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연구실 실전편] 07. 박사를 안 받았는데 포닥이라고? - 박사 수료도 박사급이죠?
이전에 올라온 글에서도 한 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벨기에의 경우에는 박사생도 노동법에 준하는 계약서를 작성한다. 문제는 ‘박사생 신분’으로 작성하는 이 계약서에는 제한이 있다는 거다. 유럽연합 시민권자의 경우에는 4년, 그렇지 않은 경우는 5년이 최대인데 제한을 두는 이유는 저 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트레이닝이 필요한 존재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따라오는 질문이 '그럼 계약 기간 내에 박사를 못 끝내면?'이다. 우리 학교를 비롯해 벨기에 내에 있는 학교들 대다수가 그렇듯, 생명과학 혹은 의과학 전공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 4년 내지는 5년 안에 박사 졸업을 하고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만약 그랬다고 하면 이미 석사 논문을 해당 연구실에서 작성하고, 그 프로젝트를 박사 과정으로 끌고 온 경우가 대다수일 뿐이다. 혹은 1등이 될 복권 여러 장을 사도 될 운을 박사과정에 끌어 쓸 정도로 운이 좋은 경우이거나.
하지만 계약이 만료됐다고 해서, 그냥 석사 학위 소지자로 연구실을 나가야 하는 건 아니다. 벨기에는 한국이나 미국과 꽤 다른 학사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박사생의 경우에는 수업이나 논문 자격시험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매년 중간 평가를 진행하여 제적이냐 다음 학년도에도 계속 박사를 진행할 수 있는지 교수진이 결정을 하는 구조. 따라서 벨기에의 경우에는 박사생으로서 가지고 있던 계약서가 만료가 되면, 흔히 우리가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박사 수료에 상응하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이 나라에는 따로 ‘수료’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박사생 계약이 만료된 사람이냐 아니냐만이 존재할 뿐이다. 또한 박사생 계약이 만료된 경우에는, 벨기에를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들의 직업 시장은 이들을 박사 후 연구원 자격이 있다고 분류를 한다. 따라서 학계의 경우에는 박사 졸업은 전제로 둔 박사 후 연구원이라는 분류를 계약서 상에 두어, 박사 계약이 만료된 경우를 박사 후 연구원으로 뽑아 인력을 충원하기도 한다. 인더스트리의 경우, 이러한 분류 없이 박사 후 연구원으로 채용이 가능하다고. 다시 말해 박사 계약이 만료된 경우, 박사 학위를 요구하는 연구원 자리에 지원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게 된다. 오히려 박사 계약이 끝난 사람이 석사 학위 소지자를 뽑는 포지션에 지원을 하면, 지원 자격에 over-qualified 되어 채용이 어렵다는 답변도 심심찮게 들려온다고.
실제로 박사 계약 만료일로부터 약 6개월 전부터, 교수님과 박사생들은 박사 계약이 만료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우리 학교에 속한 박사생들의 경우, 대부분이 교수님과의 계약 만료를 확정 짓고 회사나 타 기관의 연구원 자리에 지원을 해서 직업을 구한다. 이 경우에는 계약 만료 기간 이후부터는 졸업 논문을 위해 교수님과 주기적으로 미팅을 하지만, 졸업 논문을 쓰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대부분 이러한 경우에는 연구실을 나간 시점에서 최소 3-4년 뒤에 박사 학위 논문을 마무리 짓곤 하는데, 아무래도 학교에 상주하고 있지 않고 본업이 더 이상 연구실이 아니다 보니 피할 수 없는 부분인 건 어쩔 수 없다. 실제로 연구실에 있던 그리스인 동료는 박사 계약이 만료된 후 제약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는데, 실제로 계약서는 박사 후 연구원 기준으로 작성을 했었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또한 월급도 박사 후 연구원의 초봉 기준으로 계산이 되고, 경력의 경우에는 단순히 박사생 계약 기간 외에도 박사를 시작하기 전에 있었던 경력 등을 다 반영해준다고 한다. 이 외에도, 박사 학위를 청구하게 되면 그때 회사 인사팀에 박사 학위 청구와 관련된 일정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는 답을 받았다고 했다.
나의 경우는 대부분의 박사생들과는 조금 다른 케이스였다. 프로젝트 3년 차에 코로나가 터졌고, 당시에 병원에서는 더 이상 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지 않다는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덕분에 나는 박사생 프로젝트를 3년 차가 되자마자 리셋당했고, 그렇다 보니 당연하게도(?) 박사생 계약이 만료되기 전에 박사 학위 청구를 하지 못할 게 너무 뻔했던 것이다. 다행히 교수님은 내 박사 계약이 만료되기 반년 조금 더 전에 나를 불러 이 연구실에 남아서 계속 연구를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이 연재의 가장 첫 글에 이야기가 있다), 그 연구를 같이 했으면 좋겠다 하신 게 테크니션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것 인가 싶었다. 내막을 알고 보니 교수님께서 말한 것은 박사 후 연구원 자리였던 것이고, 교수님께서는 따로 연구비를 가지고 있었던 상황이기에 가능한 옵션이었던 것이다. 학교마다 조항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학교는 교내 캠퍼스에 속한 연구실에서 박사 수료생을 채용하고자 할 때, 반드시 박사 후 연구원으로 분류하여 계약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인사팀에 있다. 이 경우에는 월급 명세서를 비롯한 문서에는 ‘박사 취득 예정인’ 박사 후 연구원이라고 나오게 된다. 그리고 월급의 경우에는 회사와는 달리, 박사생으로서 계약을 얼마나 했었는지에 따라 초봉이 결정되는 구조이다. 또한 학교는 단순히 언제 박사 청구 심사를 하는지 통보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출신 학교에서 발행한 졸업 증명서를 반드시 인사팀에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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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국가에는 없는 개념을 지금 겪고 있다 보니, 지금 포지션이 어떻게 되냐고 누군가 물어볼 때 박사 없는 박사 후 연구원이라고 말씀을 드리면 이게 뭔가 이상하다 싶은 표정을 지으시는 분들이 꽤 있다. 누군가를 만나면 ‘아직 졸업은 안 했는데요, 박사 후 연구원 일을 하고 있는지는 1년 반 됐어요.’라고 소개를 하곤 하는데, 유럽에 계신 분들을 통해서는 soon-to-be-PhD 내지는 박사(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만 이런 채용 구조를 통해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유럽권 국가들은 박사 과정 자체를 업무 경력의 일부로 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투자한 기간을 노동 시장에서 정당하게 간주해줘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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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송유라) 등록일2024.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