼 수 있는 발성학습 능력은 앵무새나 벌새를 비롯해 일부 새들한테서 볼 수 있는데, 이번 연구에선 이런 특징이 인간의 말하기 능력과 비교됐다. 연구에선, “노래하는 새(songbird, 명금/鳴禽), 앵무새, 벌새처럼 발성학습 능력을 지닌 새들의 노래학습 신경회로와 인간 뇌의 말하기 영역과 관련한 50여 개 유전자의 기능에서 수렴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한다. 이런 유전자는 은 대부분 신경 연결망을 형성하는 데 관여하는 것들이었다. 다른 연구에선 새들이 노래할 때 발현 유전체(expressed genome)의 10퍼센트나 활성을 띠며, 서로 다른 뇌의 노래-학습 영역에 나타나는 활성의 갖가지 패턴이 후성 유전물질에 의해 조절된다는 분석결과도 제시됐다.
성 염색체: 포유류의 X, Y와 조류의 W, Z
포유류에서는 Y염색체가 남성을 결정해 남성은 X-Y 염색체, 여성은 X-X염색체를 지니지만, 조류에서는 W가 여성을 결정에 남성은 Z-Z염색체, 여성은 W-Z염색체를 지닌다. 특히 인간의 남성 염색체 Y는 진화 과정에서 생식과 관련한 유전자들 외에 다른 기능의 유전자들은 많이 퇴화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조류의 여성 염색체 W는 현재에도 매우 활발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이번 유전체 분석에서 확인됐다. 조사 대상인 48종의 새들 가운데 절반 가량의 W염색체에서는 여전히 활발한 기능을 하는 유전자들이 상당히 많이 발견됐다.
이빨의 소실, 깃털 색깔 등
그밖에 새의 부리에서 사라진 이빨의 흔적을 유전체에서 찾는 연구 작업도 이뤄졌다. 연구진은 현존 조류의 유전체와 이빨 지닌 척추동물의 유전체를 비교했으며, 이를 통해 새들은 이빨의 에나멜과 상아질을 만드는 유전체 부분에서 중요한 돌연변이를 일으켰음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빨과 관련한 5종 유전자들의 기능이 현존 조류의 공통조상에서 사라졌으며, 그 시기는 1억 년 훨씬 전일 것으로 추정했다. 조류의 종 분화 빅뱅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이미 이빨은 새들의 공통조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알록달록한 깃털 색깔의 진화는 물새와 육지새, 가금류에서 다르게 나타났다. 깃털을 이루는 베타케로틴 성분 유전자의 수는 물새에선 적었으며, 육지새는 이보다 2배가량 많았고 애완조류나 가금류에선 무려 8배나 더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 <사이언스> 특집 안내 자료
국제 공동연구진이 조류 45종의 유전체(게놈) 염기서열을 분석해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조류 진화계통도를 작성했다. 이 방대한 프로젝트는 20개국 수백명 연구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4년 이상 걸려 진행됐으며, 모든 주요 조류 계통에서 적어도 1종의 유전체를 분석했다. 여러 논문 중에서 8개 논문을 <사이언스>에 싣는다. 이 논문들을 종합하면, 그 결과는 조류 계통도에서 초기 종들이 어떻게 분기했는지 보여주며, 새, 악어, 공룡의 공동조상에 관해 오랫동안 계속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는 도움을 줄 만하다. 이번 연구는 또한 조류의 성 염색체와 발성학습의 진화, 그리고 새의 이빨이 사라지는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새로운 빛을 던져준다. 이런 연구결과는 백악기와 고(古)제3기의 경계시대에 일어난 공룡 멸종 이후 1000만 내지 1500만 년 동안의 조류 진화를 설명하는 ‘빅뱅 이론’을 뒷받침한다. 이 연구는 또한 매와 독수리, 앵무새와 명금류(songbirds)까지 포함하는 육지조류의 초기 공동조상이 최상위 포식자(apex predator)였음을 보여준다. 몇 가지 유전자를 연구해 과거 1억 년에 걸쳐 나타난 종 간의 관계를 추론하는 기존 연구방식과 달리, 이번 여구에선 전체 게놈을 조사해 조류 진화에 관한 더욱 명확한 그림을 얻었다. 이와 함께 리뷰 논문은 수각류 공룡에서 나온 조류의 기원 연구에서 이뤄진 최근 진전을 조명하며 특히 중국 북동부의 깃털 달린 공룡 화석 발견에 초점을 맞춘다. 이 저자들은 발달생물학과 기능해부학에 관한 현재 연구를 고생물학 기록에 통합해, 깃털, 날개, 비행과 같은 새들의 핵심 특징이 공룡 선조들에서 어떻게 기원했으며 진화하며 퍼졌는지 보여준다.… (자료: '새들의 진화계통도')
■ 한국 연구진 참여 논문(공저 100여명)의 초록
새들은 네발 척추동물(tetrapod vertebrates) 가운데 가장 많은 종을 갖춘 강(class)이며 많은 연구 영역에 폭넓게 관련돼 있다. 우리는 주요한 계통군을 모두 대표할 만한 48종 조류의 전장 게놈을 사용해 새의 거시진화(macroevolution)을 연구했다. 조류 게놈은 제한된 크기를 지닌다는 기본적인 특징을 띠는데, 이는 계통에 맞춘 반복 요소의 침식과 대량의 조각 결손, 그리고 유전자 소실 때문에 현저하게 일어났다. 더욱이 조류 게놈은 뉴클레오티드(DNA, RNA) 서열, 유전자 신터니(gene synteny), 염색체 구조 차원에서 보면 눈에 띄게 높은 수준의 진화적 안정상태(evolutionary stasis)를 보여준다. 이처럼 보존의 패턴을 보이지만, 우리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영역와 그렇지 않은 영역에서 중립진화와는 다른 변화(non-neutral evolutionary changes)를 여러 가지 찾아냈다. 이런 분석결과는 범-조류의 유전체 다양성이 서로 다른 생활방식에 대한 적응과 수렴적 형질 진화와 함께 변동(covary)함을 보여준다. (논문 바로가기)
(참조: 중립진화이론 -위키백과)
[새에 관한 사이언스온의 글들]
예순두살 바닷새의 출산..야생에서 노화의 진화는? (김신연, 2013. 05. 10)
http://scienceon.hani.co.kr/98348
결혼의 실패, 그리고 종의 분화 (남기웅, 2011. 08. 23)
http://scienceon.hani.co.kr/34324
지저귀는 새의 게놈 첫해독.. 언어학습 비밀 풀까 (뉴스, 2010. 04. 02)
http://scienceon.hani.co.kr/28007
새들한테도 타고난 ‘성격’ 있다?...서로 다른 공격행동 (뉴스, 2013. 12. 16)
http://scienceon.hani.co.kr/140621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2014. 12. 12
http://scienceon.hani.co.kr/22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