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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연구실 생존기] 수치심, 부끄러움도 무뎌지고 창피해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산포로 2024. 9. 25. 10:09

  [해외 연구실 생존기] 수치심, 부끄러움도 무뎌지고 창피해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A mean reactor요?”

 

내 생각은 끝간 데를 모르고 날뛰기 시작했다. 커미티 미팅(committee meeting)을 하던 중 한 교수님이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나는 새롭게 시도하는 실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실험에 사용하는 crosslinker가 ‘mean reactor’가 아니냐며 실험 방법에 대한 어떠한 우려를 제기하셨다. 정확히 어떤 질문인지 확실히 파악할 수는 없었다. 대체 mean 한 reactor가 무엇인지부터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이 나오는 듯도 했다. 나는 그 reagent를 단백질 crosslinking을 위해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reagent가 1차 아민, 즉 단백질의 lysine side chain과 반응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었다. 특히 lysine은 RNA binding domain에서 두 번째로 흔한 아미노산이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그러니까 사실상 ‘아무 데나, 모든 곳에’ 반응한다는 거구나! 신이 난 나는 이 실험 방법의 장점을 열렬히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 crosslinker는 RNA binding protein (RBP)을 잡아내기 위한 최고의 reagent에요! Lysine은 RNA binding domain에서 매우 흔한 아미노산이잖아요? 그러니까 사실상 거의 놓치는 RBP가 없이 다 반응(react)해서 잡아낼 수 있는 거죠. 정말 mean 하죠?ㅎㅎ”

 

교수님은 별 괴상한 소리를 다 한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답변하기 시작했다. 분명 교수님은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설마 학생이 ‘amine reactor’를 ‘a mean reactor’라고 들었을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 교수님의 자문자답을 가만히 듣다 보니 a mean reactor는 사실 amine reactor였고, 원래 질문은 통제군에 관한 것으로 단백질을 제외한 free amine이나 다른 아민기(amine group)를 포함한 물질과의 반응은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고 있었다. 그 누구도 부족한 언어에서 기인한 나의 뜬금없는 헛소리를 알아채지 못했고, 미팅은 별문제 없이 끝났고, 나는 혼자 수치스러웠고… 이제는 혼자만 아는 비밀을 기억 속에 품고 종종 꺼내 보며 웃어 넘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민이라고 하면 ‘아’민인 줄만 알지 ‘어민~’은 매번 낯설게 들린다.
 

Amine-reactive crosslinker chemistry: NHS ester와 primary amine의 반응을 중심으로 (직접 그림)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창피함을 느끼는 순간이 많고, 그 대부분은 영어로 인한 것이 크다. 영어가 어려우면 맥락을 파악하기보다는 알아듣지 못한 한 구절이나 단어에만 꽂혀 핵심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살아남기 위해, 내게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기발한 상상력이 발동하기도 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에 나왔던 것처럼 내게도 감정 컨트롤 본부가 존재한다면 그곳의 조종간을 잡고 있는 대장은 억울함이 아닐까? 억울한 마음은 창피함과 영혼의 단짝이다. 영어가 잘 나오지 않는 부끄러운 순간에는 매번 내가 한국어로 말한다면 훨씬 더 잘할 수 있다는 억울함을 느낀다. 영어만 더 잘했더라면, 그랬다면 커미티 미팅에서 protein-free control을 이미 실험에 추가하고 있다는 간단한 답변을 왜 할 수 없었겠는가. 영어를 못 하면 우선 질문을 이해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내 능력, 내 성격을 온전히 다 보여주지 못해서 항상 억울하고, 심지어 억울하다는 영어 표현도 딱 맞는 것이 없어 답답하다. 나는 분명 어른인데, 왜 말하는 건 어린이만도 못할까. 난 항상 여기서 얼마나 바보 같이 말하고 바보 같이 행동하고 있을까. 어려운 상황을 그저 웃어넘기는 나를 발견했을 때 스스로 자괴감을 느낀다. 해탈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웃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로써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얼른 모면하고자 웃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이 있고, 나는 지도교수님의 결정적인 말한마디 때문에 지금 있는 연구실을 선택했다. 지도교수님은 내게 영어를 못한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극도로 주의하는 환경에서, 면전에 대고 언어가 부족하다는 말을 할 수 있던 것은 지도교수님 역시 외국인으로서 나의 마음을 다소 헤아릴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영어에는 큰 문제가 없고 너무 잘하고 있다고 항상 들어왔지만 나는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부족한 것을 부족하다고 얘기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비난으로만 남지 않도록, 동시에 나를 격려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 영어가 별로라는 말에 바로 뒤이어 지도교수님은 자신도 모국어가 아니라 영어를 잘 못 한다고, 본인도 매일 배우고 있으니 우리 같이 노력해 보자고, 그러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도교수님이 이 말을 하는 순간 나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연구 분야임에도 연구실에 합류할 결심을 했다. 영어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연구에 관해서도 같을 테니까. 지금의 내 연구는 별로지만 앞으로 더 나아지기 위해 같이 노력해 보자고 얘기해 줄 수 있을 테니까.

 

수업 참여를 위해서 매번 대본을 준비하지 않아도 괜찮기 시작했던 것은 미국에서 산 지 1년 정도가 지났을 때였던 것 같다. 그리고 또 사계절이 한 번 지나고 2년 차가 되어서야 나는 다른 연구자들과의 커피챗 등 학교 생활 전반에 철저한 사전 시뮬레이션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게 두렵지 않게 된 건 미국 생활 3년을 꽉 채운 뒤였다. 시간은 좀 걸릴지언정 이렇게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창피한 순간들이 더 이상 그다지 두렵지 않아 진다. 내가 미국 생활에서 가장 좋아하는 점은 매 순간이 나에게는 도전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나는 단지 이 모든 어려움을 내가 앞으로 어디까지 헤쳐나갈 수 있는지가 너무 궁금해서 여기 남아 있다.

 

부끄러운 감정도 점점 무뎌질 수 있다. 다만 발전하고 있다면.

 

마지막으로 ‘아민’ 교수님과의 에피소드 하나 더. 처음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어 실력이 지금보다 한참은 더 형편없었을 때, 나는 한창 실험 계획에 대해 교수님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교수님은 앞으로 우리가 할 실험의 원리는 ‘쀄이쥐’와 똑같은 거라고 했다. 쀄이쥐가 무엇이냐는 나의 물음에 교수님의 놀람과 실망으로 가득 찬 표정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대학에서 배운 적이 없냐고, 대학까지 갈 것도 없이 고등학교에서 배웠을 수도 있다며 내가 정말로 쀄이쥐를 모르는지 몇 차례나 확인하기에, 정말 기초적인 건데도 나는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창피했다. 설명을 찬찬히 듣다 보니 쀄이쥐는 ‘파지’였다.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 나는 교수님께 박테리오파지 할 때 그 파지라면 나도 당연히 안다고, 사실 한국에서는 파지라고 불렀기 때문에 발음이 달라서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무렴 교수님, 제가 남들 4년 다니는 대학을 7년이나 다녔는데 그걸 모르겠어요! 그런데 대체 그게 어떻게 파지가 되냐며 놀라는 교수님께, 나는 pha가 파, ge는 지라는 것을 알려드렸고, 교수님은 내게 몬더그린 현상에 대해 알려주며, 우리는 하나씩 새로운 것을 배웠다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서로에게 더 많은 것을 배워 나갈 수 있는 앞으로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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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미윤) 등록 202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