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연구실 생존기] 성취감, 대학원생의 도구적 조건화를 위한 강화물
김춘수 시인의 <꽃을 위한 서시>를 여는 문장,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를 읽으며 나는 내 처지를 생각했다.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지는 수많은 프로젝트들.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 그 자체인 프로젝트의 본질을 알아내려고 한 밤 내내 울며 노력하지만, 이 노력이 결국 실패로 돌아가는 것까지 이 시는 대학원생의 삶 그 자체 같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우리 연구실 사람들의 소소한 낙은 소셜 미디어에서 떠도는 재밌거나 귀여운 동물 영상을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한 원숭이 떼 영상을 봤는데, 그 영상에서는 원숭이 떼가 바나나가 가득 찬 박스로 몰려와서 무아지경으로 바나나를 가져가는 모습에다 자막으로는 ‘학회에서 제공되는 무료 음식을 가져가는 대학원생들’이 달려 있었다. 불안하고 걱정 많고 흔들리는 대학원 생활에 대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함께 웃을 수 있는 영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수님이 졸업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너무 무서워서 졸업이 하기가 싫었다. 이제껏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보호받다가 드디어 홀로 야생으로 던져지는 듯한 느낌에 막막함이 밀려왔다. 나는 이렇게 우울한 감정이 들면 구글에 “대학원생 스트레스,” “대학원생 압박감”과 같은 키워드를 검색한다. 보통은 큰 도움이 되는 내용이 나오진 않지만 나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그 자체가 위로가 되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그렇다면 딸려 오는 질문은 어떻게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다스리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돌아보면 계획한 모든 것이 대체로 잘 되지 않거나,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아니면 늦어지고 있다. 나와 동료들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Well, that’s science!” 혹은 “It is what it is.”를 외치며 뜻대로 풀리지 않는 연구실 생활을 버텨낸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 학위 과정을 견디는 데 있어 나에게 간간이 주어지는 성취감은 그것이 크든 작든 나를 위로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성취감이 자신감과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감에는 꾸준한 느낌이 있는데, 성취감은 보다 일시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꾸준히 자신을 믿는 능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암울한 연구실 생활을 버텨내는 데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아무리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라도 계속 실패만 반복하다 보면 우울해지게 마련이고, 그럴 때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적절히 주어지는 보상이 간절하게 필요하다.
실제로 내가 동물행동학 수업의 첫 시간에 배운 내용이 학습이론과 행동수정이었다. 파블로프의 개로 대표되는 고전적 조건화는 워낙 유명하지만, 도구적 조건화라는 단어를 듣는다면 일견 낯설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이미 많이 알려진 개념이다. 예를 들면, 강아지에게 어떻게 ‘앉아’라는 행동을 가르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대학원생에게도 ‘연구실 생활 행복하게 하기’를 가르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사실 도구적 조건화는 넓게는 행동주의 심리학의 이론으로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이제 내가 더 행복한 대학원생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를 학습시킨다고 생각해 보자. 다시 말해 나는 도구적 조건화의 원리를 바탕으로 ‘행동 만들기(shaping)’를 하고 있다. 나의 목표는 좀 더 연구실 생활이 행복한 대학원생이 되는 것이고, 일을 하며 행복한 상태를 강화함으로써 학습을 시작할 것이다. 나는 하나의 일을 잘 끝마치고 성취감을 느끼면 일이 즐겁고 연구실 생활을 행복하게 지속할 수 있다. 즉, 이 학습 과정에서 나의 강화물은 성취감이고, 행복한 연구실 생활에 강화물이 주어지는 것이므로 이는 긍정적 강화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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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의 처음 단계에서는 강화의 일정을 규칙적으로 해주는 것이 좋다. 원고를 하나 완성하면 성취감 하나, 발표 하나를 잘 끝마치면 성취감 하나, 며칠에 걸치는 길고 복잡한 실험 하나를 마무리했을 때도 성취감 하나. 다음 단계에서는 강화 일정에 변화를 준다. 이 단계에서 강화를 불규칙적으로 해주면 확립된 기대 행동(연구실 일을 행복하게 하기)이 사라질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수업 참여를 두 번 했을 때 성취감 하나, 어려운 이메일을 세 번을 써야 그제서야 성취감 하나. 다시 말해 1년 차 학생에게는 무엇을 하든 칭찬을 해줘야 하지만 기대 행동이 얼마간 확립된 5년 차 학생에게는 칭찬이 간헐적으로 주어질 뿐이고, 사실 이게 효과가 더 좋으니 줄어든 칭찬의 빈도에 억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강화물은 반드시 기대 행동이 나타나는 시점에 즉시 주어져야 한다. 즉, 멸균과 설거지 등 연구실 잡일을 잘 해냈을 때, 바로 그 순간에 스스로를 칭찬해줘야 한다. (우리 연구실 문에는 내가 만든 칭찬 스티커가 붙어 있다!) 조금만 늦더라도 효과가 줄어들거나 의도치 않은 강화가 일어난다. 예컨대, 연구실 일을 잘 해내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칭찬 스티커를 붙이는 행위 그 자체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기억하자. 대학원생의 많은 행동학적 문제는 강화물을 잘못된 시점에 적용했을 때 일어난다. 강아지가 실외 배변을 잘 해낸 그 순간에 보상을 해야지 배변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보상을 한다면 강아지는 (실외 배변이 아니라) 바깥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그 자체를 칭찬받고 있다고 혼동하기 쉽다.
이쯤에서 선배 대학원생 훈련사인 내 지도교수님이 일전에 내게 보여준 강화물의 특성에 관한 놀라운 통찰력을 언급하고 지나갈 필요가 있다. 내가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다고 슬퍼하고 있을 때, 교수님은 마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 지 물었던 톨스토이처럼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논문이 필요한가’하는 물음을 던졌다. 연구자가 논문을 출판했을 때만 성취감을 느낀다면 과연 사람이 인생에서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일생 동안 쓸 수 있는 논문이 수십 편 내외라고 친다면, 어쩌면 백 년에 가까울지 모를 그 사람의 인생에서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은 겨우 수십 번 내외에 불과한 게 아닐까? 요지는 논문을 냈을 때만 성취감을 느낄 것이 아니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다른 여러 순간을 일부러 많이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험이 다 실패했고 원고는 한 줄도 쓰지 못했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 연구실에서 학부연구생 한 명을 잘 가르쳤다는 것에도 성취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도구적 조건화에 있어 중요한 점은 가능한 다양한 종류의 강화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한 가지 종류의 강화물은 점차 식상해질뿐더러 그 특정한 강화물이 언제나 이용 가능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강화물을 다양화할 때, 연구실 바깥의 일도 좋은 긍정적 강화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 모두 각자의 성취감을 잘 찾아 나가고 있었다. 메인 연구가 잘 안 되면 다소 다른 분야로 방향을 틀어서 실적을 내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적어도 영어가 늘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도, 취미 삼아 다른 언어나 요리, 운동을 배우는 사람도 있었다. 이 글을 연재하는 것도 나에게는 성취감을 주고, 쓸데없을 수 있지만 독일어 공부를 이어가는 것에도, 꾸준히 요가 수업에 참여하는 것에도 나는 뿌듯함을 느낀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나는 딱히 불행한 대학원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 같진 않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번 글을 준비하는 것은 특히 어려웠다. <해외 연구실 생존기> 연재를 계획하며 나는 학위 과정 중 느끼는 여러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고, 특히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을 서로 교차해서 연재하며 유학 생활의 좋은 면과 어두운 면을 균형 있게 다루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니 부정적인 감정은 하고 싶은 말이 넘쳐서 지면이 부족할 정도였지만, 긍정적인 감정은 글감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은 순간이 좋은 순간보다 많다는 것은 아마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아닐까 하는데, 그래서인지 내 어두운 감정에 대해 쓴 글이 잔잔하게 행복한 글보다 대체로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다.
나는 본래가 크든 작든 어떠한 성취에 기쁨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괜찮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해도 “남들 다 하는 일.” 괜찮은 직업을 갖게 되어도 “별거 아닌 일.” 대학원 몇 군데에 덜컥 붙어도 “흔한 일.” 첫 논문을 내도 나는 그저 한번 픽 웃고 말았다. 모두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었고 그래서 딱히 기뻐할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성취를 뿌듯하게 여기는 것 자체가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일매일 실패와 마주해야만 하는 대학원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크고 작은 성취를 진심으로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태도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그 태도를 견지해야만이 이 힘든 학위 과정을 끝까지 해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만간 대학원을 졸업하게 된다 해도 나는 여전히 딱히 기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를 더 칭찬하고 추켜세워주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도구적 조건화를 통한 학습에서 중요한 원리 하나를 짚고 넘어가자면, 긍정적 ‘처벌’은 거의 항상 추천되지 않는다. 학생이 기대되는 행동을 훌륭히 해냈을 때 칭찬(강화물)을 주는 방식으로 학습을 유도해야 하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고 하여 처벌하면 적절한 학습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완벽한 긍정적 처벌물을 찾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처벌의 강도가 조금만 약하면 학생은 듣지 않고, 처벌의 강도가 조금만 세져도 학생은 공포감을 느낀다. 따라서 나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가혹하게 대하지 말고, 즐거울 일에는 즐거워하고 뿌듯해야 할 일에는 더 뿌듯해하는 긍정적 강화를 통해 행복한 연구실 생활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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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 Bio통신원(미윤) 등록 2024.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