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체의 지방 조직을 공격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규명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부터 과체중과 비만, 당뇨 등 기저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중증으로 진행되거나 사망 위험이 높은 원인을 제시하는 연구결과다.
뉴욕타임즈(NYT)는 8일(현지시간) 캐서린 블리쉬 스탠퍼드 의과대 교수 연구팀이 독일과 스위스 연구진과 공동연구를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체지방 내에서 지방세포와 특정 면역세포를 모두 감염시키고 인체의 면역시스템을 손상시키는 반응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보도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필립 셰러 미국 UT 사우스웨스턴메디컬센터 교수는 “결론적으로 바이러스가 지방세포를 직접 감염시킬 수 있다는 것”이라며 “지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지방에서만 일어나지 않고 주변 조직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한 과학적 사실을 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비만 수술 환자에게 얻은 지방 조직이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수행하고 다양한 유형의 세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추적했다. 분석 결과 지방 세포 자체가 감염될 수 있지만 심각한 염증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지방 조직에 존재하는 면역세포인 대식세포가 감염될 수 있으며 이때는 강력한 염증 반응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또 코로나19로 사망한 유럽 내 환자들의 지방 조직에서 여러 장기 부근의 지방 조직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흔적을 찾아냈다. 연구진은 “지방 조직이 바이러스의 저장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며 “실제로 에이즈를 유발하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지방 조직에 저장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체지방의 면역반응을 피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만일 170파운드(약 77kg)이 이상적인 체중인 한 남자의 실제 체중이 250파운드(약 113kg)일 경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머물 수 있는 지방 조직을 더 많이 보유할 수 있다는 의미다. 체지방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저장고가 될 수 있다는 사실보다는 지방 조직의 대식세포에서 염증 반응이 심각해진다면 ‘사이토카인’을 유발한다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연구진은 지방 세포에 코로나19 감염이 발생할 경우 염증성 사이토카인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방세포 내 면역세포인 대식세포가 감염되면 염증매개물질인 사이토카인 분비를 늘려 과도한 염증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캐서린 블리쉬 스탠퍼드 의과대 교수는 “중증 환자의 혈액 샘플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동일한 염증성 사이토카인 반응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체지방은 생물학적으로 다른 세포에 작용하는 호르몬과 면역세포를 만들어낸다. 감염이 일어나지 않아도 낮은 수준의 염증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염증 반응은 인체에 침입하는 외부 공격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다. 면역시스템이 외부 침입자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경우 때때로 매우 강렬하게 나타나 염증을 유발한 감염 자체보다 더 해로울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아직 동료 과학자들의 검증은 거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체중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취약한 이유와 비만 등 특정 젊은 연령층에서 중증 환자가 발생하는 위험이 큰 이유를 밝힐 단서를 제시하고 있다. 연구진은 또 체지방을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코로나19 치료법이 필요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비슈와 딥 딕시트 미국 예일대 의과대학 비교의학 및 면역학 교수는 “바이러스가 인체의 면역반응을 피하기 위해 지방세포에 숨는 것이라면 우리에게는 아킬레스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회복된 후에도 몇 주 또는 몇 개월 동안 피로감과 함께 장기간 증상이 이어지는 ‘롱 코비드’에 체지방이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또 “과체중이나 비만인 환자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치료법과 백신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성도 있다”고 밝혔다.
동아사이언스 (dongascience.com) 김민수 기자reborn@donga.com 2021.12.09 1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