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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체와 독립된 상태에서 암의 확산을 돕는 DNA들이 새롭게 발견됐다. 그동안 암의 발병과 연관된 DNA 연구는 염색체 내에 존재하는 DNA들에 초점이 맞춰졌다. 과학자들은 이들 염색체외DNA가 마치 영화 속 악당처럼 우리 몸의 암 면역체계에 혼란을 일으킨다고 빗댔다. 특히 항암제에 대한 내성을 높여 치료 효과를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하워드 창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연구팀은 체내에서 암의 확산을 돕는 염색체외DNA(ecDNA)를 최근 발견했다.
염색체외DNA는 인간 세포에서 인체의 성장과 특징을 결정짓는 염색체와 독립된 상태에서 복제 및 확산되는 DNA를 의미한다. 존재 자체는 수년 전에 밝혀졌지만 염색체외DNA가 암 질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창 교수는 “염색체외DNA는 사람의 염색체로부터 분리돼 유전학의 정상적인 규칙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며 암을 유발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치 ‘제임스 본드’ 영화 시리즈에 나오는 악당처럼 대혼란의 뒤에서 상황을 조종한다”고 덧붙였다.
창 교수 연구팀은 염색체외DNA가 종양이 예상치 못한 속도로 퍼지거나 항암제에 대한 내성이 생기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앞선 연구에서는 인간 세포에 있는 염색체가 암의 치료를 방해하는 항암제 내성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추정됐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폴 미첼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가장 공격적인 형태의 암과 관련한 유전자가 우리가 생각했던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강조했다.
학계는 염색체외DNA가 암 치료 효과를 저해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했다. 찰리 스완튼 영국 프란시스크릭연구소 교수는 “염색체외DNA는 일시적으로 사라졌다가 약물 치료를 중단한 후에 다시 발생하며 거의 무한한 적응력을 보였다”며 “암 확산을 일으키고 암 치료 효과를 저해하는 장본인인 셈”이라고 말했다.
창 교수 연구팀은 현재 체외DNA에 초점을 맞춘 치료법을 연구 중이다. 염색체외DNA가 응집하는 단백질을 특정한 뒤 이 단백질에 효과가 있는 약물을 개발하는 전략이다. 창 교수는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면서 약물과 치료법에 대한 개발과 시험이 가능해졌다”며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암과 관련한 체외DNA를 다루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영국암연구소와 미국국립암연구소가 지원하는 연구 프로젝트 ‘그랜드 캔서 챌린지’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캘리포니아와 영국 런던 등을 거점으로 하는 연구팀에게 2000만파운드(약313억원)를 지원한다.
동아사이언스(dongascience.com)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2023.02.19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