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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 시기 3년 반 늦추는 유전자 찾았다

산포로 2021. 8. 5. 10:12

폐경 시기 3년 반 늦추는 유전자 찾았다

[사이언스카페]

 

정자와 만나 수정된 난자. 폐경이 되면 난자 배출이 멈춘다./위키미디어

여성의 폐경(肺經) 시기를 결정하는 유전자 수백 종이 밝혀졌다. 연구가 발전하면 간단한 유전자 검사로 여성의 임신 수명을 예측하고 언제 시험관 아기와 같은 보조생식수단을 써야 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특정 유전자 기능을 차단해 여성의 임신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존 페리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4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유럽계 여성 20만명의 유전자를 분석해 여성의 폐경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 290종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동아시아 여성 8만명의 유전자 정보와 대조해 검증했다.

 

페리 교수는 “어떤 여성이 자연 임신이 가능한 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짧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면 임신에 대해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은 대부분 여성이 임신 가능한 시간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세포자살 억제하면 나이 들어도 난자 생산

 

폐경은 여성이 월경을 멈춘 상태를 말한다. 이에 따라 임신 능력도 사라진다. 최근에는 부정적 어감을 지닌 폐경 대신 잘 마무리했다는 뜻으로 ‘완경(完經)’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성은 나중에 난자가 될 난모세포를 100만 개 정도 갖고 태어난다. 50세 전후로 폐경기에 가까워지면 그 수는 1000개 정도로 감소한다. 인체는 유전자를 간직한 DNA에 손상이 일어난 난모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손상된 DNA를 수리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DNA 손상도 증가해 미성숙 난자의 손실이 늘어난다.

 

페리 교수 연구진은 폐경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는 대부분 손상된 난모세포의 DNA를 수리하거나 수리가 여의치 않은 경우 난모세포를 파괴하는 종류였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예가 CHEK2 유전자이다. 이 유전자는 손상된 난모세포를 스스로 죽도록 유도한다.

 

연구진은 CHEK2 유전자가 작동하지 않는 변이가 생기면 여성의 폐경 시기가 3.5년 늦춰진다고 밝혔다. 생쥐에서 CHEK2 유전자를 작동하지 못하게 하자 나이가 들어도 난자가 죽는 속도가 느려졌다. 또한 체외수정에 쓰는 배란 촉진제를 투여하자 다른 생쥐보다 더 많은 난자를 배출했다. 페리 교수는 “사람에서 CHEK2 유전자의 기능을 조금 약화시키면 난자를 더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CHEK1 유전자는 손상된 DNA를 수리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가 한 벌이 더 많은 생쥐도 역시 난자를 더 생산했다고 밝혔다.

 

폐경 시기 결정 유전자들. CHEK1은 손상된 DNA를 수리하고(a 왼쪽), CHEK2는 DNA 손상이 심한 난모세포를 제거한다(a 오른쪽). 생쥐에서 CHEK1 유전자를 추가하고, CHEK2를 억제하자 임신 수명이 늘었다(b)./네이처

◇ 혈액검사로 폐경 예측, 임신 수명 연장 가능

 

연구진은 앞으로 더 많은 여성의 유전자를 분석할 예정이다. 페리 교수는 “연구가 발전하면 혈액 검사만으로 여성이 조기 폐경을 맞고 임신 능력을 잃을 수 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옥스퍼드대의 크리나 존데르반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실린 논평에서 “이번 결과는 앞으로 여성이 자신의 폐경 나이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임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수단을 고려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같은 방법으로 폐경을 맞은 여성에게 잘 나타나는 당뇨병과 골다공증의 위험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유전자 기능을 조절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이 있다. 폐경 시기와 관련된 CHEK 유전자는 인체에서 DNA 손상을 억제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미국 예일대의 쿠트룩 옥테이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유전자의 DNA 수리 기능을 강화해 폐경을 늦추는 것은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하지만 손상된 난모세포를 제거하는 검문소를 아예 없애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제안”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 잭슨 연구소의 이웨리나 볼컨-피라스 박사는 “폐경 시기에는 흡연과 비만 같은 환경 요인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유전자 분석만으로 폐경 시기를 점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chosun.com)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21.08.05 0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