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도 곰처럼 겨울잠 잤을까
43만년전 고인류 뼈에서 동면 흔적 발견
현생 인류의 조상들이 옛 지구의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겨울잠을 잤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의 일간 가디언은 이달 20일(현지시간)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대 고인류학과 교수 연구팀이 스페인 북부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43만년전 유골을 분석한 결과 곰과 같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의 뼈에 남는 성장 장애와 유사한 흔적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1990년 중반 스페인 북부 시마 데 로스 우에소스 동굴에서 발견된 뼛조각 수천 개를 분석했다. 이들 뼛조각은 모두 28명의 유골로 분석됐는데 '시마인'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유전자 감식 결과 약 43만 년 전 살던 고인류로 네안데르탈인의 직계 조상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공통 조상은 약 50만 년 전 공통 조상에서 갈라졌다가 다시 수만 년 전 둘 사이에 교배가 이뤄졌다고 추정된다.
연구팀이 이들 시마인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규칙적으로 성장이 느려졌다가 재개된 흔적이 확인됐다. 또 칼슘 흡수가 감소하고 부갑상선호르몬이 증가하는 만성신장질환을 앓았던 증상도 발견됐다. 청소년으로 추정되는 유골의 주인공의 뼈에서는 매년 성장이 일정 기간 지체됐다는 흔적인 빈 간격들이 관찰됐다.
연구팀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런 정황과 증거로 미뤄보면 유골의 주인공들이 겨울잠을 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만성신장질환 증상과 뼈 손상은 곰처럼 동면하는 동물들에게서도 보이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또 "갈라고원숭이나 여우원숭이 등 영장류도 겨울잠을 잔다"며 "초기 인류가 '음식 공급이 제한되고 체지방이 충분히 저장된 가혹한 조건에서 오랫동안 살아남는 '대사 상태'를 선택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에선 이런 가설이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알래스카의 이누이트나 시베리아의 사미족은 춥고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왔으나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에 대해 두 지역은 겨울에도 물고기와 순록고기에서 얻은 지방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반면 시마인들은 스페인이 속한 이베리아 반도가 사막화되면서 식량 부족 현상이 심각한 환경에서 살았다고 반박했다.
패트릭 랜돌프 퀴니 영국 노섬브리아대 법의인류학 교수는 “이번 연구는 매우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하고 있지만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며 “유골에서 발견된 흔적을 설명할 연구들이 더 소개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르앤트로폴로지' 12월호에 발표됐다.
동아사이언스 (donga.com) 조승한 기자shinjsh@donga.com 이수훈 인턴기자soolee@donga.com 2020.12.21 1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