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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천연물 신약

산포로 2011. 1. 5. 13:20

제약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천연물 신약 (상)

[파퓰러사이언스 공동] 약효 뛰어난데다 부작용 적어

목련, 은행, 산수유, 뱀, 쇠똥구리, 바다달팽이, 무당거미. 이들은 의학적으로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신약의 원료가 된다는 점이다.  최근 이 같은 천연 생물을 활용한 ‘천연물 신약’ 개발이 의약계의 핫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천연물에서 추출한 약리 활성 물질을 이용하면 화학적으로 합성하는 방식에 비해 개발기간과 개발비를 줄일 수 있는데다 약효는 뛰어나고 부작용은 적은 고부가가치 신약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세계 각국은 제약 분야의 패권 장악을 위해 다양한 동식물을 연구, 천연물 신약 후보물질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신종 인플루엔자 A(H1N1)가 세계인을 공포로 몰아넣었을 때 일약 스타덤에 오른 약이 있다. 바로 항바이러스제 타미 플루다.

타미 플루는 당시 H1N1 치료의 유일한 대안으로 집중적 조명을 받으며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품귀 현상이 나타났을 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덕분에 타미 플루를 개발한 스위스의 제약사로서도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았다. 작년 한 해 동안의 타미플루 매출이 무려 3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현재 타미 플루가 어떤 약인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아는 사람 역시 그리 많지 않다.

약효, 경제성, 안전성 3박자 겸비

타미 플루는 일반적인 화학 합성 신약이 아니다. 목련과 상록수에 속하는 팔각 나무의 열매인 팔각회향(八角茴香)에 함유된 시킴산(shikimic acid)이라는 성분으로 합성한 천연물 신약이다.


팔각회향은 중국과 베트남의 토착식물로서 이뇨 작용, 식욕 증진 등의 효과가 있어 이전에도 약재로 쓰여 왔으며 중국식 돼지고기 요리나 베트남 쌀국수에 쓰이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이러한 팔각회향이 어떻게 항바이러스 제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제약사들은 3월에서 5월 사이에 수확한 팔각회향을 정제한 뒤 그 종자를 특정 대장균을 이용해 발효시킨다. 그리고 여기서 시킴산을 추출한다. 대략 30㎏의 팔각회향에서 1㎏의 시킴산이 생산된다. 이후 약 6~8개월간 10여 단계의 공정을 거쳐야만 바이러스 증식 효소의 작용을 막는 신약으로 거듭난다.

사실시킴산은 팔각회향뿐만 아니라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등 여타 고등식물에도 다량 들어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타미 플루가 아닌 시킴산을 함유한 여타 약초나 식품으로는 타미 플루와 같은 항바이러스 효과를 볼 수 없다.

오히려 경련, 구토 등 부작용의 우려만 있을 뿐이다. 시킴산을 추출한 후 거치는 10 여 단계의 공정에 비밀이 숨어 있는 셈이다. 타미 플루와 같은 천연물 신약은 한 가지 성분으로만 구성돼 있기도 하고 여러 성분을 혼합한 진액형태도 있다. 그 성분은 크게 과학적으로 효능을 입증 받은 생약제제와 동의보감 등 전통요법에 의존한 한방제제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그 비율이 4대 1정도다.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의 자료에 의하면 천연물 신약이 본격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2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대체보완의학연구부가 설립되면서부터다.

이후 합성 신약보다 개발기간이 짧고 개발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이점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관련연구가 확산되고 있다. 조용백 환인제약 중앙연구소장은 “합성 신약은 신약 개발까지 적어도 2,300억 원 이상의 연구개발비와 11년 이상의 개발기간이 소요되는 반면 천연물 신약은 7년간 최대 100억 원으로 개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천연물 신약은 또 유효성과 안전성에서도 우위를 점한다. 조소장은 “천연물 신약의 원료는 이미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생약으로부터 주로 얻는다”며 “임상적으로 충분히 검증이 된 만큼 예측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거나 효과가 기대를 밑돌 개연성이 합성신약에 비해 월등히 낮다”고 밝혔다.

생활 속에 파고 든 천연물신약

이 같은 메리트에 주목한 선진국들은 미래 성장동력의 일환으로 천연물 신약 연구에 속속 뛰어들었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00년 식품의약국(FDA)을 통해 천연물신약 개발 규정을 별도로 제정, 과학적 방법에 의해 효능을 증명하기만 해도 천연물 신약으로의 등록을 허용하고 3~5년간 독점권을 부여하는 등 정부차원에서 전폭적 지원을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미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생활 깊숙이 파고 든 천연물신약이 꽤 많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제품이 다국적 제약사 BMS의 주 사용 항암제 ‘탁솔’이다.

▲ 선진국들은 미래 성장동력의 일환으로 천연물 신약 연구에 속속 뛰어들었다. 

유방암, 난소암, 위암, 식도암, 폐암 등에 탁월한 치료효과를 인정받아 최초의 블록버스 터급 항암제로 명성이 자자한 탁솔의 원료는 미국 태평양 연안에서 자생하는 주목나무의 껍질이다.

여기서 얻은 추출물이 암세포 증식과 성장을 억제하는 약리 작용을 한다. 신통방통한 이 성분은 지난 1958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 국립암센터(NCI)가 3만 5,000여 종에 이르는 식물의 항암성분을 조사하면서 발견된 것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탁솔은 지난 1992년 출시된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매년 15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국내에 첫 출시돼 거둬들인 수익도 100억 원을 넘었다. 차세대 항암제로 손꼽히는 악타비스의 ‘도세탁셀’ 역시 유럽산 주목나무 잎의 추출물을 주성분으로 삼고 있다.

지난 2000년 미국임상종양학회 학술 회의에서 밝혀진 바로는 도세탁셀은 폐암 환자의 생존율을 10년 이상 연장 시켜준다. 이는 기존 치료제와 비교해 5배 가량 향상된 효과다.

또한 아일랜드 제약사 엘란의 진통제 ‘프리알트’는 바다달팽이의 일종인 청자고둥의 독을 원료로 만들어졌다. 고통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을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새로운 유형의 치료제로 진통효과가 모르핀의 1,000배 이상이다.

물론 중독성은 없으면서 말이다. 때문에 프리알트는 첫 시판 후 6개월 만에 자그마치 6,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일본 제약회사 산쿄의과 콜레스테롤 혈증 치료제 ‘메바스타틴’은 페니실리움 시트리눔이라는 다소 난해한 이름의 곰팡이가 원료다.

이 곰팡이가 지닌 ML-236B라는 물질이 콜레스테롤의 합성에 관여하는 효소를 억제, 지방 단백질의 농도를 낮춰준다. 이외에 미국 일라이 릴리의 당뇨병 치료제 ‘바이에타’도 최근 떠오르고 있는 천연물 신약이다.

이 약의 약리물질 제공자는 힐러 몬스터라는 미국 도마뱀으로 이 도마뱀의 타액 성분인 엑센 딘-4를 합성해 개발됐다. 힐러 몬스터의 타액에는 췌장 기능을 되살리는 단백질이 들어있는데 혈당이 높아졌을 때만 인슐린 분비를 촉진할 수 있다.

글: 박소란 파퓰러사이언스 기자 2011년 01월 03일(월)

저작권자 2011.01.03 ⓒ ScienceTimes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todo=view&atidx=0000047283

 

 

* 제약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천연물 신약 (하)

[파퓰러사이언스 공동] 미래산업선도기술로 막대한 이익 창출

국내의 경우 2000년대 들어 연구자들과 제약사들이 천연물 신약 개발에 본격 뛰어들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청(KFDA) 바이오생약국생약제제과 강신정 과장은 “지난 2000년 천연물 신약 연구 및 산업화 촉진을 위한 ‘천연물 신약연구개발촉진법’이 제정되면서 시장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스타급 천연물 신약의 탄생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그 대표주자는 동아제약의 위점막 보호제 ‘스티렌정’과 SK케미칼의 관절염 치료제 ‘조인스정’이다.

천연물 신약으로 제약 강국도약

황해쑥 추출물을 주성분으로 한 스티렌정은 지난해 전체 의약품 중 4번째로 많은 850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조인스정은 250억 원의 매출을 달성, 두 천연물 신약만으로 1천억 원 이상의 시장이 창출됐다.

특히 이들의 성공에 자극받은 듯 지난 2004년부터는 천연물 신약을 위 한 임상시험 승인이 잇따르고 있다. KDFA 관계자의 의하면 11월 현재 총 64개의 천연물 신약이 임상시험을 진행 중에 있다.

이는 전년 대비 4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 중 당귀추출물로 만든 환인제약의 치매 치료제 ‘INM176’, 꿀벌의 건조 밀봉독(毒)을 이용한 휴온즈의 파킨슨병 치료제 ‘휴베나주’ 등이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어 머지않아 상용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각각 현삼(玄蔘), 국내산 옻나무 줄기, 포도를 활용한 광동제약의 알츠하이머 치료제, 에이지아이의 폐암 치료제, BRN사이언스의 천식치료제 등도 임상 2상을 진행 중에 있다.

이 밖에 아직 임상단계는 아니지만 눈길을 끄는 연구도 있다. 일례로 농촌 진흥청 산하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생물부는 현재 쇠똥구리의 펩타이드성 생체방어물질인 코프리신을 이용한 염증질환 치료제 개발에 돌입했다. 코프리신은 사람과 작물의 질병에 두루 효과가 있어 항생제, 항염제, 항암제 등으로 효과가 뛰어난 천연물 신약 개발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와 관련 KFDA의 강 과장은 “지난 2004년 이후 천연물 신약의 임상시험 계획 승인 현황을 분석한 결과, 고령화 시대에 대비한 골관절염·치매·암 치료 등을 주축으로 관련연구가 전개되고 있다”고 밝혔다.

강 과장은 또 “천연물 신약 개발에 대한 제약사들의 상담건수도 지난 2004년 26건에서 2009년에는 134건으로 6배 이상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도 천연물 신약을 제약 강국 도약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은 ‘미래산업 선도기술 개발사업’으로 전기자동차, 고효율 박막 태양전지 등과 함께 천연물 신약을 선정한 바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향후 2020년경 10조 원의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발맞춰 KFDA도 조만간 제약 업계 실무자와 공동으로 ‘천연물의약품 동등성 협의체’를 구성, 의약품 등의 품목 허가·신고·심사 규정을 명확하게 개정하는 등 천연물 신약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다각적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강 과장은 “우리나라는 천연물 신약 시장에서 일본, 중국보다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며 “생약제제만 놓고 비교해도 국내 시장은 작년 기준 약 6천78억 원이었던데 반해 일본은 850억 규모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주변의 모든 동식물이 후보 물질

하지만 원료가 살아있는 동·식물이다 보니 천연물 신약은 화학 합성 신약과 달리 재료를 무한정 얻을 수는 없다. 가령 앞서 언급한 탁솔의 경우 미국 주목나무 1그루의 껍질에 함유된 약리 물질은 전체의 0.01%에 불과하다. 한 명의 환자에게 투여할 최소량의 약리 물질을 얻기 위해서는 무려 30그루의 나무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나무는 생장 속도가 느려 지름 7㎝로 자라는 데 만 100년이 걸린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천연물 신약의 지속적인 성장성에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것이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환인제약의 조소장은 “기본적으로 일정량 이상이 개체군이 확보된 생물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필요에 따라 동식물을 추가 사육·재배할 수도 있어 원료 부족에 직면할 개연성은 적다”고 말했다.

강 과장 역시 “천연물 신약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며 “지구상에는 아직 우리가 제 효능을 찾지 못한 생물들이 산적해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천연물 신약은 원료 물질의 성분구조만 명확히 밝혀내면 화학적 공정을 거쳐 그와 동일한 효능의 합성 신약 개발이 가능하다.

조소장은 “천연물에서 화학공정으로의 전환은 오늘날의 천연물 신약들이 겪는 통상적인 과정”이라며 “타미 플루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타미 플루는 신종 플루가 대유행을 일으키기 이전부터 이미 화학적 공정을 거쳐 제조됐다.

그렇다면 이렇게 화학공정으로 전환된 천연물 신약은 더 이상 천연물 신약으로 부를 수 없을까. 조소장은 “기준에 따라 천연물 신약으로 볼 수도, 합성 신약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의약계에서는 보통 ‘천연물 유례 신약’이라고 칭한다”고 전했다.

개발만 된다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보니 천연물 신약 시장의 석권을 위한 각국의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석유, 석탄 등 에너지 자원 확보에 투자하는 것만큼 신약의 원료가 될 후보물질, 즉 다양한 생물 종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극지식물과 해양미생물의 확보를 위해 극지에 연구팀을 파견하는 등의 활동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보다 정부의 지원이 우선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조 소장은 “최근 여러 정책이 나오고는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미 개발된 천연물 신약의 글로벌화를 위한 정책인 경우가 많다”며 “한층 근본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금처럼 일부 대기업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기초 연구 분야로 저변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조 소장은 “전 세계 천연물 신약 시장은 이제 막 형성된 수준이지만 연평균 10~15%의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며 “이 성장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까운 미래에 천연물 신약이 전 세계 의약계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봐도 결코 무리는 아닌 셈이다.

글: 박소란 파퓰러사이언스 기자 2011년 01월 04일(화)

저작권자 2011.01.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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