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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연구실 실전편] 12. 우리 랩이 방송을 타요 – 엄마 나도 내 논문도 티브이 나왔어!

산포로 2024. 10. 4. 14:30

[해외 연구실 실전편] 12. 우리 랩이 방송을 타요 – 엄마 나도 내 논문도 티브이 나왔어!

 

연구실 생활을 6년 반 넘게 하고 있으면서,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 건 방송사나 잡지사 등이 촬영을 하러 오는 날이다. 주로 연구실에서 중요한 발견이 될 법한 논문이 나온다거나, 정부에서 연구비를 팀 단위로 수주받는 등의 경사가 생기거나 하면 꼭 촬영팀이 연구실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정말 적응이 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교수님과 촬영팀이 취재 일정을 확정하면, 그 뒤부터 바빠지는 건 연구실 행정원 선생님이다. 단순하게는 어느 구역에서 어떤 촬영을 할 것이니 청소를 해 달라는 부탁을 해야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크게는 누가 어느 실험을 데모를 하고 누가 자료 화면에 나갈 업무 모습에 들어갈 것인가 등등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뿐 아니라, 유럽연합 회원국의 경우에는 촬영 전에 초상권 사용 및 개인 정보 사용에 대한 동의를 서면으로 받아야 한다. 이 문서화 작업 또한 행정원 선생님의 일이 되기 때문에, 상당히 바쁘게 돌아간다.

 

주로 이러한 촬영을 할 때는, 아무리 같은 연구팀이라고 해도 카메라 앞에서 어색함 없이 평소 하던 대로 잘하는 연구원들을 우선으로 고려하게 되고, 필요하다면 사전 동의를 얻어 우리가 뭘 해야 할 지에 대해서교수님과 함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너는 이걸 하고, 너는 저걸 하고 인터뷰는 이런 내용으로 대답을 하고 등등에 대해서 논의를 하는데, 소위 말하는 ‘우리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을 여기서도 보게 된다. 아무래도 언론에 보도가 된다거나, 재단 홈페이지 등에 오래오래 아카이브 된다는 걸 감안하면,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은 맞다고 본다. 

 

2024년 2월, 우리 교수님이 Fondation ARC Léopold Griffuel라고 하는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프랑스와 벨기에를 비롯한 프랑스어권 국가 및 지역에서 종양생물학과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실의 책임자에게 주는 큰 상 중 하나인데, 교수님께서 올해 수상자로 선정이 되었다는 거다. 해당 재단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교수님이 연구실에서 어떻게 생활하시고, 어떤 식으로 팀원들과 연구를 해 나가는지 등등에 대해서 단편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연락을 해 주었다. 뭐 그렇구나 하고 있었는데, 이 소식이 들리고 얼마 되지 않아 행정원 선생님의 안내 메일을 받게 된다.

Good evening Yura,

As you know, Cédric has accepted the filming of the short movie. The director already interviewed Cédric this week and would like to come to the lab and film on 20/02, whole day.

Could you tell me whether you’d like to be filmed with Cédric?

Thank you for your answer.


은은한 관심종자인 나로서는,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옵션이 아니겠는가. 메일을 받고, ‘내가 언제 기록물에 나올 수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바로 알겠다고 대답을 보냈다. 그리고 받은 디테일은 더더욱이 구미가 당기는 옵션이었는데, 무엇보다 어차피 미팅 내용은 비밀 유지 서약 등의 문제로 음소거가 될 확률이 매우 높으니, 굳이 프랑스어로 미팅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 그래서 연구실 사정에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촬영 이틀 전, 교수님께서는 미팅에 쓸 프레젠테이션을 점검하시더니 어느 데이터가 어떻게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걸로 촬영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촬영 당일, 촬영을 하루만 한다고 해서 얼마나 크게 오려나 했는데 그럴 리가. 정말 온갖 전문 장비와 열 명 넘는 스태프가 연구실에 딸린 세미나실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됐다. 그뿐 아니라, 예능 촬영에서 전체 스태프들이 화면에 잡힐 때 보일 만한 큰 장비와 조명들이 세팅되고, 하다 하다 붐마이크까지 온 것이었다. 

 

이 날, 나는 내가 주인공도 아니고 이미 교수님과 어떻게 무엇을 들고 이 촬영에 들어가야 할 지에 대해 여러 번에 걸쳐 점검을 했는데도 불구하고도 땀을 정말 많이 흘렸을 정도로 긴장한 미팅을 하게 됐다. 촬영이 다 끝나고, 교수님은 ‘국제학회에서 플래쉬톡 할 때도 신나서 발표하고 질의응답받던 네가 이미 짜인 대로 돌아가는 촬영에 떨 줄은 생각도 못 했다’는 한 줄 평을 남기시고는 영상이 나오면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최종본에는 이렇게 나왔다

 

최종으로 공개된 영화에서는 결국 미팅하는 뒷모습이 나왔다. 교수님과 내 동료는 모르겠지만, 이 날 계속 땀도 흘리고 영어 단어도 생각이 안 나서 이래저래 절어 있었던 걸 감안하면 차라리 이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벨기에 프랑스어권 정부의 국영 방송국과 해당 재단의 링크드인 페이지를 통해 이 기록물이 학교 밖으로도 공개가 되었고, 뒷모습임에도 나를 알아봐 준 사람들의 연락을 꽤 오래 받았었더랬다.

 

최근에 내가 공저자로 참여한 논문이 Cell지에 나왔다. 데이터 분석에 일부 공조를 했고, 피부가 상처를 입은 후 치유가 되기 위해서는 유동성을 가지는 상태(fluid-like state)를 거친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궁금하신 분들은 10.1016/j.cell.2024.07.031로 오면 된다)이다. 해당 프로젝트가 벨기에 내에서 피부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주목을 받은 논문이었고, 그동안은 세포가 항상성을 유지하고 치유를 하기 위해서는 어느 pathway가 활성을 갖냐 정도에 대해서만 연구가 되어 있었다. 그 덕에, 중간 상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밝힌 우리 연구실의 논문이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날은 따로 교수님께서 방송사가 온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셔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상당한 오산이었다. 알고 보니 교수님께서는 다른 일정들 때문에 도저히 방송사를 연구실로 부르기엔 한계가 있었고, 그래서 방송사와 온라인으로 인터뷰를 하여 자료화면처럼 나가게 될 거라고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리고 덤으로 기사도 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셨고, 같은 날 저녁에 그 논문이 여기저기서 뉴스기사화 된 걸 볼 수 있었다.


이 기사가 나가고, 이 논문의 1 저자인 내 동료는 기사들을 인용하면서 나도 함께 게시물에 태그를 해 두었다. 덕분에 기사가 나갔다는 것도 확인하고, 또 여러 곳에서 내가 1 저자로 참여한 논문이 아님에도 축하 연락을 받았다. 

 

농담으로 ‘엄마 나 티브이 나왔어!’라고 하는 밈이 있었다. 그런 소리를 해 볼 수 있는 날이 과학자로서 있을까 싶었는데, 이걸 또 벨기에에서 해낸다. 링크드인이며 모든 소셜미디어에서 나를 팔로우하는 친동생이 누구보다 빠르게 부모님과 이 기록물들을 나누었고, 덕분에 잠시나마 나름대로 자랑스러운 딸 놀이를 좀 했다. 그리고 곧 서브미션 할 논문(은 공동 1 저자다)도 이렇게 빛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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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송유라) 등록 2024.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