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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연구실 실전편] 08. 공동지도교수와 공동 학위제도 –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위해 농부 여러 명이 필요하다

산포로 2024. 7. 29. 10:06

[해외 연구실 실전편] 08. 공동지도교수와 공동 학위제도 –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위해 농부 여러 명이 필요하다

 

벨기에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느끼는 점 중 하나는, 이 동네는 학생을 키우기 위해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제도에 유연성을 두었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나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두 가지 제도가 정말 학생들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데, 그중 하나는 공동지도교수 지정 제도이고, 다른 하나는 벨기에를 제외한 타 국가에 있는 대학과 진행하는 공동학위제도다. 두 제도를 통해 이득을 보는 학생이 생각 이상으로 많은 편이고 – 는 나도 마찬가지다 – 실제로 학교에서는 필요한 경우라면 이 두 제도를 활용하라고 장려를 하는 편이다. 그리고 한국과 벨기에에서 의미하는 이 두 제도는 꽤나 큰 차이가 있다. 

 

ⓒ Pixabay

 

한국의 공동지도교수 제도는 2인 이상의 교수로 구성된 지도위원회가 공동으로 학생을 지도하는데, 이때 주로 대표 혹은 책임 지도교수와 그렇지 않은 교수로 나뉘는 것으로 기억한다. 벨기에의 경우에는 이를 박사 커미티 제도라고 부르는데, 이 커미티에 어느 교수를 지정할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입학을 승인받는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또한 이 커미티의 경우, 지도교수는 커미티의 의장 격인 책임 교수를 담당할 수 없는데, 매년 커미티에서 진행하는 박사 재등록 심사에 최대한 공정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벨기에의 공동지도교수 제도는 말 그대로 두 명의 교수를 두고, 프로젝트나 논문 지도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두 명의 공동지도교수는 각자의 직책이나 연차에 상관없이 각자 지도교수의 역할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데, 주로 학생이 속해 있는 연구실 지도교수가 학생이 필요한 특정 분야를 가이드할 수 없을 때 이 공동지도교수 제도를 이용하게 된다. 덕분에 학생들은 필요한 부분을 심층적으로 4년 내지는 5년에 거쳐 트레이닝을 받는 셈이 된다. 또한 공동지도교수 지정은 학교에 A4 한 장 정도 되는 사유서와 공동지도교수를 지명하고자 하는 사람의 이력을 제출하면 학교에서는 승인을 해 주는 편이다. 또한 공동지도교수는 꼭 같은 기관에 있을 필요도 없고, 필요에 의해서라면 타 국가에 있는 교수도 가능하다.

 

다만 지금 있는 학교의 경우에는 지도교수를 포함해 두 명을 초과해서 공동지도교수를 둘 수 없고, 두 지도교수의 세부 전공 분야나 연구 분야가 완전히 겹치는 경우에는 학교에서 반려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유라면 여러 명의 지도교수는 오히려 배를 사공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일 뿐 아니라 학생을 사이에 두고 각자 밥그릇 싸움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박사 재등록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이 공동지도교수는 박사 커미티 제도에 아예 관여를 할 수 없다. 

 

나의 경우에도 공동지도교수 제도의 덕을 좀 많이 봤다. 나는 이 랩에 올 때 데이터 분석만 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고 박사를 시작하게 됐다. 이 랩의 최대 장점이라면 나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실험을 하는 인원이다 보니 데이터가 마를 일이 없다는 건데, 그게 최대 단점으로 돌아오게 줄은 몰랐다는 거다. 어느 순간부터 혼자서 논문이나 포럼 등을 보며 이것저것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나도 교수님도 깨닫게 됐고, 우리 교수는 자신의 부족함을 최대한 빠르게 인정하고는 나에게 공동지도교수를 찾아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우리 교수는 나에게 한 통의 메일을 보냈다. 짧게 요약하면, 우리와 같이 협업을 하던 박사 후 연구원이 교수가 됐고, 그 사람이 공동지도에 동의를 했고 학교도 이를 승인했다는 거다. 이 공동지도교수는 생화학 배경을 가진 생명정보학자인데, 꽤 이른 시기부터 머신러닝이나 인공지능을 건드렸던 터라 지식이 방대한 사람이었다. 나는 단순히 생명정보학적 접근만 트레이닝을 해 주려나 했는데 이는 완전한 오산이었고, 지금 돌아보면 3년간 정말 많은 걸 가르쳐 놓은 것도 이 공동지도교수다. 단순히 분석을 어떻게 해야 한다를 가르친 게 아니라, 이런 생물학적 요건에선 어떻게 데이터를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지, 내가 도출한 결과들을 기반으로 어떻게 더 정교한 분석이나 접근을 또 할 수 있을지 등을 통해 유연한 사고와 다양한 각도로 데이터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르쳐주었다. 

 

같은 캠퍼스에 있는 학생들 중, 일부는 공동학위제도를 선택한다. 사실 한국어로 번역할 때 공동학위제도라고 하지만, 프랑스어로는 cotutelle(은 사전상 의미로 공동 후견이라는 뜻이다)이라고 부른다. 졸업을 하면 두 대학의 박사 학위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굳이 두 개의 학위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박사 학위 청구 논문을 작성할 때 두 대학 모두가 박사생의 논문 작성과 심사에 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의 경험 확대와 학문적 지원을 위해, 공동학위제도를 하는 다른 학교는 되도록 벨기에 밖에 위치한 자매 대학으로 지정할 수 있게 학교 차원에서 지원을 해 준다. 다만 공동학위제도는 반드시 입학 전에 지도교수와 상의를 하고, 지도교수와 본인이 같이 본교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제도의 남용을 막기 위해,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다양한 규정을 적용한다. 공동학위제도를 통해 박사과정에 재학하는 경우, 반드시 본교와 자매교에 지도교수를 각각 한 명씩 지정해야 하고 이는 공동지도교수 제도와는 별개로 간주된다. 또한 이뿐 아니라 각 학교에 최소 1년은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고, ‘공동학위’이기 때문에 두 학교에 모두 풀타임 학생으로 등록하여 두 학교의 규정을 모두 따라야 한다는 데 있다. 이뿐 아니라 두 학교에 모두 다니는 것으로 간주하다 보니, 박사학위 청구 심사도 두 학교에서 모두 해야 하고 두 학교 모두 심사에 합격해야만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아래층 연구실에 있었던 학생 중 하나인 Cyril은 프랑스 Tours 대학과 공동학위제도를 했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기차로 약 4시간 반 거리에 있는 Tours 대학은 분자생물학 계열에 특성화된 대학인데, 우리 학교의 의약학계열 전공 박사생들 중 희망하는 학생들은 이 대학과의 협약을 통해 각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Cyril에게 공동학위제의 가장 큰 장점과 단점이 뭐냐고 물었었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큰 장점은 두 학교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우리 학교와 프랑스 대학의 시설을 모두 활용해서 연구를 할 수 있는 것도, 두 학교의 교수 모두에게서 프로젝트와 관련된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제일 좋았다고. 하지만 단점으로 꼽는 건 무얼 하든 행정적 절차를 두 번 해야 하니, 종종 실제로 해야 할 연구 대비 서류 작업이 더 많은 게 귀찮다고 했었다. 

 

벨기에는 생각보다 학생 한 명을 키우기 위해 많은 품을 들게 하는 곳은 확실하다. 필요하면 여러 명의 교수를 붙이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학교까지 붙여야 하는 경우가 생기니까 말이다. 다만 단순히 여러 명의 농부를 붙이기보다는, 각자 다른 지식을 가진 농사꾼들을 붙여 한 그루의 나무가 사과를 맺을 때까지 많은 노력을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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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송유라) 등록일2024.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