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환자가 ‘자신’을 공격한다
감염 후 면역기능 파괴하는 자가항체 다수 생성해
인체 면역 기능에 있어서도 아군을 적군으로 오인해 공격하는 경우가 있다.
군사용어인 ‘아군 사격(friendly fire)’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코로나19 환자에게 있어 중증을 유발하고 오랜 기간 후유증을 유발할 수 있다.
15일 ‘가디언’ 지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그동안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리고 최근 예일 대학의 연구원들이 수수께끼를 밝혀냈다. 코로나19 환자의 혈액 속에서 착각에 빠진 ‘자가항체들(autoantibodies)’이 다수 활동하고 있다는 것.
루프스보다 더 많은 자가항체 생성해
이들 항체들은 침투한 바이러스와 싸우기보다 자신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 164명과 그렇지 않은 비감염자 30명의 면역 시스템을 비교해 감염자 혈액 속에 다수의 항체들이 비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 비정상적인 항체들은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하는 항바이러스 기능을 차단하고, 항체를 만드는 면역세포를 제거하며, 뇌‧혈관‧간 등 자신의 장기들을 공격하는 등 다각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인체를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환자의 혈액 속에 이런 ‘자가항체’가 많을수록 환자의 증세는 더 악화되고 있었다.
의료계에서는 이를 자가면역(autoimmunity)이라고 하는데 인체 면역계가 이상을 일으켜 스스로 공격하는 현상을 말한다.
가임기 젊은 여성에게 자주 발생하는 ‘루푸스(lupus)’가 대표적인 사례다. 면역계의 이상으로 온몸에 염증이 생기는 만성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키는데, 코로나19 환자의 경우 ‘루프스’보다 더 많은 ‘자가항체’를 생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 주저자인 예일대 생물학자 아론 링(Aaron Ring) 교수는 “자가항체의 자살성 공격으로 면역기능, 장기 등에 이상이 발생해 오랜 기간 중증에 시달릴 수 있으며, 치료 후에도 후유증으로 고통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링 교수는 “코로나19 환자 나이와 자가항체 간의 관련성을 분석한 결과 18~49세의 경우 약 10%, 70세 이상인 경우 약 5분의 1까지 그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연구를 지켜본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의 면역생물학자 대니 알트만(Danny Altmann) 교수는 “예일대 연구 결과로 중증 환자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증상이 악화되는지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논문은 의학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메드아카이브(medRxiv)’ 12일(현지시간)에 게재됐다. 제목은 ‘Diverse Functional Autoantibodies in Patients with COVID-19’이다.
자가항체 억제할 수 있는 치료법 개발
예일대 링 교수는 같은 대학의 면역생물학자인 이와사키 아키코(Akiko Iwasaki) 교수 등 11명과 협력해 연구를 수행했다.
194명의 코로나19 환자와 비감염자 30명을 선정한 후 항체 반응을 비교분석한 결과 코로나19 환자의 일부 항체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바이러스를 방어하고 있으며, 정상적인 항체에 의해 차단된 바이러스를 다시 풀어주는 등 그릇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 놀라운 것은 코로나19에 걸린 후 이들 자가항체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감염자들과 달리 감염자들은 이 비정상적인 항체들을 빠르게 생성하면서 증상을 악화시키고 있었다.
연구 결과 환자의 5% 이상이 항바이러스성 단백질 인터페론(interferon)을 약화시키는 항체를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환자들은 인체 내 바이러스의 증식을 조절할 수 없어 더 심각한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환자들은 면역계에 있어 항체를 생산하는 역할을 하는 B세포와 싸우는 자가항체를 지니고 있었다. 또 다른 환자들은 다른 면역 세포들을 활성화시키고 지휘하는 역할을 하는 T세포를 제거하는 자가항체를 지니고 있었다.
연구팀은 통해 한 명의 환자에게 이런 여러 유형의 자가항체들이 공존할 때 증세가 중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쥐를 대상으로 한 자가항체 감염시험을 통해 이들 자가항체들이 치명률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논문 저자들은 “코로나19 증세와 관련, 다양한 변화들이 자가항체와 관련돼 있음을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 이들 자가항체들의 활동을 어떻게 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류마티스관절염, 루푸스, 다발성경화증과 같은 질병이 면역체계 오작동과 관련돼 있음을 알고 있었다.
바이러스를 막아야 할 항체들이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공격함으로써 예상치 못한 질병을 유발하게 된다는 것. 그러나 이처럼 오작동되고 있는 면역 반응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방식은 면역억제제를 통해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비활성화 하는 방식이다. 링 교수도 “류마티스 질환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면역억제 치료법이 효과적 일 수 있다.”고 말했다.
- 이강봉 객원기자 aacc409@hanmail.net 2020.12.16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