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연구실 실전편] 10. 학교가 종교와 정치적 견해에 대해 칼을 꺼내든 순간 - 또 다른 싸움의 서막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 학교 이름의 Libre의 뜻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의 교명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브뤼셀 자유 대학교인데,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유로움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 학교 이름의 "자유"는 ‘학풍이 어떠한 정치색이나 종교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라는 뜻을 가진다. 그 말인즉슨 어떠한 종교도 어떠한 정치색도 학생의 활동이나 학교 수업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학내에서는 특정 정치 성향이나 종교적 색채가 존재하지 않으며, 이와 관련된 학생 단체의 활동을 완전히 금하고 있다. 그뿐인가, 특정 종교나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교수들이 있는 경우에는 교내 학사팀에 신고를 하면 대처를 해 준다.

학내가 조용하지 못하게 된 건 조금 오래된 일이었지만, 그동안에는 학교에선 단순 경고를 주는 선에서 끝났었다. 학교가 종교와 정치 성향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어느 한 종교를 특별히 배려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는데, 특정 종교를 좇는 학생들 일부가 몇 년에 걸쳐 기도실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학교는 공간을 따로 빼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실제로 이와 같은 대처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거다. 결국 일부 학생들이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강의실이며 복도며 학교 시설을 무단 점거하는 방식으로 떼를 쓰기 시작했고, 학교는 학교 시설의 무단 점거에 대해 칼을 꺼내들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경고성 이메일을 몇 차례 보내게 된다.
이 이후에 별 일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면 얼마나 좋겠나 싶은데, 다른 사이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학교에서 포교를 하기 시작한 게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 뿐 아니라, 그 종교에서 나와서 공격적으로 포교를 하는 사람들까지 학내를 점거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캠퍼스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학교의 허가 없이 선전물을 세워 두고 전도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었다. 그뿐인가, 캠퍼스 내에는 경찰이 학교 허가 없이 들어와 체포나 조사를 할 수 없다는 벨기에 법을 악용한 전도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작게는 학생들을 붙잡고 이야기를 하는 수준이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들이 학생들이며 교직원이며 붙잡고 늘어지다가 본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무시하면 다소 폭력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이 유입되는 게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폭력적이어도 학내에서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학교 당국을 먼저 거쳐야 하고, 실제로 맞은 사람이 병원을 가서 진단을 받지 않으면 처벌이 거의 되지 않는 벨기에 사법 수준을 이용하는 전도꾼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별일 없이 조용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서도, 이란의 한 여학생이 도덕 경찰에 의해 의문사를 했다는 것,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문제라면 우리 학교가 법학 연구소가 있어 여러 국제기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학내에 생각보다 이슬람을 믿는 레바논이나 이란,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학생들이 많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교내에서 종파가 다른 학생들 간의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교직원 포탈을 통해 여러 차례 접하게 되고, 실제로 지금 일하는 곳인 의대 캠퍼스 내에서 발생한 종교적 충돌을 보게 되면서 이 일이 더 이상 그냥 행정상으로 듣는 일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교는 일련의 사건을 여러 차례 겪어 내면서, 2022-2023 학년도가 종료된 2023년 여름 기간 내내 이 사단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 가에 대해 다양한 부서가 여러 차례에 거쳐 미팅을 진행했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학내에 일반 동아리 등으로 신고된 비밀 기도회가 여럿 있고, 학내에서 생각 이상으로 종교와 관련된 혐오 발언 및 물리적 충돌이 여러 차례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학교는 결국 이 일에 대해 총장 선에서 강경한 대처를 처하게 된다. 그동안 정말 소극적이다 못해 여러 번의 메일로 ‘좋은 게 좋은 것이니 적당히 해라’ 정도로 끝났다면, 2023년 9월 초에 받은 메일에는 총장의 서명이 들어있었고, 이 메일은 학교의 입장을 확실히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준이었다.
친애하는 학내 구성원 여러분,
우리 대학 구성원 중 일부는 학내에서 여러 차례의 기도 모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에 정말 큰 걱정을 표하기 위해 이 메일을 보냅니다. 또한 학교 당국은 이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에 대해 학내 구성원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메일을 통해 입장을 표명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브뤼셀 자유 대학은 개방형 대학이자 종교와 정치적 색채에서 자유로운 곳입니다. 또한 학내 구성원의 1/3 이상이 해외 출신으로 구성 되어 있다 보니, 개개인의 다양성 또한 존중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학내 구성원들은 캠퍼스 내에서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으며, 표현 또한 자유를 보장받습니다. 이 외에도 양심과 종교 혹은 신념에 대한 자유 또한 학교 당국에서는 개인이 헌신할 수 있도록 그 범위를 보장하고 존중하고자 합니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고는 하지만, 우리 대학에서는 개인을 위해 모든 공간을 대여해 줄 수는 없습니다. 또한 수업과 학사 운영 방식을 조정해 달라는 모든 요청을 들어주기 어렵습니다. 우리 대학을 구성하는 캠퍼스에서는 학습과 연구에 전념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기도, 예배 또는 명상을 위한 공간을 설치해 달라는 요청은 대학 당국에 의해 수락되지 않으며, 이를 위한 학내 구성원 개인의 시설 무단 점거 또한 엄격하게 금지합니다.
사실 메일만 읽어보면 부드러운데 싶지만, 꽤나 장문의 메일을 총장의 명의로 보낸다는 건 학교가 정말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동안 학교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던 걸 고려하면 정말 학교 당국이 해 줄 수 있는 관용의 끝까지 간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이 메일이 발송된 2023년 9월 1일 이후로, 학교는 정말 조용해졌다. 그동안 내가 일하는 의대 캠퍼스에서도 특정 종교를 믿는 학생들이 복도와 0층 로비에 모여 시끄러웠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는데, 개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특정 종교의 학생들이 복도나 세미나실 등을 무단 점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됐다. 또 그뿐일까, 캠퍼스 내에서는 더 이상 전도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볼 수도 없게 되었고, 캠퍼스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던 홍보물과 전도꾼들 또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정말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도대체 종교가 뭐라서 이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나는 친구 따라갔던 성당이 좋아 20년 넘게 천주교를 믿고 있지만, 애초부터 잘 되면 내 탓이고 아니면 주님 탓을 하는 게 종교 신념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인간이라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학내가 조용하니 좋긴 한데, 칼을 뽑아야 조용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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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송유라) 등록 2024.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