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 찾기만 하면 10조 시장 선점…이 희귀질환 정복 나선 K 제약사들
대웅·일동제약·한미약품도
세계최초 치료제 기대감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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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원인도 없이 폐가 서서히 굳어가는 ‘특발성 폐섬유증(IPF)’이라는 희귀질환이 있다. 세계적으로 환자가 늘고 있지만 아직 치료제가 없는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주목된다.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이 마지막 관문인 임상 3상을 진행하며 한 발 앞서나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웅제약 등이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기존 치료제인 베링거인겔하임의 ‘오페브(성분명 닌테다닙)’와 일동제약 ‘피레스파’(성분명 피르페니돈·시오노기제약 개발)로는 근본적인 치료가 어렵고 질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만 가능하다. 이를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미충족 수요가 높다’고 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리시전 비즈니스 인사이트(Precision Business Insights)에 따르면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 시장은 올해 46억달러(6조3000억원)에서 2030년에는 70억달러(9조6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내년 4월 데이터 발표를 목표로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 후보물질 BBT-877의 글로벌 임상 2상을 진행중이다. 현재 등록을 완료한 임상 환자 129명 중 82명이 24주 투약 절차를 마쳤다. BBT-877는 최근 열린 제4차 독립적 자료 모니터링 위원회(IDMC)에서 앞선 회의와 마찬가지로 ‘임상 지속’ 권고를 받아 안전성과 효과에 대한 우려 없이 임상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관계자는 “내년 2월까지 환자들 투약을 마무리할 예정”이라며 “글로벌 톱10 빅파마 중 9곳이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에 관심이 높은 만큼 톱라인 데이터가 확보되는 시점까지 지속적으로 기술이전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찾는 신약 후보물질은 ‘계열 내 최초(First-in-class)’이거나 ‘계열 내 최고(Best-in-class)’인 경우다. BBT-877은 특발성 폐섬유증 등 여러 섬유화 질환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규 표적 단백질 ‘오토택신’을 선택적으로 저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퍼스트인클래스 후보물질이다.
오토택신은 혈중에서 ‘리소포스파티딜 콜린’(LPC)을 ‘리소포스파티드산’(LPA)으로 전환한다. LPA는 세포 내 수용체와 결합해 경화증, 종양의 형성 및 전이 등 여러 생리적 활성을 유도한다. BBT-877은 앞선 임상 1상에서 이 같은 LPA의 농도를 최대 90%까지 억제하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대웅제약은 ‘베르시포로신’(DWN12088)의 임상 2상을 이어가고 있다. 이 회사 후보물질은 섬유증의 원인이 되는 콜라겐 생성에 영향을 주는 PRS 단백질 작용을 감소시키는 방식이다.
현재 한국과 미국 의료기관에서 임상을 진행 중이며 환자 모집 목표 인원 102명 중 60% 이상을 모집한 상태다. 2025년 내 임상 2상 완료가 목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의약품청(EMA)에서 연이어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대웅제약은 내년 1월 특허 만료를 앞둔 오페브의 제네릭(복제약) ‘DWJ1531’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 허가를 받았고 최근 시험을 마쳤다.
기존 치료제 피레스파를 판매 중인 일동제약은 자회사 아이리드비엠에스를 통해 ‘IL1512’를 개발하고 있다. IL1512는 염증 유발과 섬유화에 밀접하게 관여하는 CXCR7에 대해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기전을 갖고 있다. 연내 비임상시험관리기준(GLP) 독성 시험에 진입할 예정이다. 일동제약은 오페브의 제네릭도 개발 중이다.
이외에도 한미약품이 기존에 비알코올성 지방간염(MASH) 치료제로 개발하던 ‘랩스트리플아고니스(HM15211)’의 비임상에서 특발성 폐섬유증에 대한 효과를 확인했다. HM15211는 FDA로부터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를 위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된 상태다.
세계적으로 봐도 현재 특발성 폐섬유증을 타깃으로 차세대 치료제를 개발해 중·후기 임상 단계에 있는 기업은 베링거인겔하임과 미국 플라이언트 테라퓨틱스 정도다.
임상 3상을 마친 베링거인겔하임의 PDE4B 저해제 네란도밀라스트(BI 1015550)는 지난 9월 임상에서 1차 평가변수를 충족했다는 톱라인 데이터를 발표한 상태다. 다만 부작용으로 인한 중단 비율이 높은 탓에 추가 데이터 확인이 필요하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플라이언트는 인테그린 저해제 ‘벡소테그라스트’에 대한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매일경제 김지희 기자 kim.jeehee@mk.co.kr 입력 : 2024-10-20 17:2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