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공전이 플랑크톤 진화의 원인?...40만 년 주기의 이심률… 식물성 플랑크톤 다양성에 영향
지구 기후에 영향을 주는 원인과 관련해 세르비아 과학자인 밀루틴 밀란코비치(Milutin Milankovitch, 1879~1958)의 ‘밀란코비치 주기’를 떠올릴 수 있다. 그가 주장한 것은 지구의 자전축, 세차운동, 태양 주위로 도는 공전궤도 등이 지구 기후에 영향을 준다는 내용이다.
그중 공전궤도를 나타내는 이심률(eccentricity)과 지구 기후와의 관련성은 과학자들이 자주 언급한다. 태양과 가깝거나 멀수록 태양에너지 영향을 받는 크기에 따라 기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태양 주위를 회전하는 지구의 공전궤도가 계절의 변화를 유발해 식물성 플랑크톤 진화를 부추기는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고생물학자인 룩 보퍼트 박사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진은 “지구의 공전궤도 이심률이 식물성 플랑크톤 종의 진화를 주도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지난 1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지에 논문을 게재했다.
낮은 이심률, 다양성 감소와 멸종까지 영향 끼쳐
이심률은 지구 공전궤도의 자취다. 완전한 원일 때의 값을 0으로 두면 장축이 긴 타원형으로 갈수록 1에 가까워진다. 계절의 길이가 다른 이유는 이런 편심 때문이다. 북반구 여름이 겨울보다 약 4.5일 길고, 봄은 가을보다 약 3일 더 길다. 이심률이 감소하면서 계절의 길이는 점차 비슷해지고, 계절의 기후 차이가 줄어든다.
이심률은 지구 탄생부터 변화해 왔다. 하지만 일정한 규칙은 있다. 약 10만 년, 40만 5000년의 2개 주기를 가진다. 현재 지구 공전궤도 이심률은 약 0.017이다.
지구 궤도가 식물성 플랑크톤과 관련이 있을까. 연구진은 식물성 플랑크톤의 한 종류인 석회비늘편모류(coccolithophore)를 주목했다. 석회비늘편모류는 약 200종으로 분류된다. 이 플랑크톤은 ‘코코리스(coccolith)’라는 탄산칼슘 성분의 비늘을 갖고, 죽으면 바다에 석회질 퇴적층을 만들어낸다. 이런 특성은 대기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해양의 탄소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인도양과 태평양 퇴적층에서 표본 8,000개를 채취해 700만 개 이상의 코코리스를 인공지능 현미경 기술로 모양을 측정했다. 석회비늘편모류 중 노엘라에르하브다세아(Noelaerhabdaceae) 과(科)에 속하는 여러 종의 플랑크톤 흔적을 찾아 측정했다.
연구진은 “노엘라에르하브다세아는 새로운 환경에서 번성을 위해 코코리스의 크기와 석회화 정도를 조정하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탐구 결과, 코코리스 평균 길이가 질량을 비교하니 지구 궤도 이심률 주기를 따르는 것을 확인했다. 이심률이 높을수록 적도의 계절별 특성이 뚜렷해지면서 석회비늘편모류의 종 다양성은 높아졌다. 특히, 40만 5000년의 이심률 주기와 닮아 있었다. 현대 해양에서 적도 지대가 식물성 플랑크톤 다양성이 가장 높은 것을 고려할 때, 당시 높은 온도와 안정적인 조건이 주기적으로 발생했을 것으로 연구진은 설명했다.
반대로 낮은 이심률에서는 다양성이 감소하고, 심지어 멸종까지 이르렀다. 이심률이 낮을수록 계절 구분이 불분명해진 현상과 관련이 있다. 또한,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의 감소와 ‘유전적 병목현상’도 원인으로 추정된다. 해양 탄소 저장의 측면에서 보면 낮은 이심률은 코코리스에서 유래한 탄소를 가장 많이 매몰시켰다.
논문 주저자이면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책임자인 보퍼트 박사는 “현재 지구가 원형에 가까운 공전 시 적도의 계절 변화가 미미하지만, 궤도가 타원에 가까울 때는 열대 지방의 변화가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열대 계절성의 이런 효과는 주로 지구 자전축 기울기에 따라 발생하는 고위도 계절성 원인과는 다르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다양성은 약 40만 년, 새로운 종 출현은 10만 년 주기
또한, 빙기와 간빙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된 홍적세 후기에는 새로운 종들이 출현하기도 했다. ‘에밀리아니아 헥슬리(Emiliania huxleyi)’와 ‘제피로캅사 카리비니카(Gephyrocapsa caribbeanica)’가 대표적이다. 제피로캅사는 약 55만 년 전에 나타나 신생대 제4기에 걸쳐 석회질 비늘 크기가 반복적으로 커지거나 작아지는 패턴을 나타냈다.
이 시기 새로운 종 출현에 대해 지난 10월 영국 옥스퍼드대 과학자들은 두 종의 플랑크톤을 비롯한 새로운 종 출현이 10만 년 주기의 빙기와 간빙기 순환 단계와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옥스퍼드대 생물학자인 드미트리 필라토프 박사는 “빙하기의 기후가 빙하의 이동으로 물리적 장벽을 만들어 종의 분리가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육상생물에서 지리적으로 분리된 집단의 선택적 압력으로 새로운 종이 발생하는 ‘이소적 종분화(Allopatric specion)’와 유사하다.
즉, 이심률로 인한 기후변화가 새로운 식물성 플랑크톤 종의 출현을 부추긴 셈이다. 연구진은 플랑크톤의 다양성이 최대로 증가하는 주기는 약 40만 년, 새로운 종은 10만 년 주기로 출현한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고 밝혔다.
공동 연구책임자 클레라 볼튼 박사는 “이심률에 의해 발생하는 열대 해양의 계절성 변화에 석회비늘편모류의 적응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석회비늘편모류 외에도 이심률 주기가 다른 식물 플랑크톤 종에도 유사하게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예상한다. 식물성 플랑크톤의 석회화와 순환 진화는 태양 일사량 변화에 반응이 필요하다는 가설을 지원하는 증거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정승환 객원기자 ㅣ 2021.12.14 ⓒ ScienceTimes
생명과학 사이언스타임즈 (2021-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