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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이오텍, 임상 대신 비임상에 집중해 L/O 해야"

산포로 2024. 4. 22. 09:03

"한국 바이오텍, 임상 대신 비임상에 집중해 L/O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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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임상 진입은 한국 바이오텍에 부적합한 전략이 아닐까

임상 디자인이 반영된 비임상 데이터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빠른 임상 진입은 유일한 라이선스 아웃(License outㆍL/O) 전략이 아니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명제로 오늘의 기자수첩을 시작해 봅니다. 모두가 알고 있기에 당연하나, 모두가 실천하지는 않기에 당연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신약 바이오텍은 투자자들로부터 '임상에 언제 진입할 것인지', '개발 단계가 어디까지 진척됐는지'에 대한 압박을 주기적으로 받습니다. 최대한 빨리 비임상 개념검증(PoC)을 해야 하고, 그것이 온전하고 완전한 결과를 내기도 전에 GLP 안전성 실험을 시작해야 하고, 쫓기듯이 임상 1상 시험에 진입해야 합니다. 그간 취재를 해오며 여쭤보니, 대부분의 바이오텍이 이런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한국 바이오텍 투자업계가 고수하고 있는 수익화 전략, 즉 '기업공개(IPO)를 통한 엑싯(Exit)'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전략의 논리구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빠른 임상 진입 = 빠른 L/O 계약 성사 = 매출 발생 = IPO 가능성 증가 = 투자사의 빠른 엑싯 가능

 

물론 신약의 개발 진도가 빠른 것은 큰 장점이 맞습니다. 이른 시장 진입은 시장 선점효과와 함께 회사의 수익 발생 시점을 앞당기니까요. 특히 유사한 경쟁 파이프라인들이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신약이 바이오시밀러가 아닌 이상, 빠르게 개발하는 건 유일한 L/O 성공전략이 아닙니다. 예컨대 특정한 임상 단계에 있다고 해서 범용적으로 L/O하기 좋은 물질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신약개발의 특성 상, 속도만을 중시하며 쫓기듯 개발하는 전략은 회수하기 힘든 매몰비용만을 남기고 수렁으로 빠져드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잠재적인 구매자(Licenseeㆍ라이선시)들이 개발 진도가 앞선 파이프라인만을 확보하길 원한다면, 빠르게 개발하는 것은 유효한 전략이 됐을 겁니다. 하지만 잘 알려졌듯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 라이선싱 시장에서 구매자가 원하는 바가 다양해서 그렇습니다.

 

최근에 넥스아이가 오노약품공업에 비임상 단계의 파이프라인을 L/O했던 소식을 들으셨을 겁니다. 그 배경에는 오노약품공업이 수 년 전부터 유지해오던 라이선스 인(L/I) 전략이 있습니다. 큰 규모의 업프론트(Upfrontㆍ계약금)를 줘야 하는 임상 단계의 파이프라인보다는, 비교적 적은 업프론트를 지급해도 되는 비임상 단계의 파이프라인을 주로 물색하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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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특정 모달리티(Modality)나 질환군에 해당하는 파이프라인을 찾는 구매자들도 있습니다. 이는 보통 본사가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야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 11월에 이뤄진 오름테라퓨틱-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 간의 계약이 좋은 예시입니다. 분자접착제와 혈액암에 조예가 깊은 제약사인 BMS가 오름테라퓨틱의 분자접착제 기반 백혈병 치료제를 사들인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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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현금흐름 창출이 급해서 임상 3상 단계에 있거나 이미 출시가 된 파이프라인을 찾는 구매자도 많습니다. 이런 구매자들은 보통 영업ㆍ마케팅 인프라가 잘 발달된 대기업이거나, 특정 지역 혹은 국가에서 입지가 큰 기업들입니다.

이처럼 신약을 사들이려 하는 회사들의 니즈(needs)는 각양각색입니다. 그래서 신약의 개발전략을 입안할 때는 다음의 2가지 질문에 대해 명확히 대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①우리의 신약은 잠재적인 구매자의 어떤 니즈를 충족시켜 줄 것인가?

②이 니즈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우리의 가용 가능한 자원은 무엇이고 얼마나 되는가?

 

 

 

이제 한국의 바이오텍 입장에서 하나씩 답해 보겠습니다. 사실 1번의 질문을 답하기 위해 파악해야 하는 구매자의 니즈는 너무나 다양해서 전부 알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현재 시점에서 구매자들이 가진 세부적인 니즈는 1년에 한두 번 열리는 바이오 유럽(BIO EUROPE)ㆍ바이오 인터내셔널(BIO INTERNATIONAL)에 가서야 겨우 파악될 뿐입니다. 심지어 겨우 파악해둔 구매자의 L/I 전략이 급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1번의 질문에서 명확한 니즈를 도출해내지 못하니, 2번의 질문에도 답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모호한 상황이 상술했던 한국 바이오 투자업계의 엑싯 전략과 맞물려 '빨리빨리 임상 진입'이란 기현상을 자아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일단 임상에 진입해서 인간 데이터라도 확보해 놓고, 세부 개발전략은 그 때 가서 마저 생각하자'는 사고에 지배당할 수 있다는 것이, 또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있다는 것이 기자가 우려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1번의 질문을 본질적인 방향에서부터 다시 파헤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이며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불변하는 구매자의 니즈는 무엇일까요? 그런 게 있다면 개발전략의 전체적인 방향을 잡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 본질적인 니즈는 모두가 알다시피 매우 간단합니다. 신약을 L/I하길 원하는 구매자들은 '실제 임상환경, 리얼월드(Real world)의 약효와 안전성이 정확히 예측되어 있는 파이프라인'을 항상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이들의 니즈는 '개발 속도가 빠른 것'도, '임상에 진입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환자가 약을 투여받았을 때 보이는 반응들을 잘 예측하는 데이터가 준비돼 있다면 그만입니다.

 

그럼 이 니즈를 충족시키면서도 한국의 바이오텍에 맞는 개발전략을 제안할 차례입니다. 기자가 주장하고 싶은 건 크게 2가지입니다.

 

①임상 디자인을 최소 2상까지 철저히 설계하되, 임상에는 진입하지 않거나 1상까지만 개발해야 한다.

②임상에 들어갈 자금ㆍ시간ㆍ인력을 비임상 개발에 대신 집중시키고, 미리 설계해둔 임상 디자인을 활용해 비임상에서 리얼월드를 최대한 모방하는 데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후기 임상까지 빠르게 진입해 라이선싱을 하는 전략은 엄밀히 말해 미국ㆍ유럽 주요 선진국ㆍ중국 등에 위치한 바이오텍이 쓰기 적합합니다. 이들 국가에는 소규모 바이오텍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할 만한 투자시장이 형성돼 있고, 임상 전문 인력이 포진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충분한 임상 비용을 확보하는 것도, 임상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것도 비교적 수월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환경은 다릅니다. 바이오 투자 시장은 원활한 임상개발을 뒷받침할 만큼 충분한 자금을 운용하고 있지 않으며, 대부분의 한국 바이오텍에는 실제 임상을 수행할 만한 전문인력이 아직 부족합니다. 그래서 빠듯한 자금으로 비임상 단계에서 최소한의 데이터만 만든 뒤 서둘러 임상에 진입할 수밖에 없으나, 비임상 단계에서 충분한 임상전략이 개발되지 않았기에, 그리고 임상을 수행할 인력도 부족하기에 개발 실패 리스크를 높이고 맙니다.

 

그래서 방향을 조금만 바꿔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어찌됐건 전략이란 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대신 선택할 것인지 정하는 작업 아니겠습니까? 비임상과 임상을 둘 다 부족하게 할 바에는, 임상의 비중을 줄이고 비임상에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빅파마들은 항상 임상 데이터를 요구한다'며 고개를 젓는 분들도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본질적인 니즈를 떠올리며 이 요구사항을 다시 생각해 보면, 빅파마가 임상 데이터를 요구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로 좁혀집니다. ①해당 빅파마가 L/I 대상 파이프라인의 MoAㆍ모달리티 등에 완전히 전문화 돼있지 못해, 임상 데이터까지 확인해서 L/I 시의 리스크를 줄이고 싶어하거나 ②회사가 제시한 비임상 데이터가 질적ㆍ양적으로 충분한 설득력이 없어서입니다.

 

전자의 상황에선 임상 데이터를 만들어 제시하거나, 빅파마가 회사를 아예 인수해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말했듯 많은 한국의 바이오텍은 임상개발을 원활히 진행하기 힘들고, 인수합병은 요원한 일입니다.

 

후자의 상황에서 비임상 데이터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임상 환경을, 리얼월드를 제대로 모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리얼월드를 제대로 모사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불충분한 임상 디자인이 있습니다. 임상 디자인을 미리 설계해서 반영하지 않은 채로 비임상 데이터를 만들게 되면, 그 데이터로 임상에 들어가야 하는 구매자(빅파마)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임상을 해 보고 다시 연락해 달라'는 이메일이 날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개선의 여지와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인간의 신체 병리를 모사하는 세포ㆍ동물모델 구축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며 이를 서비스하는 CRO도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비임상 실험 디자인에 반영할 임상 전략을 짜낼 수 있는 한국의 인재들은 그 절대적인 수는 적을지언정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임상 전략가를 한국에서 구하지 못한다 해도, 파트너링과 컨설팅 계약을 통해 해외에서도 수급이 가능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실제 임상을 집행하는 것보다 시간과 자금 면에서 더 효율적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것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해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임상 디자인을 비임상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느냐'가 다음 질문으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여기에도 충분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었지만 아직은 힘이 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화두는 우리 신약개발 업계에서 피ㆍ땀ㆍ눈물 흘리며 고생하고 계시는 독자 여러분께 정중하게 꺼내어 드리려 합니다. 부족한 기자가 혼자 끙끙대며 고민하는 것보다 수백 배는 깊은 통찰을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오랜 시간 업계에서 수집한 이야기를 엉성하게나마 엮어 보여드렸으니, 저는 그 다음 화두를 찾아 나서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땀방울 어린 고민에 히트뉴스가 항상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족하지만 해법을 찾아 함께 헤메고 있다는 사실도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히트뉴스(hitnews.co.kr) 박성수 기자 입력 2024.04.22 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