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으로 조망하는 생명현상] 양자생물학
양자역학[1]적 뉴런?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는, 심사위원회의 발표대로 '일반상대성이론의 직접적 귀결로서의 블랙홀 형성을 예측'한 업적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걸친 독창적인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뇌와 의식(意識)에 대한 펜로즈의 양자역학적 이론을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아마 있을 것이다.[2] 필자 개인적으로도 대학원 입학 즈음에 읽었던 신경세포에서의 양자현상 및 의식의 기원에 관한 펜로즈의 논문 한 편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3]
뇌의 활동을 뉴런(neuron) 연결망에서 발생하는 비선형적인 전기적·화학적 신호 전달의 결과로서 이해하는 일반적인 견해와는 달리, 펜로즈는 뉴런의 골격을 구성하는 미세소관(microtubule)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양자현상(양자 결맞음)을 가정하고 이를 뇌 인지 기능의 근원으로 확장하기 위한 논리를 전개한다. 결론의 일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1) 미세소관의 구조적 단위인 튜불린(tubuline) 이합체의 배열상태를 반영하는 '중첩된 양자 결맞음(coherence) 상태'가 존재한다. (2) 이러한 미세소관의 양자역학적 확률 파동이 특정 질량-에너지 임계치에서 자발적으로 붕괴하여 단일한 튜불린 배열상태로 환원됨으로써 고전적인 의미의 뉴런 기능이 결정된다. (3) 단백질에 의해 매개되는 미세소관끼리의 연결은 결맞는 진동 상태를 조율하여 파동함수의 붕괴를 (임의적이지 않은) 조직화된 방식으로 일어나게끔 보조한다. 마취학자 스튜어트 하메로프(Stuart Hameroff)와 공동으로 작업하여 발표한 이 사변(思辨)적인 이론은 이후 물리학자와 생명과학자 양측으로부터 격렬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우호적인 독자라고 할 수 있는 필자에게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 양자론인가
초전도체나 레이저 등의 섬세하게 조작된 특수한 (많은 경우 초저온의 고체상) 닫힌 계에서 관찰할 수 있는 양자 결맞음 현상이 높은 온도의 '축축한' 열린 계인 세포에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은 대부분의 물리학자에게 과격하게 들릴 것이다. 또한 신경계의 생리적 기작을 단일 분자 수준에서부터 시스템 생물학적 접근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규명하고 있는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다루기 어렵고 다소 추상적으로 보이는 양자이론을 도입할 필요를 굳이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생화학적 반응은 원칙적으로 양자화학으로 환원될 수 있다. 하지만 열적 요동과 복잡계 상호작용의 영향이 지배적인 인자로서 작용하는 생체 환경을 기술하는 데 있어서는 고전역학적 통계물리에 의존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방식일 것이다.
양자이론의 관점에서 생명현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에르빈 슈뢰딩거 등 양자역학의 선구자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양자생물학(Quantenbiologie)이라는 용어도 양자역학의 개척자 중 한 명인 파스쿠알 요르단(Pascual Jordan)이 1932년에 제안했으니 이미 대략 9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4] 양자물리의 확립에서 생명현상에의 적용으로 그 관심의 흐름이 이어진 것은 의외의 일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초기 양자역학의 해석에 관련된 논란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관측과 인식의 역할에 대한 문제가 그 발단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더불어 양자역학 선구자들의 (기계론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으로서의) 유기체론(organicism)에 대한 철학적 경도(傾倒)가 고전역학적 세계관의 붕괴로 인한 전환기적 상황에서 은연중에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5] 이후 1960-70년대 허버트 프뢸리히(Herbert Fröhlich)가 발표한 일련의 논문에서 대사과정 중 발생하는 에너지 흐름에 의해 생체 거대분자의 양자 결맞음 상태가 유지될 수 있음을 보였으나, 생체 조건에서 존재하는 양자현상에 관한 연구는 오랫동안 검증하기 쉽지 않은 가설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이 기간동안 (슈뢰딩거 등 양자역학 창시자들의 영향으로 인해) 생명과학으로 전향한 젊은 물리학자들이 양자이론이 아닌 고전역학적 결정론에 뿌리를 둔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황금기를 이끌게 된다. 분자생물학의 성공과 뒤이은 생명공학 혁명의 그늘에서, 생명현상에 양자역학을 접목하고자 하는 시도는 대부분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필연성이 떨어지는 작업으로 간주되었다.
생체계의 양자현상 : 현재와 미래
생명체에서의 양자현상에 대한 실험적 증거가 축적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이다.[6-8]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주제는 광합성계(photosynthetic system)의 전자전달(electron transport) 과정에서의 양자 결맞음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심해의 극한 환경에서 서식하는 녹색황세균(green sulfur bacteria)의 경우 태양광이 거의 도달하지 않는 조건에서 생존하기 위해 거의 100%의 효율을 나타내는 광포집(light harvesting)-전자전달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 있어 결맞는 엑시톤(exciton) 생성 모형이 유력한 이론으로 거론되고 있다. 유럽 울새(European robin) 등 몇몇 조류 종(種)의 자기장 감지 능력 역시 양자역학적 기원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가설이 요즈음 종종 언급되고 있다. 즉, 망막에 존재하는 크립토크롬(cryptochrome)이라는 광감응성 단백질의 라디칼 쌍(radical pair)에서 발생하는 양자역학적 얽힘(entanglement) 상태가 철새들이 어떻게 지구 자기장을 나침반 삼아 이동하는지 알려줄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 망막 광수용체인 로돕신(rhodopsin) 분자에서의 양자 중첩 현상도 광자 감지 기능과 관련하여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외에도 후각세포 수용체와 냄새를 유발하는 분자 사이의 결합이 고전적인 '자물쇠-열쇠' 모형 뿐 아니라 전자 터널링(tunneling)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실험 결과가 발표되고 있으며, 효소 촉매 반응에서의 양성자 터널링 효과 역시 근래 주목 받고 있는 연구 주제이다.
양자생물학은 2000년대 들어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긴 하나, 오랫동안의 가설 과잉 상태에서 벗어나 견고한 실험적 뒷받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부분이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시험관 속의 정제된 거대분자가 아닌 '살아있는 상태'에서의 직접적인 양자효과 관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큰 숙제가 남아있다. 또한, 특정한 분자 복합체에서 국소적으로 발생하는 양자현상이 어떠한 방식을 통해 일반적인 생화학적 신호전달 체계와 연계되는지에 대한 연구 역시 필요하다. 양자역학적 중첩과 얽힘, 비국소성이 생명을 영위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일까?[9] 뇌의 기능과 인지과정을 양자정보학의 이론 틀로써 접근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10,11] 생명과학에 있어 양자이론의 은유적, 형식론적 적용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실제 생체계에 존재하는 양자현상을 발견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참고문헌
1. 양자역학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은 다음 웹사이트를 참고 : (1) 박권 교수 '믿기 힘든 양자' 시리즈, (2) 허준석 교수 '양자정보: 생물학에서 컴퓨터까지'. 양자 결맞음의 개념에 관해서는 아래 참고문헌 #8의 Box 1 및 Box 3 참조.
2. R. Penrose, Shadows of the Mind: A Search for the Missing Science of Consciousness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1994)
3. S. Hameroff, R. Penrose, Orchestrated reduction of quantum coherence in brain microtubules: A model for consciousness. Mathematics and Computers in Simulation 40, 453-480 (1996)
4. S. F. Huelga, M. B. Plenio, Vibrations, quanta and biology. Contemporary Physics 54, 181-207 (2013)
5. J. McFadden, J. Al-Khalili, The origins of quantum biology.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A 474, 20180674 (2018)
6. N. Lambert, Y-N. Chen, Y-C. Cheng, C-M. Li, G-Y. Chen, F. Nori, Quantum biology. Nature Physics 9, 10-18 (2013)
7. P. I. Sia, A. N. Luiten, T. M. Stace, J. P. Wood, R. J. Casson, Quantum biology of the retina. Clinical & Experimental Ophthalmology 42, 582-589 (2014)
8. G. D. Scholes, G. R. Fleming, L. X. Chen, A. Aspuru-Guzik, A. Buchleitner, D. F. Coker, G. S. Engel, R. van Grondelle, A. Ishizaki, D. M. Jonas, J. S. Lundeen, J. K. McCusker, S. Mukamel, J. P. Ogilvie, A. Olaya-Castro, M. A. Ratner, F. C. Spano, K. B. Whaley, X. Zhu, Using coherence to enhance function in chemical and biophysical systems. Nature 543, 647-656 (2017)
9. Z. Yin, T. Li, Bringing quantum mechanics to life: from Schrödinger’s cat to Schrödinger’s microbe. Contemporary Physics 58, 119-139 (2017)
10. S. Tarlacı, M. Pregnolato, Quantum neurophysics: From non-living matter to quantum neurobiology and psychopathology.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physiology 103, 161-173 (2016)
11. M. Asano, I. Basieva, A. Khrennikov, M. Ohya, Y. Tanaka, I. Yamato, Quantum information biology: from information interpretation of quantum mechanics to applications in molecular biology and cognitive psychology. Foundations of Physics 45, 1362-1378 (2015)
12. D. Abbott, P. C. W. Davies, A. K. Pati, Quantum Aspects of Life (Imperial College Press, London, 2008)
13. M. Mohseni, Y. Omar, G. S. Engel, M. B. Plenio, Quantum Effects in Biology (Cambridge University Press, Cambridge, 2014)
이론으로 조망하는 생명현상 성백경 (KIST 유럽연구소)
물리학을 전공한 수리생물학 연구자입니다. 정교하고 복잡한 낱낱의 생명 현상을 때로는 멀리서, 전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문적인 연구 내용을 다루기보다는, 교양인의 관점에서 비형식적인 에세이의 성격을 갖는 연재를 시도해 보고자 합...
생명과학 분도78 (2020-12-02)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248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