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어떻게 산불을 방지할까
자연적으로 생기는 산불은 통제가 가능한 상황에서는 회복되는 단계에서 나무들의 생장이 좋아지고 생물 다양성을 높여 생태계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기후와 초목 등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산불의 활동에 미치는 역할은 활발히 연구되어 왔다.
최근 ‘사이언스’에 소개된 연구는 초지의 풀을 뜯는 초식동물들이 이런 산불을 통제하는 자연 요소로 작용한다는 흥미로운 내용의 결과를 보고했다. 초식동물들이 산불이 번지는데 재료로 작용하는 풀을 뜯어 먹어, 풀이 빈자리는 자연 방호벽 역할을 하게 된다는 요지이다.
이에 따르면, 지역마다 분포하고 있는 초식동물 종의 다양성과 그 개체 수와 그들이 주식으로 하는 식물종과 같은 정보는 산불이 자연적으로 잘 통제되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반대로 산불을 통제하는 데에 초식동물들을 이용하는 방안을 고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7천여 년 전 멸종된 초식동물들
이전 연구에서 풀을 뜯는 동물 종들이 대거 사라진 지역은 산불이 더 잦게 일어나 초지의 규모를 통제할 것이라는 가설이 제기된 바 있었다. 연구진은 실제로 초식동물들이 산불을 통제하는데 영향을 미치는지, 그렇다면 그 규모를 얼마나 큰지를 확인하기 위해 신생대 제4기 후기 (Late Quaternary)에 거대 동물들의 대거 멸종이 산불 빈도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이 시기는 빙기와 간빙기가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지질시대 ‘플라이스토세’에 지구에 번성했던 거대 동물들이 멸종한 때로, 대략 7천여 년 전까지를 말한다. 지금의 코끼리들처럼 주로 풀을 뜯어 먹던 매머드나, 이들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나뭇잎, 혹은 열매를 주로 먹었던 마스토돈, 혹은 ‘거대한 나무늘보’로 불리는 메가테리움과 같은 1톤 이상의 거대한 초식동물들이 이 시기에 사라졌다. 그 외에도 다양한 초식동물 종들이 함께 멸종했다.
연구진은 산불과 초식동물 멸종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초식동물을 ‘풀을 뜯는 동물들’, ‘연한 잎이나 새싹을 뜯는 동물들’ 등의 범주로 구분해 분석했다. 특히 산불 활동의 변화가 큰 곳에서 이 동물들의 멸종 심각성도 더 큰지 특정해 그 상관성을 분석했다.
비교를 위해서 거대 동물들의 멸종이 대륙마다 양상이 달랐다는 점에 착안했는데, 이를테면 아프리카에서는 초식동물 개체 수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던 데 비해, 다른 대륙에서는 초식동물들의 멸종 규모가 더 컸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에서 초식동물 멸종이 더 심각해
먼저, 연구진은 현재 살아 있는 포유류와 13만 년 전쯤부터 살다가 제4기 후기 때 멸종된 포유류 302종을 대상으로 멸종의 심각성을 평가했다. 심각성은 예상한 대로 대륙 간의 차이가 컸는데,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는 각각 83%와 68%에 달하는 ‘풀을 뜯는 동물들’이 사라진 데 비해, 오스트레일리아와 아프리카는 각각 44%와 22%에 그쳤다. 이는 지역별 초식동물의 종 다양성과도 연관성을 보였다.
연구진은 대륙별 산불 활동이 멸종 전후로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분석했다. 산불 중에서도 특히 풀밭으로 번지는 종류의 불은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 순으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변화가 거의 없었고, 아프리카는 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풀을 뜯는 동물들의 멸종이 심각한 순서대로 산불이 더 자주 생긴 것이다. ‘연한 잎이나 새싹을 뜯는 동물들’의 멸종은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또한, 풀이 아닌, 나무와 같이 다른 것을 매개로 번지는 산불의 경우도 ‘풀을 뜯는 동물들’의 멸종과 상관관계가 없었다. 풀을 뜯는 동물들이 가연물을 제거해 풀을 타고 번지는 불을 통제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결과로 연구진은 해석했다.
초식동물의 다양성과 산불, 기후는 서로 영향을 미쳐
흥미로운 것은, 이 같은 산불의 활동이 대륙별 기후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아메리카의 경우 산불이 잦아짐과 동시에 전반적인 기온도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 변화와 종 다양성의 변화가 산불의 활동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산불의 활동이 다시 기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후속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연구진은 산불을 통제하는 데에 초식동물들을 적극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지구 상의 초식동물은 대부분이 가축이지만, 종 다양성이 산불 통제와의 연관성을 보이는 만큼 야생동물들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한소정 객원기자 ㅣ 2021.12.09 ⓒ ScienceTimes
생명과학 사이언스타임즈 (2021-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