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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보다 뛰어난 초파리의 비행 실력

산포로 2021. 4. 26. 13:26

철새보다 뛰어난 초파리의 비행 실력

몸길이의 약 600만 배 거리를 단번에 날아가

 

초파리는 키우기가 쉽고 세대가 짧아 유전학을 포함한 여러 과학 연구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생물이다. 작은 점처럼 보이는 이 곤충은 야외에 풀어놓아도 부엌에서처럼 짧은 거리에서 원을 그리며 윙윙거릴 뿐이다.

 

그런데 초파리의 놀라운 비행 능력을 밝힌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단 한 번의 비행으로 약 15㎞까지 쉬지 않고 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의 연구진이 발표한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4월 20일자에 게재됐다.

 

초파리는 단 한 번의 비행으로 약 15㎞까지 쉬지 않고 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Floris van Breugel

이때까지 사람이 잠을 자거나 멈추지 않고 가장 먼 거리를 달린 것은 딘 카르나제스라는 마라토너가 2005년에 세운 기록이다. 울트라 마라톤 선수로서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한 그는 80시간 동안 560㎞를 계속 달렸다.

 

이 거리를 사람의 몸길이로 환산하면 대략 32만4,000배다. 그런데 이번 연구 결과 초파리는 자기 몸길이의 약 600만 배를 쉬지 않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사람이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거리인 1만㎞를 쉬지 않고 달리는 것과 같다.

 

연구진은 몸길이로만 볼 때 철새들이 하루에 날 수 있는 것보다 초파리가 더 먼 거리를 날 수 있다고 밝혔다.

 

집단유전학의 오래된 수수께끼에 도전

 

칼텍의 과학자들이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1940년대에 초파리를 연구한 집단유전학자들의 이상한 발견 때문이었다. 당시 유전학자들은 수천 ㎞나 분리된 초파리 개체군들이 유전적으로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그 거리는 초파리들이 비행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보다 훨씬 더 멀어 의문을 낳았다.

 

1980년대 들어 집단유전학자들은 수십만 마리의 초파리에 형광물질을 바른 후 사막에 놓아두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다음날 15㎞ 떨어진 곳에 놓아둔 썩은 바나나 양동이에서 형광 초파리 몇 마리가 발견됐다.

 

하지만 그 초파리들이 바람에 날려서 우연히 그곳까지 비행했는지, 거기까지 날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얼마인지, 초파리가 한 번에 날 수 있는 비행 거리는 얼마인지 등에 대한 의문은 전혀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동안 이에 대한 실험이 한 번도 다시 진행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 같은 오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모하비 사막의 건조한 코요테 호수에서 실험용으로 흔히 사용되는 노랑초파리 수십만 마리로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초파리를 풀어 정해진 장소의 덫으로 유인한 다음 비행에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초파리의 방출 지점 반경 1㎞를 따라 사과즙과 샴페인 효모가 담긴 덫 10개를 설치했다. 카메라가 설치된 덫은 초파리들이 기어들어갈 수는 있지만 빠져 나올 수는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1㎞ 떨어진 덫까지 16분 만에 도착해

 

연구진은 실험 하는 동안 방출 지점의 풍속과 방향을 측정하기 위한 기상 관측 장치도 설치했다. 초파리의 비행이 바람의 영향을 어떻게 받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전의 실험처럼 초파리에게 형광 물질 같은 식별 표시는 하지 않았다.

 

초파리들의 비행 능력에 최대한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코요테 호수 부근에는 노랑초파리들이 서식하지 않아 다른 초파리 개체들이 섞여들 염려가 없다는 점도 이 같은 결정을 거들었다.

 

연구진은 초파리의 방출 지점 반경 1㎞를 따라 사과즙과 샴페인 효모가 담긴 덫 10개를 설치했다. ©Floris van Breugel

이후 연구진은 다양한 바람 조건에서 초파리를 방출하는 실험을 반복한 결과, 1㎞ 떨어진 덫까지 도착하는 시간이 약 16분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초파리들은 먹이를 섭취한 후 최대 3시간 동안 계속 날 수 있는 에너지를 지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연구진은 노랑초파리가 단 한 번의 비행으로 약 12~15㎞ 날 수 있으며, 산들바람에 의해 도움을 받을 경우 그보다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마이클 딕킨슨(Michael Dickinson) 교수는 “초파리의 이동 능력은 그동안 엄청나게 과소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의 비행으로 철새들보다 더 멀리 여행할 수 있었다”라며 “초파리는 실험실의 표준 모델이지만 연구실 밖에서 연구된 적은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비행 능력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실험 결과 초파리들은 먹이를 찾을 때 일정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 단순한 항해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먼 거리를 비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초파리 같은 곤충 개체군이 전 세계로 이동하는 방식을 알아내 해충이 먹을 수 있는 농작물을 관리하는 이동 생태학 분야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