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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도 극찬한 구석기시대 벽화

산포로 2016. 8. 18. 08:20

피카소도 극찬한 구석기시대 벽화
과학으로 만나는 세계유산(22) 베제르 계곡 선사유적지


“현대 미술이 이룬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프랑스 미술에 영향을 받아 파리로 이주했던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구석기인들이 그린 동굴 벽화를 보고 난 뒤 한 말이다. 그 동굴 벽화는 바로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에서 1940년 9월 8일 한 10대 소년에 의해 발견된 라스코 동굴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그날 18세 소년 마르셀 라비다는 언덕 비탈에서 자신의 애완견을 뒤쫓다가 우연히 덤불 사이로 드러난 구멍을 발견했다. 그것이 라스코 성으로 통하는 중세시대의 비밀통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마르셀은 나흘 후 친구들과 함께 다시 구멍 안을 살펴보다가 더 큰 동굴로 들어가게 되었다.


가지고 간 램프로 벽과 천장을 비춰 보던 소년들은 각종 동물 그림이 가득한 것을 발견하곤 선생님에게 이야기했다. 그 벽화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선생님은 고고학의 권위자 앙리 브뢰이 신부에게 알렸으며, 신부는 동굴에 그려진 그림이 선사시대의 벽화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광명동굴 국제순회전에 가면 첨단기술로 재현해 놓은 라스코 동굴 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 ScienceTimes(이성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야 발굴이 시작된 라스코 동굴은 1948년 드디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 동굴이 공개되자 피카소뿐만 아니라 세계 고고학계와 미술계가 충격에 빠졌다. 원시인이 그린 그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벽화가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돌 정도였다.


동굴 안에 그려진 그림은 1500여 점에 달하는데, 그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은 100여 점이다. 그 그림에는 들소와 사슴, 노루, 산양, 야생마, 코뿔소, 곰, 매머드 등 다양한 동물은 물론 원시인의 형상도 묘사되어 있다.


굴곡진 벽면 이용해 입체감 구현


그림의 기법은 현대인들이 보기에도 놀라울 정도다. 명암으로 원근감을 표현했는가 하면, 동굴 벽면이나 천장의 울퉁불퉁한 면을 이용해 동물들의 입체감을 구현해 놓은 것도 있다. 또 동물의 움직임을 마치 활동사진처럼 여러 장면의 컷으로 겹쳐 놓듯이 묘사해 놓은 작품도 발견되었다. 가장 뛰어난 점은 동물마다 특유의 생동감과 역동성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10대학의 최근 연구결과는 더욱 놀랍다. 라스코 동굴벽화처럼 선사시대에 그려진 동굴 벽화들의 대부분이 그 동굴 안에서 목소리가 가장 똑똑하고 크게 들리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즉 최상의 반향 효과가 나는 지점을 구석기인들도 알고 벽화를 그렸다는 말이 된다. 심지어는 일부 동굴의 반향효과 극대 지점에서 소리를 내면 부근 벽에 그려진 동물의

소리와 매우 비슷한 소리가 나기까지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 지방에 위치한 베제르 계곡에는 라스코 동굴 외에도 발견된 벽화 동굴이 24개소가 더 있다. 약 30㎞×40㎞의 면적에 선사유적지 147개로 이루어져 있는 이곳에서는 50만 점이 넘는 부싯돌, 동물 유골 148구, 생활도구 844점과 다양한 종류의 미술작품이 발굴되었다.


발견된 유물의 양과 질, 다양성 면에서 이 유적지에 버금가는 선사시대 유적지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베제르 계곡에서 발견된 유물과 미술품은 지금으로선 알기 힘든 오래 전에 사라진 문명을 증언하는 매우 드문 사례 중 하나다.


크로마뇽인의 두개골 및 뼈가 최초로 발견된 크로마뇽 동굴도 베제르 계곡에 있다. 크로마뇽인이라는 명칭은 발견된 동굴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밖에 마르케에서 발굴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조각 ‘로셀의 비너스’와 카프블랑의 말 모양의 높은 돋을새김 장식 등이 베제르 계곡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미술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벽화 훼손 막기 위해 복제동굴 개장


프랑스 문화재 당국은 공개한 지 15년 후인 1963년부터 라스코 동굴의 일반 관람객 출입을 금지시켰다. 수많은 관광객들의 방문으로 인해 그림의 일부가 하얗게 변질되는 등 벽화가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라스코동굴로부터 200미터 떨어진 채석장에 똑같은 복제동굴인 ‘라스코 2’를 만들어 1983년에 개장했다.


특수사진 촬영기술자들과 수십 명의 화가들이 약 11년간의 작업 끝에 탄생시킨 이 복제동굴은 라스코 동굴벽화가 ㎜ 단위까지 그대로 정확히 모사되어 있다. 또 그 옆에는 복제 동굴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박물관까지 들어서 이 일대가 하나의 관광지로 변신했다.


그런데 프랑스까지 가지 않고도 우리나라에서 라스코 동굴벽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지난 4월 16일부터 9월 4일까지 경기도 광명시 광명동굴에서 열리고 있는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 국제순회 광명동굴전’이 바로 그것.


라스코 동굴의 주위 환경과 벽화를 첨단 팩시밀리 기술로 재현한 이 전시는 130대의 빔 프로젝트 영상으로 그 지역의 강, 밤나무, 이끼 바위 등을 실제처럼 구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라스코 동굴벽화 전시회는 혼자서 그냥 감상하기보다는 전시해설사의 상세한 설명을 들어야 당시 구석기인들의 예술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성규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2016.08.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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