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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浪仙紀行 팔당 예봉산~운길산 종주]08년 8월 31일

산포로 2008. 8. 31. 21:11

[浪仙紀行 팔당 예봉산~운길산 종주]08년 8월 31일

 

오늘은 팔당 예봉산(683m)과 양수리 운길산(610m)을 종주하기로 하였습니다.

 

이곳은 북한강과 남한강을 옆으로 끼고 종주를 하여 매우 경치가 좋은곳이기도 합니다.

 

낭선도 예전에는 예봉산은 멋진 풍광이기에 가끔 오곤 하였으나 교통이 불편하여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에서 팔당역까지 전철이 개통되어 말끔하게 해결하였네요.

 

낭선도 오늘은 오랜만에 전철로 팔당역에 내려 수월하게 예봉산에서 운길산까지 산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길이 뚫리니 산도 전철도 산꾼들로 법썩입니다.

그러나 운길산행은 별로 산행하는 꾼들이 없어 조용하네요.

 

역시 종주산행의 맛입니다.

 

또한 운길산 하산길에 역사 깊은 수종사에 잠시 들러 저와 가족을 위한 불공울 드리며 좋은 옛시 한수를 떠 올립니다. 

 

水鐘寺(수종사)             수종사

 

古寺危峯下(고사위봉하)  옛 절은 가파른 봉우리 아래

蘿陰細路分(나음세로분)  송라 그늘 소롯길이 나뉘었구나.

樓臨兩江水(누임양강수)  누각은 두물머리 임하여 있고

簷帶半山雲(첨대반산운)  처마는 반산 구름 둘러있구나.

帆影禪窓落(범영선창락)  돛 그림자 선창에 떨어지더니

鐘聲過客聞(종성과객문)  지나던 객 종소리가 들리는도다.

雙林屢回首(쌍림누회수)  쌍림을 자꾸만 고개 돌리니

蒼翠漫氤氳(청취만인온)  푸른빛이 자옥하니 어지럽구나.

 

조선 후기의 문신 夢窩 金昌集(몽와 김창집, 1648~1722)의 시입니다. 가파른 운길산 높은 자락에 수종사는 있습니다. 가쁜 숨을 가누고 누다락에 올라보니, 장하게 툭 트인 시계 아래로 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두물머리의 장관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먼 강물 위에는 돛단배 그림자가 언뜻 보이는가 싶더니 구름이 어느새 이를 지웁니다. 석양의 종소리가 댕그렁 울려 풍경에 취해있던 과객의 정신이 화들짝 돌아옵니다. 이제 갈 때가 되었습니다. 속세를 벗어나 산사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 티끌 기운 다 씻어내니 몸과 마음이 다 개운합니다.

 

산뜻한 팔당역입니다. 산꾼들에게는 너무나도 고맙지요. 산행은 정말 맘만 먹으면 언제나 편하게 할 수 있네요.

 

 

 오르는 길에 뒤돌아 양수리를 담아 봅니다. 위가 남한강, 아래에 북한강이 보이네요. 아름답습니다.

 

 예봉산정상인데요 팔당역에서 멀지 않습니다. 

 

멀리 보이는 가야할 운길산이지요. 

 

철문봉인데요. 정조와 함께 이조시대 르네상스를 이룬 다산 정약용 일가에 관한 사연이 깃든 곳이기도 합니다.

 

낭선은 우리들이 역사속에서 인문학을 통해 볼 수 있는 많은 영웅들은 생에 대한 집념과 선택의 집중, 주변인물의 적절한 활용 등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많다고 봅니다. 그러나 특히 중요한 것은 시대에 앞선 예지와 지식 등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당시 이곳에 살던 정약용 일가는 서양의 천주교를 받아 들여 다른 지역보다도 앞선 서양인들을 통한 신지식을 접할 수 있었기에 새로운 개혁을 원하던 정조와 쉽게 뜻을 이루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정조의 사후에는 보수세력인 양반에 엄청난 핍박을 받지 않습니까?

 

양반세력은 정약용을 죽이지는 못하고 귀양을 보냅니다. 인조반정후 제주도로 귀양을 보낸 광해군과 같은 경우겠지요.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하기 때문이지요. 인조반정후 조선은 또 다시 진한 피바다로 물들지 않았습니까? 인조같은 위인을 왕으로 내세웠으니 말입니다.

 

낭선은 이곳에서 다시한번 개혁이 얼마나 힘든지를 절절히 깨닫습니다.  

 

인간은 성숙할수록 관대해지고 사회, 국가는 발전할수록 포용력이 넓어진다고 누군가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구리시가 보이네요. 멀리 보이는 산이 삼각산, 도봉산입니다.

 

 

 

운길산정상입니다.

 

 

 운길산 수종사에 565년된 세조가 심은 은행나무입니다. 역시 풍광이 대단합니다. 아직도 나무의 푸르름이 짙어 기운이 넘칩니다.

 

낭선은 우리가 오늘 겪는 "나의 모습"이 가끔 자기 존립은 커녕 나의 해체를 넘어 자기 소멸까지 낳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타인을 배척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사물을 두겹의 시각으로 보지 못하는데서 일어납니다. 어느 하나의 시각만을 진리라고 믿는 순간, 또 다른 시각을 상실하기 때문이지요.

 

경직된 사고의 노예가 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지요. 그럼에도 거기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중에 자신의 독선과 아집을 깨닫게 된 사람들도 "그럼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무엇이란 말인가?"하는 생각때문에 끝내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지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양극을 피하는 중간(The middle against both ends)"입니다.

 

지금 우리는 모든것의 경계가 소멸해 가는 "트랜스"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그려놓은 경계를 과감히 넘어 또 다른 세계를 탐색하여야 합니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포용력을 갖게 되고, 미래의 비전으로 환하게 밝아오겠지요.

 

요사이 빚어지는 청와대와 불교계의 부조화가 글로벌시대에 맞게 상생하여 잘 해결되시길 기원합니다.

 

수종사 대웅전 앞에 위로는 예쁜 연등이 아래는 난초의 향이 너무 좋습니다. 모든이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낭선도 시주를 하고 불공을 드렸지요.

 

 

 

감사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