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병 부르는 바이러스, 미스터리 신경질환의 원인이었다
[사이언스샷]
하버드 연구진, 다발성 경화증 주범으로 엡스타인-바 바이러스 지목

미 육군이 전 세계에서 280만 명이 걸리는 난치성 신경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할 길을 제시했다. 병사들의 건강기록을 통해 이 병이 대부분 사람이 감염되는 흔한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것으로 처음 밝혀진 것이다.
미국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알베르토 아쉐리오 교수 연구진은 1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치료법이 없는 난치병인 다발성 경화증이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 감염으로 유발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아쉐리오 교수는 “이번 연구는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백신과 치료제로 다발성 경화증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길을 여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육군 1000만명 의료기록 추적
다발성 경화증은 면역체계가 신경세포 보호막인 미엘린 수초를 공격하면서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신경이 손상되는 위치에 따라 시력 손상에서 운동, 감각, 성기능 장애까지 다양한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병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상태다.
이번에 병의 원인으로 지목된 엡스타인-바 바이러스는 10명 중 9명이 감염되는 흔한 포진 바이러스이다. 대부분 증상이 없지만 일부는 고열과 발진 등 증상이 일어난다. 바이러스가 주로 침을 통해 퍼지기 때문에 감염 증상을 키스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전에도 엡스타인-바 바이러스가 다발성 경화증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입증하기가 어려웠다. 워낙 많은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다 보니 비감염자가 다발성 경화증에 걸리지 않는지 확인하려면 엄청난 수를 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미 육군에서 답을 찾았다. 병사들은 입대부터 2년에 한 번씩 혈액검사를 한다. 병사 1000만명의 의료 기록을 조사한 결과 복무 중 다발성 경화증에 걸린 병사는 955명으로 나타났다.
병이 생긴 병사는 대부분 처음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였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고도 다발성 경화증이 생긴 병사는 단 한명이었다. 34명은 첫 혈액 검사에서는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지만 이후 다발성 경화증 진단 전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엡스타인-바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다발성 경화증에 걸릴 위험이 32배 증가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chosun.com)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22.01.14 0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