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근한 박사 선배가 알려주는 학위과정 꿀팁] 길고 긴 슬럼프
대학원 생활이 늘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상당기간 슬프고 무기력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20대 초반까지는 독서가 취미였다. 시간 날 때마다 도서관에 가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종류의 책을 많이 읽었었고, 심지어 책 쓰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결과인지 나름 말하기나 글쓰기에 자신이 있었다. 분명 연구실 합류 초반에는 발표할 때 말하는 데에 있어 군더더기가 없을 만큼 정말 훌륭하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실험실 안에서만 지내는 똑같은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영어 논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나는 책을 멀리하게 되었고, 서서히 그런 언어적 능력도 사라져 가는 게 느껴졌다. 역시 언어는 잘 안 쓰면 퇴화하는 것인가 보다.
이외에도 대학원에서의 생활은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예상치 못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데이터 미팅을 비롯해 모든 미팅을 진행하는 동안 너무 충격받은 건 교수님께서 말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말하는 단어, 토씨 하나까지 다 듣고 맞는지 아닌지 판단하신다는 사실이었다. 빨리 말하면 실수하는 부분을 잘 모르시겠지 하고, 조금 머리를 써서 빨리 와다다다 말해도 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처음에는 말 한마디까지 세심하게 듣고 판단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나도 잘 모르는 부분을 발표할 때 그에 대한 몇 번 비판적인 말들을 듣게 되니 자신감이 줄고 점점 압박감이 느껴졌다. 교수님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점점 더 무서워졌고 이어지는 몇 번의 말실수와 공부 부족, 그리고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은 걱정과 부담감은 더욱 커졌다. 어떤 비판적인 피드백들은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울던지 힘들든지 말든지 원칙인 랩미팅은 계속되었고 매주 진행되었다. 반복되는 상황은 이어졌고, 피드백으로 안 좋은 평가들에 결국은 랩미팅 시간에 나는 말 한마디조차 제대로 이어 나가기 어려울 정도의 극도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랩미팅은 나에게 평가의 지옥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것이 어쩌면 내 길고 긴 슬럼프의 시작이었다.
이 글에 흥미를 갖고 읽은 사람 중에도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 본다. 다양한 이유로 많은 대학원생들이 슬럼프에 빠져있는 것 같다. 마법같이 모든 상황이 한 번에 해결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그런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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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해결 방안은 자퇴였다. 당시로서는 속상하고 화도 났다. 강한 의지만 있으면 다 된다고 믿었는데, 대학원 생활에서는 의지만으로 안 되는 게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다. 매일 실패만 겪고, 매일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미 대학원의 로망은 사라졌다. 1년이 지나도 내 연구의 방향도 못 찾고 실험에 대한 이해도 문제 해결 능력도 없었다. 안 되는 연구에 계속 매달릴 만한 풋풋했던 초심은 시들해 진지 이미 오래였다. 연구뿐 아니라 생활 자체도 버거웠다. 연구도 잘 못했을뿐더러 돈도 없어서 생활이 정말 힘들었다. 당시 매달 소액의 생활지원금을 받았는데 학식도 겨우 사 먹었다. 옷이나 다른 생필품을 사는 것은 사치였다. 그렇다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도 없었다. 20 대 후반이 되면 좀 더 멋진 인생을 살 줄 알았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남이 정한 틀 안에서 맞춰서 사는 삶에 회의감이 느껴졌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모든 것이 의미 없어 보였다. 그렇게 결정한 게 자퇴였다. 상황을 회피해 버리는 것. 어찌 보면 가장 쉬운 방법이다. 모든 마음을 정리하고 자퇴서를 뽑아서 교수님께 자퇴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께서는 여기서 힘들다고 자퇴하고 포기하면 다른 일도 힘들면 쉽게 포기하고 그만둘 거냐고 물으셨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때 뿌리치고 자퇴했었어야 했는데(?) 그 당시 그 말이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솔직히 말하면, 연구에 대한 애정이 이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나는 결국 남아서 문제에 직면하고 해결해 보기로 했다. 고생길을 자처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의 나는 이 실험실의 시스템에 맞춰 일단 하루살이가 아닌 일주일 살이로 살아가며 1-2년을 버텼다. 그렇다고 1-2년 동안은 큰 변화는 없었다. 늘 혼났고 늘 배웠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익숙해진 것 같다. 발표도 연구도 심지어는 혼나는 것조차도 말이다. 대신 랩 미팅 때 데이터 하나라도 보여주면서 피드백을 받으려 노력했다. 특별히 잘해서 졸업했다기보다는 그냥 버티다 보니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포스닥이 된 지금 돌아보면 그 당시 표현이 서툴렀어도 내 연구와 생각에 피드백을 준다는 것 자체가 시간과 노력의 투자이고 큰 관심의 표현이라는 걸 깨달았다. 또한 내가 더 크게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약간의(?) 채찍질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의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완성될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그만두지 않고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나의 길고 긴 슬럼프 극복기는 결국 어려움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정말로 어둠 속에서도 별은 빛나고, 긴 터널 끝에는 반드시 빛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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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친박선(필명)) 등록일2024.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