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浪仙紀行 청평 운두봉(678.4m)~오목산~운두목현~임도~축령산(886m)~서리산~주차장 종주산행]09년 10월 5일
* 산행구간 : 경기 청평 운두봉(678.4m)~오목산~운두목현~임도~축령산(886m)~서리산~주차장
* 일 시 : 09년 10월 5일(월)
* 모임장소 및 출발시각 : 청량리역 롯데백화점앞 가평행버스 오전 7시 20분
* 날 씨 : 쾌청(최고 온도 23℃)
* 동반자 : 홀로 산행
* 산행거리 : 18.3km
* 산행지 도착시각 : 12일(토) 오전 8시 50분 원대성리 도착
오전 11시50분 운두봉 도착
오후 1시 50분 축령산 도착
오후 4시 40분 주차장 버스종점 도착
오후 6시 40분 마석행 버스 승차
* 산행시간 : 약 8시간(점심식사 및 사진촬영시간 포함)
토요일이 추석으로 휴가가 짧아 월요일인 오늘까지 쉬는 직장이 많아 서울거리가 한산합니다.
이에 낭선은 주저없이 산으로 갑니다.
오늘 산행은 전날 개복숭아를 따는 탓에 못마친 대성리 운두봉에서 축령산과 서리산 종주산행을 하기로 합니다.
낭선은 앞으로 수도권에서 교통이 편하여 이곳 대성리 축령산코스를 당일 또는 1박코스로 양수리에서 유명산코스와 함께 애용할 계획입니다.
그러기에 앞서 축령산에서 운두봉을 가는 길을 찾으려함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드디어 오늘 산행에서 이코스를 완벽하게 찾았네요.
다음으로는 서리산에서 주금산코스를 알아 보려 합니다.
또한 이곳 축령산은 조선시대 예종에 의해 죽임을 당한 남이장군(南怡將軍)의 전설이 가득한 곳입니다.
남이(南怡, 1441~1468)는 태종 이방원의 넷째딸 정선공주의 손자이니, 외손자입니다.
왕손으로는 드물게 17세에 무과(武科)에 급제해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고 여진족을 몰아내는데 큰 공을 세워 세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인물입니다. 27세에 세조에 의해 병권을 장악하는 병조판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백두산을 올라 쓴시가 지금도 전합니다.
北征歌(북정가) 북을 정벌하며 부른 노래
白頭山石摩刀盡(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의 바윗돌은 칼을 갈아서 다 없애고
豆萬江水飮馬無(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다 없애리라.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남아로 태어나 이십대에 나라를 평화롭게 하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누가 일러 나를 대장부라 할 것인가
그러나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하는 그해에 이 젊은 병조판서는 유자광의 모함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유자광은 위시중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을 男兒二十未得國(남아이십미득국, 남아로 태어나 이십대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으로 바꿔 역모를 도모한다는 혐의로 예종에게 간하여 남이를 죽입니다.
대성터널 좌측 임도로 향합니다.
뾰루봉이 보입니다.
먼저 맛있는 개복숭아를 주신 복숭아나무를 다시 찾아 보니 아직도 몇개가 남아 있네요.
다시 한번 맛보니 역시 맛이 좋습니다.
운두봉능선이 보입니다.
가야할 축령산이 보입니다.
지나온 운두봉입니다.
남쪽으로 천마산이 보입니다.
축령산 정상에서 남이바위를 조금 못간 왼쪽 조그만 길로 접어들어야 운두봉을 갈수 있네요.
역시나 축령산 정상 부근에 오니 단풍이 들었네요. 아름답습니다.
축령산 정상에서 운두봉과 지나온 능선을 봅니다.
북배산 방화선과는 달리 이곳은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서리산 정상에 갈대밭입니다.
지나온 축령산 정상입니다.
버스종점 슈퍼 앞에 오동나무가 멋집니다.
4시 40분에 도착하여 35분 마석행 버스를 못 탔네요. 잘 됐습니다.
종점슈퍼에서 막걸리 한잔하며 6시 40분 버스를 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