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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연구실 실전편] 09. 취업 추천으로 금 간 우정 - 체계 없는 회사는 추천하지도 받지도 맙시다

산포로 2024. 8. 12. 09:46

  [해외 연구실 실전편] 09. 취업 추천으로 금 간 우정 - 체계 없는 회사는 추천하지도 받지도 맙시다

 

벨기에에서는 단순히 이미 올라온 공고에 지원을 해서 채용이 되는 구조도 있지만, ‘주변인 추천’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제도가 있다. 대다수의 기업들의 경우에는 인재 포탈을 통해 지원서를 넣을 때, 누구를 통해 추천을 받았는지 이름을 적으라고 한다. 이때 해당 지원자가 채용이 되면, 그 추천자는 인센티브를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외에도 교수님들이나 주변 박사 후 연구원들이 직접 채용담당자에게 자기가 누구를 추천한다고 대놓고 이야기를 하고, 그 뒤에 면접 일정이나 채용 일정을 조율하는 경우도 있다.

 

ⓒ Pixabay

 

나는 나와 학계에서 꽤 가깝게 지내던 벨기에 사람 (편의상 A라고 하겠다)이 있었다. 내가 벨기에에 왔을 때만 해도 A는 시니어 포닥 포지션에 있었고, 내가 이 사람이 일하는 대학에 출장을 가면, 저녁에 커피챗을 빙자한 맥주챗을 종종 할 정도로 친한 사람이었다. 맥주챗을 하면서 A는 나에게 박사를 왜 하냐고 물었고, 나는 졸업하고 회사를 가고 싶은데 분석 포지션은 석사 포지션으로 가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항상 그랬었다. 이걸 기억하던 A는, 2022년 여름에 나에게 회사에 채용 추천을 해 줄까 한다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추천이, 우리의 친한 관계를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만들어 놓는 시발점이 될 것 이라고는 하등 생각을 못 했다는 데 있다. 이 추천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왜 체계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회사는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걸 아주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는 좋은 교훈이 됐다. 그리고 특히나 인사팀이 제대로 꾸려지지 않은 회사는 더더욱 걸러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느끼게 해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 말이다.

 

그 회사는 spatial transcriptomics와 single-cell genomics 관련 플랫폼을 개발하고 분석을 해 주는 일을 했는데, 주 고객들은 병원이었다. 본인들이 데리고 있는 분석 담당자가 따로 없어 그동안은 어떻게 외주를 주며 해결했지만, 회사 몸집이 커지는 것은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자신들이 데리고 있을 분석 담당자가 필요했다는 거다. A는 이 포지션에 내가 괜찮을 것 같다며 추천을 했고, 메일로 CV와 링크드인 프로필을 보내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 두었다. 

 

2022년 12월에 이 회사의 사장 격인 M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진행한 커피챗에서는 자신의 회사가 어떤 회사이고, 회사에서 정확히 원하는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를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강점과 학사와 석사 시절에 했던 업무를 기반으로, 내가 어느 업무에 필요할지를 이미 고민해 온 M을 보면서 이 회사가 꽤나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기간 이후로, 정말 이 회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정작 서류와 커피챗 등 할 건 2022년에 다 했지만, 2023년 1월 중순이 되어서야 연락을 받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바빴다 어쨌다 등의 문제가 아니라, 연락의 요지는 ‘만약 네 디펜스가 확정이 아니라면, 우리와 프리랜서 계약을 하는 데 문제가 없어?’였다. 그래서 이전에도 번역 업무와 관련해서 병행을 했었는데 상관없었다고 하니, 한참을 또 대답이 없다가 1월 말이 되어서야 ‘연초라 매우 바빴다. 면접은 2월 3일에 보자’라고 통보가 왔다. 여기서 그만둔다고 해야했었나 싶었는데,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됐다. 

 

알고 보니 이 회사는 인사팀이 따로 없는 회사였고, 사장인 M이 인사와 회계와 모든 걸 다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바이어를 만나고, 새로 세팅할 플랫폼도 M 혼자서 관여를 하고 있다며. 결국 행정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알음알음 드러나고 있었고, A도 어느 순간부터 이 회사에 대해서 더 이상 나와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은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2월 초에 면접을 보고, 4월이 다 지나가도록 M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벨기에에서는 대부분이 채용이 안 되면 연락을 주지 않다 보니, 당연히 최종 채용에서 떨어진 모양이겠지 싶어 별 생각을 안 하기로 했다. 문제는 A가 여기서 조용히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계속 나에게 같잖은 희망을 불어넣으며 ‘M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바쁜가 보다.’ 라거나 ‘그래도 M이 하는 회사가 좋긴 해’라며 계속 자신의 친구에 대한 믿음을 얄팍하게나마 드러내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 회사에 가지 않기로 했고, 6월 중순이 되어서야 거절 메일을 보냈다. A는 내가 오퍼를 거절한다는 데에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중간에서 추천한 자기 이미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하지만 더 이상 A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냥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신념대로 M에게 메일을 보내게 된다. 물론 거짓말을 한가득 쳐서.

 

M에게, 요새 링크드인을 보니 학회며 뭐며 참 바빠 보이더라고. 콘퍼런스에서 재미난 것 많이 배우고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번 메일은 다른 게 아니라, 너희 회사에서 이야기 한 채용에 대해서 거절하려고 메일로 이야기를 해. 다른 건 아니고, 나에게 더 맞는 곳을 찾은 것 같아서 그곳에서 계속 일을 하기로 결정했어. 결정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내 결정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고 지금 찾고 있는 포지션에 적격자가 빨리 나타났으면 좋겠다. 

 

물론 메일이야 저렇게 보냈지만, 내가 M의 회사를 가면 안 된다 생각한 건 위에서도 말했듯 체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장이 인사고과와 회계와 행정을 모두 한다는 건, 모든 것에 전문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밀 보장 유지 서약서 양식도 없어서, 이 서류 양식마저도 일개 지원자인 나에게 검토를 맡긴 거다. 만약에 내가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서류를 다 바꾸면 어쩌려고? 싶은 생각이 든 순간. 알고 보니 그동안은 이런 서류를 쓸 필요가 없었다는 거다.

 

심지어 그동안 비유럽권 시민권자는 다른 대학을 통해 뽑은 학생을 공동지도 한 게 전부라, 비자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었다. 그냥 벨기에나 다른 유럽연합 시민권자처럼 뽑아서 그냥 데려오면 된다 생각한 것도 싫었는데, 나에게 프리랜서 비자를 받아서 자기들에게 수주를 주는 식으로 일을 할 수 없냐는 거였다. 후자는 더더욱 문제가 되는 게, 법적으로 걸리면 탈세 등으로 회사도 나도 귀찮아지는 터라 싫다고 했었다. 그리고 프리랜서 비자는 1년에 얼마 이하로 벌면 벨기에는 비자가 안 나오는 문제도 있어서, 더더욱이 노동법과 관련된 책임을 나에게만 지우려는 것 같아 너무 싫었다. 

 

그뿐 아니라 면접 이후로 연락 한 번 하는 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 뭐 연락을 해도 일주일이 지나서야 연락이 오고, 그때마다 자기네가 이래서 바쁘고 저래서 바쁘니 기다려달라는 말 뿐이었으니. 게다가 4월 이후로는 업무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무슨 프로젝트고, 어떻게 진행을 하고 내가 정확히 이 일에서 해 주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듣지도 못한 채 그냥 낙동강 오리알이 된 셈이었다.

 

A는 그럴 리가 없다고 했지만, M은 나를 다 잡은 물고기 취급을 하고 있었다는 게 제일 싫었다. 내가 이 부분을 정말 뼈저리게 느낀 건, 5월과 6월에 이 회사 사람들이 우르르 해외 학회랍시고 미국과 남유럽을 오가며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 만한 휴양지에서 잘 먹고 잘 놀고 있는 사진을 찍어 올리는 걸 링크드인 포스트로 봤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이 상황까지 와서 얻은 결론은, 날 그냥 이미 수족관에 넣어놓은 광어로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어차피 뭘 해도 도망 안 가겠구나 싶은.

 

저러고 M은 나에게 메일로 구구절절 하소연을 하는 메일을, 한 달이 더 지나서야 답장이랍시고 보냈다. 답장을 읽고 별 말이 없으니, 본인 딴에는 속된 말론 상당히 쫄렸는지 전화를 해서 나에게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핑계랍시고 댄 말이, ‘프로젝트 론칭이 늦어졌는데, 투자금이 늦게 들어와서 그렇다. 우리가 너를 채용하고자 하는 열정과 의지가 부족했다고 생각했으면 미안하다’는 말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상당히 핑계 같아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러면서 A는 M에게서 이 모든 내용을 듣고, 나에게 M이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 이해해 줄 수 없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추천을 했는데 자기 이미지가 무엇이 되겠냐며. 그러면서 M이 A에게, 혹시 내가 받은 오퍼가 틀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기에게 다시 이야길 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보라 했다는 걸 듣고 어이가 없었다.

 

저 일을 겪은 반년을 계기로, 여러 가지를 좀 배운 것 같다. 특히, 어떤 회사를 어떻게 걸러야 하냐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 교수님의 오퍼를 보며, 어디든 간에 나를 정말로 필요하다 느끼면 나를 잡기 위해 그만큼의 신경을 써서 일을 해 줄 것이라는 것도 배웠다. 어떻게 보면 저 회사를 거른 게 다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여전히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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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송유라) 등록2024.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