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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병 부르는 바이러스, 미스터리 신경질환의 원인이었다

산포로 2022. 1. 14. 09:43

키스병 부르는 바이러스, 미스터리 신경질환의 원인이었다

[사이언스샷]
하버드 연구진, 다발성 경화증 주범으로 엡스타인-바 바이러스 지목

 

키스병을 일으키는 엡스타인-바 바이러스의 현미경 사진. 하버드대 연구진은 이 바이러스가 난치성 신경질환인 다발성 경화증의 원인임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미 국립암연구소

 

미 육군이 전 세계에서 280만 명이 걸리는 난치성 신경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할 길을 제시했다. 병사들의 건강기록을 통해 이 병이 대부분 사람이 감염되는 흔한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것으로 처음 밝혀진 것이다.

 

미국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알베르토 아쉐리오 교수 연구진은 1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치료법이 없는 난치병인 다발성 경화증이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 감염으로 유발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아쉐리오 교수는 “이번 연구는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백신과 치료제로 다발성 경화증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길을 여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육군 1000만명 의료기록 추적

 

다발성 경화증은 면역체계가 신경세포 보호막인 미엘린 수초를 공격하면서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신경이 손상되는 위치에 따라 시력 손상에서 운동, 감각, 성기능 장애까지 다양한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병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상태다.

 

이번에 병의 원인으로 지목된 엡스타인-바 바이러스는 10명 중 9명이 감염되는 흔한 포진 바이러스이다. 대부분 증상이 없지만 일부는 고열과 발진 등 증상이 일어난다. 바이러스가 주로 침을 통해 퍼지기 때문에 감염 증상을 키스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전에도 엡스타인-바 바이러스가 다발성 경화증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입증하기가 어려웠다. 워낙 많은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다 보니 비감염자가 다발성 경화증에 걸리지 않는지 확인하려면 엄청난 수를 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미 육군에서 답을 찾았다. 병사들은 입대부터 2년에 한 번씩 혈액검사를 한다. 병사 1000만명의 의료 기록을 조사한 결과 복무 중 다발성 경화증에 걸린 병사는 955명으로 나타났다.

 

병이 생긴 병사는 대부분 처음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였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고도 다발성 경화증이 생긴 병사는 단 한명이었다. 34명은 첫 혈액 검사에서는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지만 이후 다발성 경화증 진단 전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엡스타인-바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다발성 경화증에 걸릴 위험이 32배 증가한다고 밝혔다.

 

코로나 백신 개발사인 미국 모더나는 엡스타인-바 바이러스에 대한 mRNA 백신을 개발해 임상시험을 시작했다./AdobeStock
 
◇백신, 치료제 개발 길 열려
 
스탠퍼드대의 윌리엄 로빈슨, 로렌스 스타인만 교수는 이날 사이언스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이번 발견은 엡스타인-바 바이러스가 다발성 경화증을 일으키는 방아쇠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를 제기했다”며 “병의 첫 방아쇠가 밝혀진 만큼 다발성 경화증도 박멸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여러 곳에서 엡스타인-바 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 백신 개발사인 미국 모더나는 지난 5일 엡스타인-바 바이러스에 대한 mRNA(전령리보핵산) 백신 임상시험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호주 연구진은 2018년 소규모 임상시험에서 면역세포인 T세포를 이용해 엡스타인-바 바이러스 감염 증상을 개선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발표했다. 모두 바이러스만 보고 진행된 연구였지만 이번 하버드대 연구 결과를 통해 신경 난치병까지 치료하고 예방할 가능성도 확인됐다.
 

조선일보 (chosun.com)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22.01.14 0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