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연구속보] 논란의 코로나19 ‘혈장치료’ 첫 임상연구결과...생존율 ‘글쎄’·증상은 ‘개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에 감염됐다 회복한 환자의 혈액에서 나오는 혈장을 환자에게 투여하는 혈장 치료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난 8월 23일 긴급승인하며 논란이 됐다. 혈장치료 임상에서 코로나19 환자의 치명률을 낮춘다는 연구결과에 의거한 긴급승인이지만 감염병 전문가들은 혈장 치료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임상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또 미국 FDA가 혈장 치료를 긴급 승인하며 내세운 임상 시험이 무작위 대조군 임상 시험(RCT, Randomized controlled trials)은 아니었다. 정밀하게 설계된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승인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코로나19 관련 ‘치료 목적 사용승인(EAP, Expanded Access Program)’ 제도의 일환으로 메이요 클리닉이 대규모 혈장 치료 관련 연구를 긴급사용승인(EUA, emergency use autorization)방식으로 진행했지만 이 연구는 엄밀한 RCT가 아니라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인도의학연구위원회(India Council of Medical Research, ICMR)가 코로나19 환자의 혈장 치료에 대한 무작위 대조군 임상 시험(RCT, Randomized controlled trials)을 처음으로 완료하고 연구 논문을 지난 9월 8일 사전 배포본 형태로 공개했다.
사람의 혈액에는 보통 적혈구가 42%, 백혈구가 1%를 차지한다. 혈구를 뺀 나머지 액체가 혈장이다. 혈장은 약 90%의 물과 7~8%의 단백질, 2%의 기타 성분으로 구성된다.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완치된 환자의 혈장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항체들이 들어있다. 이들 항체가 포함된 혈장을 다른 환자에게 직접 투여해 항체를 주입하고 면역력을 활성화시켜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시키는 게 혈장치료다.
백신과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회복 환자의 혈장을 투여하는 혈장치료는 전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혈장치료가 일부 환자 치료에서 활용되기도 했다. 지난 4월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은 혈장치료로 코로나19 중증 환자 2명을 치료했다는 연구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ICMR이 공개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혈장 치료가 환자의 치명률을 낮추는 데는 큰 효과가 없다는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19 환자의 생존을 돕는 데 효과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실망스러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일부 전문가들은 낙담하지 않고 있다.
ICMR의 이번 연구는 입원한 중증 코로나19 환자 464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4월 22일부터 7월 14일까지 39개의 의료센터에서 산소 치료를 받은 환자였다. 표준 치료를 받은 대조군과 함께 24시간 간격으로 200ml 용량의 혈장을 2회 투여받았다. 분석 결과 코로나19 환자의 회복기 혈장 치료는 심각한 중증 환자나 사망으로의 진행을 억제하는 효과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연구논문의 공동저자이자 인도 찬디가르 소재 최고 의료 교육 및 연구기관 중 하나인 의학교육·연구대학원연구소(PGIMER) 임상 혈액학자인 판카 말호트라는 이번 연구결과는 인도 내 임상 실습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인도는 21일 글로벌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 기준 코로나19 확진자수가 521만2686명으로 미국(686만5229명) 다음으로 많다. 사망자수도 8만4404명에 달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인도 내에서는 혈장 치료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인도 보건부는 기존 치료법으로도 호전되지 않는 환자에 대해 허가받지 않은 혈장치료를 권고하기도 했다.
미국 존스홉킨스 블룸버그공중보건학교의 아투로 카사데발 면역학자는 인도의 혈장치료 임상연구에 대해 “회복기 혈장 치료 관련 무작위 대조군 임상시험으로는 최초로 이뤄진 것”이라며 “이는 실제로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에서의 혈장 치료 RCT는 환자 감소로 인해 3월 말 조기 중단됐다. 네덜란드에서 이뤄진 또다른 RCT는 혈장의 잠재적인 이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중단됐다. 현재 미국에서는 환자를 적극적으로 모집중인 무작위 대조군 임상 시험이 20여개에 달하지만 아직 완료된 임상시험은 없는 상황이다.
ICMR의 혈장 치료 RCT 연구에서 코로나19 환자 생존을 위한 이점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일부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대조군에 비해 환자의 증상이 일부 개선됐고 바이러스도 증식도 일부 억제된 것이다. 미국 FDA의 회복기 혈장 치료 긴급사용승인을 촉구한 메이요 클리닉의 마이클 조이너 교수는 “ICMR의 연구는 매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상당한 신뢰도가 있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인 결과”라고 전했다.
조이너 교수는 이번 ICMR의 연구가 지닌 한계도 지적했다. 첫 번째는 RCT에 활용된 대다수 혈장의 항체 적정량이 낮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혈장 투여를 받은 코로나19 환자들이 증상이 발현된 지 평균 8일 뒤에 혈장을 투여받았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늦은 시점에 혈장을 투여해 엄밀한 결과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미다.
앞서 미국 메이요 클리닉 연구진은 비록 RCT는 아니지만 코로나19로 입원한 환자들에게 비교적 초창기인 3일 내에 혈장 치료를 하면 치명률이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혈장에 포함된 항체 적정량이 낮은 혈장을 비교적 늦게 투여한 환자에 비해 치명률이 낮아진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이 연구에는 대조군이 포함되지 않아 치명률 감소라는 결론이 혈장 치료에 의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혈장 치료가 코로나19 환자에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두 차례의 임상 시험에 관여한 존스홉킨스의 아투로 카사데발 교수는 ICMR의 연구에 대해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우선 혈장 기여자가 상대적으로 젊고 건강했고 경미한 증상이 있었기 때문에 혈장 내 항체 적정량이 낮은 것으로 파악됐고, 혈장 투여 시험군의 경우 증상이 발현되고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혈장 투여가 이뤄져 코로나19 환자의 생존에 줄 수 있는 이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중증 환자였다가 회복돼 항체가 적정량 존재하는 환자의 혈장을 조기에 코로나19 환자에 투여할 경우 치명률을 낮추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혈액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분분하다. 테리 건세이머 워싱턴대 의과대학 교수는 “ICMR 연구에 참여한 환자들의 수도 많지 않다”며 “실제로 혈장 치료의 차이점을 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RCT가 이뤄져야 하는지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환자 464명을 대상으로 한 ICMR의 임상연구 사례수가 충분한지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또 무작위 대조군 임상 시험에 참여한 환자들 일부가 표준 치료를 받았다는 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회복기 혈장 투여를 통한 혈장 치료 면역 조절 효과는 알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미국 뉴욕 소재 마운트시나이 아이칸 의과대학 암 면역학자인 토마스 마론 교수는 “중증 환자 초기에는 혈장 내 항체가 역할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러스 제거가 중요하고 증상이 어느 정도 진행된 환자의 경우에는 염증 반응을 컨트롤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고 했다. 증상이 발현돼 중증으로 바뀐 환자들의 경우 항체의 역할보다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생긴 염증을 제어하는 게 치명률을 낮추는 데 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건세이머 워싱턴대 의과대학 교수는 낙관적이다. 그는 “미국에서 비록 RCT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혈장 치료의 해로운 점이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며 “혈장 치료에 관한 보다 광범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 한국과학기자협회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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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사이언스 2020.09.2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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