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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은 지난달 31일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 5개 연구개발(R&D) 사업 중 하나다. 100만명 규모의 유전체정보 등 국민들의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50만명의 데이터가 축적된 영국 ‘바이오뱅크’나 100만명 규모의 미국 ‘정밀의료이니셔티브’ 프로젝트를 본딴 이 사업은 희귀질환의 발병 유무를 밝혀내거나 유전질환을 예측하는 중요한 데이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 통합 바이오빅데이터 구축사업을 주도하는 국립보건연구원에 따르면 사업은 국민들이 참여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건강정보, 임상정보, 유전정보, 의료정보, 환경정보를 수집한다. 정보를 제공하는 대상은 희귀질환 환자, 중증만성질환 환자 그리고 일반인이다. 예타 조사를 통과한 뒤 사업이 확정되면 2024년부터 2032년까지 총 9988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박현영 보건연 미래의료연구부 부장은 9일 충북 오송 보건연에서 한국과학기자협회 기자단과 만나 “바이오 빅데이터 사업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는 희귀질환을 진단하고 유전질환을 예측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전체를 바탕으로 한 질병 진단의 정확도가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2020~2021년 시행된 시범사업에선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하는 진단 사례도 있다. 12세 남아의 유전자를 분석해 소아청소년 환자에게서 발병률이 몹시 드문 신장염을 동반한 루푸스(SLE)를 확인했다. 전체 유전자검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질환의 주범인 NOD2, ANKRD26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찾아낸 것이다.
수집된 유전자 정보는 가족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성질환을 예측하는 데도 유용하다. 영국 바이오뱅크 데이터에 따르면 심혈관질환, 소아천식, 전립선암, 유방암, 자폐스펙트럼 등의 질환은 가족력에 따라 최대 80%까지 발병률이 증가한다.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 조기에 만성질환을 예측하고 건강한 생활습관 관리 등이 이뤄진다면 질병을 피할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사업은 미래 바이오 헬스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라 말한다. 박 부장은 “해외 주요국은 이미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국내는 대규모 자원 구축 시기가 늦어 뒤처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생체자원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 최소 10년 간 100만명의 유전체 및 생활습관정보를 수집하는 프로젝트 ‘우리 모두의 연구 프로그램’을 실시 중이다. 영국은 앞서 지난 2012년 10만명 규모의 전장 유전체 시퀀싱 결과와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의료자원을 연계해 희귀질환, 유전질환, 암, 전염병의 유전학적 원인을 규명하는 성과를 거뒀다. 2019년 이후 500만명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을 목표로 사업 확대에 나섰다.
중국, 일본, 핀란드도 유전체 정보 빅데이터 구축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중국은 100만명 이상의 유전체 분석을 추진하는 ‘정밀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진행 중이며 일본은 40만명 규모의 유전체 정보를 모으고 있다. 핀란드의 ‘핀젠 프로젝트’는 유전체 정보와 건강정보를 결합해 맞춤 헬스케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50만명의 유전체 데이터를 수집했다.
박현영 부장은 국내 바이오빅데이터 사업이 커지기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진국의 연구 수준을 따라잡기 위해 연구개발 투자비용을 확대하고 또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통합하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을 조정하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미래사회에서 질환관리의 핵심자원이 될 사업에 정부와 국민 모두가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아사이언스 (dongascience.com)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2022.11.11 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