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으로 조망하는 생명현상] 생물학적 사이버네틱스
스스로 제어하는 구조
사이버네틱스란 자가조절 시스템(self-regulating systems)에 관한 매우 일반적인 수학적 체계로서, 공학을 비롯하여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등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르는 범학제적 이론 틀이다[1]. 사이버네틱스는 처음부터 일종의 개념적 '플랫폼'으로서 설계되었다고도 할 수 있으며[2], 정보이론, 인공신경망, 자기조직화(self-organisation) 등 20세기 후반의 과학 사조를 견인한 여러 이론들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였다.
사이버네틱스의 핵심 개념은 되먹임(feedback) 구조 또는 순환적 인과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1940년대 처음 제창된 이래 다양한 갈래의 분화 과정을 거치면서 가지각색의 다른 비환원론적 이론 체계들로 변형·계승되거나 특정 분야에 특화된 분석 방법론으로 진화하여 단일한 개념 범주로서 규정하기가 그리 간단치 않다. 그러나 이론 정립 초기부터 생물학, 특히 생리학 및 신경과학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었던 까닭에 생명과학 및 생체공학 분야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림 1: [왼쪽] 1949년 경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강의실에서의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 [오른쪽] 유전자 수준의 세포 활동을 사이버네틱스 이론으로써 제어할 수 있을까? Image sources: Harvard Magazine(harvardmagazine.com) and ETH Zürich(ethz.ch).
1948년 출간된 노버트 위너의 저서 『사이버네틱스, 또는 동물과 기계에서 제어와 통신』은 종종 사이버네틱스의 효시로 여겨진다[3].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위너의 초기 사이버네틱스에는 기계론적 생명관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즉 인간의 신경계와 자동화된 기계장치 사이에서 공통의 수학적 요소를 찾아내어 양쪽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제어·통신 이론을 개발하고자 했던 것이 위너의 궁극적 목표였다[4,5].
위너가 달성하고자 했던 또 다른 목표는 기계와 유기체 모두에 적용 가능한 인지-행동 이론을 수립함으로써 인간-기계 인터페이스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생리학적 조절 기능 메커니즘의 유비(類比)로서 공학에서의 제어 이론을 도입한 것은 위너의 업적이으나[6], 완전한 인간-기계 인터페이스 이론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신경생물학의 수학화(mathematisation)가 전제되어야만 했다[4].
계산 신경과학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정보-엔트로피 및 되먹임 회로의 개념은 1940년대 위너-폰노이만-섀넌에 의해 이제 막 정립된 상황이었기 때문에[7], 뇌생리학을 전적으로 수학적 이론의 기반 위에서 설명하고자 했던 사이버네틱스 선구자들의 비전은 (복잡계 동역학 등장 이전의) 당시 과학 수준에서는 구체화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뒤이어 부상(浮上)한, 강력한 환원주의에 기반을 둔 1960년대 분자생물학의 성공 앞에 생물학적 사이버네틱스의 의의는 어느 정도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8]. 질병이 단순한 인과관계의 사슬에 의해 발생하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병리학의 기작을 기술하는 데 있어 일반적으로는 시스템적 접근 방식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8].
생명의 목적, 그리고 인식의 지평선
생물학적 사이버네틱스의 주요 개념으로서 항상성(homeostasis)을 들 수 있다[2]. 유기체의 항상성은 '서로 연결된 생화학적 (음의) 되먹임 회로들이 형성하는 준안정적 상태'로서 편의상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자가 조절되는 준안정적 상태가 언제나 고정적인 것은 아니며 특정한 목적(궁극적으로는 생명 유지 및 재생산)을 향해 동역학적인 재조정 과정을 거치게끔 유지된다는 것이 사이버네틱스에서 도출되는 메시지이다[9]. 사이버네틱스 이론에 잠재되어 있는 이러한 목적론(teleology)적 관점은 매우 독특한 요소로서, 특히 인공지능 기반 로보틱스 응용에서는 인지-행동 기능과 결합된 자가조절 시스템이 충분히 높은 자체 복잡도를 갖게 되었을 때, 설계자에 의해 당초 의도되지 않았던 '목적'이 시스템으로부터 자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게 된다[10].
그림 2: 사이버네틱스의 어원 및 역사적 전개 과정[11]. 사이버네틱스라는 단어의 기원은 플라톤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앙드레-마리 앙페르(André-Marie Ampère)의 『과학철학 소론(Essai sur la philosophie des sciences)』에서 "cybernétique"로 처음 도입되었다. 사이버네틱스의 흐름은 20세기 중후반의 1차 및 2차 사이버네틱스로 크게 나뉘고, 3차 및 4차 사이버네틱스의 정의에 대해서는 아직 일반적인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Image source: Advanced Intelligent Systems.
한편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는 어떤 방식으로든 외부 환경을 인지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반응을 취함으로써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인식(cognition) 과정은 환경으로부터 주어지는 자극과 유기체의 자가조절을 연결시켜 주는 생명 현상의 핵심 고리라고 할 수 있다[12]. 1970년대 등장한 차세대("제2차") 사이버네틱스의 주된 흐름 중 하나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뇌신경계의 인지 과정에 대한 전격적인 재고찰이었다. 여기서 2차 사이버네틱스의 개척자들의 결론("인식 활동이 세계를 산출한다"[13])은 다소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또는 쟝 피아제(Jean Piaget)의 인식론에 근접하게 되는데 이를 넓은 의미에서의 구성주의(constructivism) 혹은 급진적 구성주의로 부를 수 있다.
사이버네틱스에서는 생명체를 단순히 외부 자극에 의해 반응을 산출해 내는 '블랙박스'로서 간주하는 관점을 거부한다. 움베르토 마투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견해에 따르면[13], 유기체와 환경의 상호작용에서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결정짓는 것은 상호작용에 의한 섭동(perturbation) 자체가 아니라 유기체 및 환경 자체의 위계적 구조들이다. 이러한 방식의 상호작용을 '구조 접속'이라 일컫는다면, 살아있다는 것, 즉 구조 접속을 끊임없이 유지시키는 과정의 일체를 인식 활동이라고 일반화시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감각-운동-신경계가 구성하는 닫힌 회로에 외부 환경과의 재귀적 구조 접속이 함께 얽혀 인지적 순환의 역동성을 만들어 낸다. 이론생물학자 로버트 로젠(Robert Rosen)이 지적한 대로, "생물학에서 중요한 점은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시스템들이 서로를 바라보느냐 하는 것"일 수 있다[14].
그림 3: 사이버네틱스의 개념과 인식론은 현대 예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한 예로 백남준은 인간-기계 및 예술-기술 사이의 다양한 조합의 관계 형성에 주목했고, 사이버네틱스의 철학을 미디어 아트(media art)로서 구현, 재해석하고자 하였다. Image sources: Nature(nature.com) and Nam June Paik Art Center(e-flux).
참고문헌
1. S. Beer, What is cybernetics? Kybernetes 31, 209-219 (2002)
2. F. Müller, State-of-the-art in ecosystem theory. Ecological Modelling 100, 135-161 (1997)
3. N. Wiener, Cybernetics: Or the Control and Communication in the Animal and the Machine (MIT Press, Cambridge, MA, 1948)
4. J. L. van Hemmen, Reflections on biological cybernetics: past, present, prospects. Biological Cybernetics 112, 1-5 (2018)
5. M. Drack, D. Pouvreau, On the history of Ludwig von Bertalanffy’s “General Systemology”, and on its relationship to cybernetics – part III: convergences and divergences. International Journal of General Systems 44, 523-571 (2015)
6. P. J. Thomas, M. Olufsen, R. Sepulchre, P. A. Iglesias, A. Ijspeert, M. Srinivasan, Control theory in biology and medicine. Biological Cybernetics 113, 1-6 (2019)
7. M. D. McDonnell, S. Ikeda, J. H. Manton, An introductory review of information theory in the context of computational neuroscience. Biological Cybernetics 105, 55-70 (2011)
8. O. Fricke, G. Lehmkuhl, E. Schoenau, The principle of regulation in biology - from bone to eating behavior. Experimental and Clinical Endocrinology & Diabetes 114, 197-203 (2006)
9. P. A. Corning, Evolution ‘on purpose’: how behaviour has shaped the evolutionary process. Biological Journal of the Linnean Society 112, 242-260 (2014)
10. S. J. Nasuto, Y. Hayashi, Anticipation: beyond synthetic biology and cognitive robotics. BioSystems 148, 22-31 (2016)
11. A. Chiolerio, Liquid cybernetic systems: the fourth-order cybernetics. Advanced Intelligent Systems 2, 2000120 (2020)
12. L. Bich, A. Moreno, The role of regulation in the origin and synthetic modelling of minimal cognition. BioSystems 148, 12-21 (2016)
13. H. Maturana, F. Varela, Der Baum der Erkenntnis. Die biologischen Wurzeln des menschlichen Erkennens (Scherz Verlag, Frankfurt, 1984); 움베르또 마뚜라나, 프란시스코 바렐라, 『앎의 나무 : 인간 인지능력의 생물학적 뿌리』, 최호영 역 (갈무리, 서울, 2007)
14. P. Buckley, F. D. Peat, A Question of Physics: Conversations in Physics and Biology (University of Toronto Press, Toronto, ON, 1979); 폴 벅클리, 데이비드 피이트, 『물리학의 근본 문제들』, 이호연, 조혁, 이해심, 홍욱희 역 (범양사, 서울, 1988)
이론으로 조망하는 생명현상 성백경 (KIST 유럽연구소)
물리학을 전공한 수리생물학 연구자입니다. 정교하고 복잡한 낱낱의 생명 현상을 때로는 멀리서, 전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문적인 연구 내용을 다루기보다는, 교양인의 관점에서 비형식적인 에세이의 성격을 갖는 연재를 시도해 보고자 합...
생명과학 분도78 (2022-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