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 배워라. 바닥이 희망이자 정상이다!” 혹독한 시절이다. 모두가 하나라도 움켜쥐고자 아등바등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시절에 갑자기 “바닥으로 내려가라!”고 충고하는 이가 있다. 동기 부여 전문가로 활동해온 유영만 한양대 사범대 교육공학과 교수가 그 사람이다. 최근 ‘내려가는 연습’(위즈덤하우스)이라는 책을 펴낸 유 교수는 현재 상황을 ‘경제 빙하기’라고 표현하면서 “막연한 전망과 예측,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을 버리고 내려가서 올라갈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을 틔우라”고 말한다. 그로부터 ‘내려가기’에 대해 들어보았다.
―아득바득 살아야 할 시기인데, ‘내려가는 연습’이라니요?
“올라가는 것은 곧 희망이자 성공이며 내려가는 것은 곧 좌절이자 실패 또는 절망이라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언제까지나 성장과 발전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숙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모두들 지금이 위기의 시대라고 합니다. 바다를 건너온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라고 합니다.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고 앞으로 닥칠 위기에 마음까지 얼어붙기도 합니다. 하지만 위기는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거품과 속도에 떠밀려온 우리들에게 ‘근원적인 성찰’과 ‘희망의 뿌리’를 키울 수 있는, 선물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쁨은 절망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사람들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내려가는 연습’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내려가서 자신의 삶의 터전을 뒤돌아보라는 성찰과 각성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동안 ‘올라가기’만 해온 것인가요?
“우리 사회는 총체적으로 ‘오름 중독증’에 걸려 있습니다. 올라감과 내려감은 목적이 다릅니다. 올라가는 것은 승리를 위한 것이었지만 내려가는 것은 살아남기 위함입니다. 이제는 ‘더 느리게 걷고, 더 낮게 내려오고, 더 가까이에서’ 우리의 삶을 되짚어 봐야 합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행복을 뜻하는 세잎 클로버는 가까이 있는데 우리는 저 멀리 있는 네잎 클로버만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행운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일상의 작은 행복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하심(下心)이 생각나기도 하고 마음을 비운다, 겸손해진다 등이 떠오르는데, ‘내려가기’를 좀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면요?
“내려가기는 역설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내려가야 올라갈 수 있고, 자세를 낮추는 것이 결국은 높이는 것입니다. 즉 ‘내려감’이 ‘올라감’이고 ‘낮춤’이 ‘높임’입니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뿌리를 최대한 아래로 뻗어야 높이 자랄 수 있습니다. 올라가려는 욕망을 앞세우면 결국 올라가지 못합니다. 내려가기는 등고자비(登高自卑)의 정신입니다. 높이 올라가려면 낮은 곳에서 시작하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기 전에 희망의 날개를 펼쳐야 할 때입니다. 추락은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떨어지는 것이지만 내려가는 것은 내 의지와 노력으로 잠시 멈추어 서서 처음 출발한 목적지를 향하는 마음이자 노력입니다. 그래서 추락은 절망이지만 내려감은 또 다른 희망입니다. 내려가는 길에 또 다른 기회의 땅이 숨어 있습니다.”
―내려가면 ‘바닥’인데, 거기서 배울 것이 있습니까?
“바닥은 희망의 싹이 트는 터전입니다. 바닥에는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강렬한 삶의 욕구와 의지가 살아 숨쉽니다. 바닥은 삶의 본질입니다. 경제 빙하기일수록 바닥으로 내려가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기회를 봐야 합니다. 바닥으로 내려가야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바닥은 곧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자 무대입니다. 바닥을 점검하고 살펴보는 사람이 바닥을 치고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겸손한 ‘낮춤의 미학’이 오만한 ‘높임의 어리석음’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벼 이삭도 익어갈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책에서 ‘바로 지금 항복을 선언하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단념과 포기라는 어려운 긍정을 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래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미련과 성장기에 누렸던 안락함에 젖어 있다가 경제 빙하기에 얼어 죽을 수 있습니다. 상식이 더 이상 상식으로 통용되지 않는 세상에서 상식을 믿고 있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항복을 선언하라’는 말은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미련, 언젠가는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전망, 그리고 나는 괜찮을 것이라는 안이한 자세를 버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경제 빙하기에 이전과는 다른 생각과 자세로 대처하라는 말입니다.‘손절매(損切賣)’를 하지 않으면 본전도 건질 수 없습니다. 아프고 슬프지만 빨리 포기하고 져주는 것이 결국은 이기는 것입니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8-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