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자공학도의 미국 바이오테크 진출기] 우연히 얻은 한 스타트업에서의 기회
기회는 정말 우연히 찾아온다. 당시 시리즈 B 펀딩을 투자받고 사업 확장을 앞둔 한 회사가 있었다. 현재 내 직장이 된 Singular Genomics였다. 이 회사의 한 디렉터(director)가 자신의 팀을 확장을 하기 위해 예전 동료의 추천을 받아 몇몇 대학 교수에게 연락을 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디노 교수였다. 당시 나는 직장을 구하고 있던 상황이어서 이 회사에 관심이 갔다. 당시 회사 홈페이지에는 달랑 이 문구 밖에는 없었다. “We are busy in the lab.” 인터넷을 뒤져봐도 이렇다 할만한 자료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꿈꾸던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이고 DNA 시퀀서를 개발하는 데다 시리즈 B에서 상당히 큰 액수를 투자받았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이메일로 서로 소통을 하고 며칠 뒤 전화 인터뷰가 잡혔다. 그리고 그 디렉터와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박사과정동안 한 일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그 디렉터는 내 설명을 들으며 매우 관심을 보여줬고 자신이 찾던 스킬셋을 가지고 있다고 좋아하는 느낌이었다. 왠지 모를 기대감이 생겼다. 뒤죽박죽이라 생각했던 나의 연구 경험을 필요로 하는 회사가 있구나.
얼마 뒤 회사 방문 면접(on-site interview)이 잡혔다. 아침 일찍 엘에이에서 출발하여 세 시간쯤 달려 샌디에이고 북쪽의 토리 파인스(Torrey Pines)에 위치한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 로비에는 삼삼오오 점심을 같이 먹거나 탁구를 치거나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마침 이날은 핼러윈 데이였고 핼러윈 장식들이 건물 내 여기저기 있었다. 왠지 모르게 사람들은 웃고 있었고 나에게도 매우 친절했다. 오후 1시가 되고 세미나 실에서 발표를 시작했다. 세미나 실에 모여 나의 발표를 듣는 사람들은 다들 편한 옷차림에 웃는 얼굴들이었다. 나는 내 발표의 첫 장을 핼러윈 테마로 꾸몄는데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것을 보며 조금은 안도했다.
하지만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의 사람들과는 달리 인터뷰는 매우 힘들었다. 내 박사과정 연구 발표를 한 시간 진행한 뒤에는 일대일 패널 면접을 30분씩 세 시간 동안 진행하였다. 한 패널은 나에게 미세 유체 채널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어보았는데 대답을 제대로 못한 부분들이 생기자 머릿속에는 면접에서 또 떨어지는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음 패널은 나에게 분자생물학 및 DNA 시퀀싱에 대해 질문을 했고 내가 깊게 공부하거나 연구했던 분야도 아니기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결국 여러 패널 인터뷰를 마칠 즈음에는 나는 DNA 시퀀싱에 대해 전혀 모르고 일할 준비가 안 돼있구나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마지막 인터뷰 패널은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 과학 책임자(Chief Scientific Officer)였다. 나는 떨어졌구나 생각하며 기대를 버리고 인터뷰에 임했는데 의외로 이분과는 연구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오히려 높은 분은 나의 다른 점을 보려고 하는 걸까? 그렇지만 나는 실무자들과의 면접을 잘 못 봤다는 생각이 들었고 풀이 죽어서 집으로 향했다. 회사 캠퍼스를 나와 토리 파인스 바닷가의 멋진 경치를 보며 운전하던 게 생각난다. 그때는 정말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저 아름다운 경치를 다시는 못 보겠지...

바닷가 옆에 위치한 회사 덕에 서부 해안의 예쁜 경치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난 후 디노 교수님이 평판 조회(reference check) 전화를 받았다고 하면서 좋은 소식을 기대하라고 하셨다. 이게 무슨 일인가! 정말로 며칠 후 내 이메일로 정식 오퍼 레터(offer letter)가 날아왔다. 그리고 그 디렉터에게 전화가 와서 회사에서 내가 하게 될 일 그리고 회사의 각종 혜택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정말 나는 오랫동안 꿈꾸던 미국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되는 것인가? 나는 마무리 중이던 논문을 투고하고 합류하기 위해 회사 시작 날짜를 이듬해 1월로 잡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의 자신감이 대부분 회복되었던 것 같다. 내 안에서 다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 해 크리스마스 파티 때 나의 새 출발을 축하해 주던 디노 랩 연구실 동료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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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고재경) 등록일 2023.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