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후변화 세계 질병지도 바꾼다 SARS·AI등 발생지역 변화…한국도 뎅기열등 발병
국내 관련 5개 전염 진료비 연간 80억원 규모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지구의 기후변화는 각종 기상재해로 인한 경제적인 피해를 불러오고 있다. 또한 전염병이 확산되고 새로운 곳에서 발생하는 등 인간의 건강에도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질병의 영향을 짚어보고 효과적인 대응책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난 100년 동안 지구의 온도는 0.74℃가 올랐다. 1℃가 채 안 되는 온도상승이지만 그 영향은 엄청나다. 세계 곳곳에서 홍수, 폭우, 폭설, 폭염, 슈퍼태풍과 같은 기상재해가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전 지구적으로 자연생태계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학계에서는 지금처럼 지구의 온도 계속해서 상승하면 오는 2020년경에는 야생동물 중 온도변화에 민감한 개구리, 뱀 등 양서파충류가 멸종하고 적게는 4억 명, 많게는 17억 명이 물 부족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급속한 기온상승은 막대한 인명 및 재산상의 피해뿐만 아니라 전염병과 같은 질병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02년 11월부터 2003년 여름 사이에 아시아, 북미, 남서 태평양 및 유럽 등지에서 약 8000명이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에 감염돼 900명 이상이 숨지고 홍콩에서만 약 300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고했다.
WHO, 2003년 2분기 아시아 SARS 피해 600억 달러 추산
제1차 감염자의 대다수를 차지한 중국 광동지방의 감염자는 야생동물 거래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감염자는 점차 건강관리기관이나 병원으로 전이됐다.
SARS는 직접 접촉이나 바이러스 감염, 기침에 의해 전이된다고 알려져 있고, 가벼운 공기 중 전이물질에 의해서도 옮겨진다고 보고된다. SARS는 기온과 기압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갑자기 차가운 한기의 내습은 기폭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SARS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003년 2분기 동안에만 600억 달러를 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H5N1바이러스에 의한 조류독감(AI)은 1997년 홍콩에서 처음으로 발병이 보고된 이래(총 18건 발생, 6명 사망), 2003년 독감시기인 1월에서 3월 사이 다시 2건이 발생했고, 2003년과 2004년 겨울에는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에서 발병한 것으로 보고됐다.
이처럼 조류독감은 겨울부터 봄철(11~3월)사이에 주로 발병하며, 특히 가금류 사이에 H5N1 인풀루엔자가 확산될 때 발병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4년 12월 세계보건기구의 오미 시게루 박사는 1918년 전 세계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조류 인플루엔자 대유행이 일어난다면 적어도 700만 명, 최악의 경우 1억 명이 사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그리고 유럽의 몇 나라들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대기 온도가 가장 높은 시기와 살모넬라(식중독 원인균)에 의한 발병 시기가 비슷한 패턴으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국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연중 온도가 가장 높은 시기의 1~6주 이내에 살모넬라에 의한 발병 시기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온난화가 계속된다면 이런 종류의 질병들이 절정을 이룰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001년 캘리포니아 지역의 한 연구에서는 평균 온도가 높거나 엘니뇨 현상이 심할 때는 바이러스성 폐렴으로 입원하는 사례가 급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른 대륙의 열병이 확산된 경우도 있다.
케냐 지역에서 유행했던 밸리 열병은 버섯 등 균류의 포자를 흡입하면서 발생한다. 그런데 미국의 남서부 지역의 사막지대에서도 이 병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는 5년간의 가뭄이 계속된 뒤에 밸리 열병이 유행했다.
야생동물보존협회(WCS)는 최근 동물에 존재하는 12가지 질병이 지구온난화로 인간에게 전염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이어 WCS는 확산 가능성이 큰 전염병들로 AI와 진드기 매개 바베시아, 콜레라, 에볼라 등 12가지 질병을 꼽았다.
온도가 가장 높은 시기와 발병시기 일치
콜레라를 일으키는 박테리아 비브리오 콜레라(Vibrio cholerae) 확산의 경우 물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WCS는 "아주 작은 기후 변화만으로도 질병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지구온난화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은 빙하가 녹아 없어지는 것 등을 상상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기온 상승으로 인한 치명적인 전염병의 확산 위험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 변화가 가져올 생태계의 혼란과 질병 발생 패턴의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절지동물, 설치동물, 포유동물 등 여러 생물체의 질병 감염 경로가 지난 한 세기 동안 놀랄 정도로 변해버렸다.
그동안 의학이나 사회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광견병이나 콜레라 등은 확산 정도가 약해졌고, 장티푸스, 말라리아, 황열병, 뎅기열 등도 대부분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새로운 질병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평균 기온이 상승하는 동안 이집트 숲 모기의 활동이 미국에서도 가능해졌는데 뎅기열을 전파하는 이 모기는 미국 북부까지 서식범위를 넓혔다.
특히 최근 텍사스 남부와 멕시코 북부에서 유행했던 뎅기열이 가난한 멕시코인에게서 훨씬 많이 발병한 사실에서 볼 때 빈곤 계층에게는 더욱 위협적인 것으로 지적된다.
또 안면마비나 뇌막염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라임병이나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키는 한타 바이러스 등도 보고된다. 기후 변화가 일으킨 생태계의 변화가 이런 질병들의 범위를 확대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런 형태의 생물 매개체 혹은 인수 공통감염 질환은 앞으로 발생 건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런 질병 확산에는 기후 변화와 생태계 변화 그리고 사회적 요소와 세계화 등이 동시에 맞물려 작용한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병원체가 발견되면 우리에게도 직접적인 위협요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섭씨 1도 상승하면 국내 5대 전염병 발생률 4% 증가
우리나라의 경우 기상청이 지난 27년간의 기상 자료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봄철 평균 기온은 2000년대에는 12.9℃로 나타나 1980년대(12.3도)보다 0.6℃ 상승했다.
이와 관련, 질병관리본부 전염병 대응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뎅기열병 환자는 2001년 6명에서 매년 증가해 최근에는 100여 명에 달한다.
그동안 뎅기열병은 열대 지방의 병으로 인식됐다. 뎅기열의 전파 지역은 남미, 아프리카, 지중해 동부, 서태평양 지역 등으로 대부분 우리보다 위도 상 남쪽인 지역이다.
뎅기열은 바이러스를 가진 모기를 통해서 전염되는데 보통 고열과 두통을 수반하고 백혈구 및 혈소판이 감소하는 증상을 보인다. 심하면 뇌출혈을 일으켜 사망할 수도 있다. 치사율은 약 20%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경우에 뎅기열병의 매개 모기인 이집트 숲 모기가 북상해 자체 발병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처럼 한반도의 기후 변화가 뎅기열병의 발병을 불러왔을 가능성도 있다. 뎅기열병이 토착화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질병관리본부는 최근 뎅기열병을 매개하는 모기의 한 종류인 흰줄 숲 모기가 국내에서 발견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향후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5대 전염병 발생률이 4.27% 증가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호성 박사는 ‘기후변화에 따른 전염병 감시체계 개선 방향’ 연구에서 2005~2007년 3년 동안의 전염병 발생을 기준으로 온도변화에 따른 전염병 발생을 예측한 결과 우리나라의 온도가 1도 상승할 경우 5대 전염병의 평균 발생률이 4.27%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5대 전염병의 기온 상승에 따른 발생증가율은 쓰쓰가무시, 렙토스피라, 말라리아, 장염비브리오, 세균성이질의 순으로 나타났다. 기온이 섭씨 1도 올라갈때 쓰쓰가무시의 발생증가율이 5.98%로 가장 높을 것으로 예측됐고, 세균성이질의 증가율은 1.81%로 가장 적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측됐다.
또 렙토스피라의 발생증가율은 4.07%, 말라리아의 증가율은 3.40%, 장염의 증가율은 3.29%로 추정됐다. 5대 전염병의 발생환자수도 2007년 2만1140명으로 2005년 2만250명보다 890명이 늘어났다.
질병별로는 쓰쓰가무시가 52.2%로 가장 많았고, 말라리아(27.5%), 세균성이질(14.6%), 렙토스피라(2.9%), 장염비브리오(2.7%)의 순이었다. 이 기간에 렙토스피라와 말라리아의 유병률은 늘어났지만, 쓰쓰가무시는 소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쓰쓰가무시 등 전염병 진료비만도 80억 달해
5개 질환의 진료비는 2005년 70억2700만원, 2007년 77억8900만원으로 각각 분석됐다.진료비는 요양급여비 총액과 원외처방약제비를 포함한 금액으로, 사회적인 비용 등을 감안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진다.
질병별 진료비는 2007년 기준 유병건수가 가장 많은 쯔쯔가무시가 47억7700만원으로 가장 많고, 이어 말라리아 14억6000만원, 장염비브리오 10억3100만원, 렙토스피라 3억4400만원, 세균성이질 1억7700만원 등의 순이었다.
장염비브리오는 유병건수가 가장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건단 평균 진료비가 높아 진료비 총액 또한 높게 나타났다. 진료건당 평균 진료비는 2007년 기준 장염비브리오가 194만3000원으로 가장 높고, 렙토스피라 53만8900원, 쯔쯔가무시 45만8700원, 말라리아 21만5700원, 세균성이질 4만9700원 순이다.
신 박사는 “온도변화와 질병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기온 상승에 따라 전염병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전염병의 시공간적 변이성을 반영하고 기후요소에 의한 질병의 변이를 최대한 고려하는 세밀한 전염병 예측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활용한 전염병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국제공조 강화해야
기후변화가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졌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의한 영향의 규모와 양상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사 및 연구가 더 필요하다.
특히 기후변화 관련 질병발생에 대한 체계적인 보고와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크다. 정부 및 학계 등에서 이러한 연구, 조사 및 보고체계의 구축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 기후변화에 의한 건강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또한 우리나라만의 노력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측면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국제공조, 특히 아시아 지역 국가와의 긴밀한 협력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공중보건학적 적응전략을 적절히 수립하고 정부, 학계, 시민단체의 공조와 국제적 협력을 통해 실천에 옮기는 일이 현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분석도 제시된다.
이와 함께 경제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환경에 대한 교육과 활동 그리고 정부와 시민의 공동노력에 의한 거버넌스 체계의 구축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김원학 기자 (green@bosa.co.kr) 입력 : 2009-04-07 오전 7:38:00 http://www.bosa.co.kr/umap/sub.asp?news_pk=13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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