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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과학기술계에서도 느는 추세지만 현장 경험과 연구 지속성이 과학자에게 중요한 만큼 자녀를 위해 연구를 멈추는 건 쉽지 않습니다. 연구의 꽃을 피워야 하는 시기인 30, 40대 아빠 과학자에게 육아휴직은 어려운 결정입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도 예외여서는 안됩니다. 장기적으로 일과 가정이 양립해야 인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동아사이언스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과 함께 육아휴직, 단축근무 등 육아지원 제도를 활용하는 과학자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남성 과학자가 겪는 현실 육아, 필요한 육아지원 제도, 아빠가 되면서 달라진 삶과 일에 대한 태도 등을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생생히 들여다 봅니다. 과학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육아'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합리적, 현실적인 방안을 함께 고민해 보기를 기대합니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남자 직원이 육아 휴직을 자유롭게 쓰는 분위기는 아녔는데 지금은 달라요. 애를 키워본 사람들끼리 육아의 어려움을 공감하며 휴직을 쓴 직원 일을 분담하고 있어요. 이런 분위기 덕분에 둘째가 태어난 뒤 휴직을 썼고 아이의 성장도 지켜보며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5살 딸과 생후 10개월 아들 두 자녀를 둔 모문권 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기술원은 육아휴직 6개월 경험을 이처럼 말했다.
모 연구기술원은 안전성평가연구소 분석센터에서 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HPLC)를 이용해 조제물을 분석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비임상시험에 사용되는 시험물질을 분석하고 검증하며 동물에서 나온 생체시료도 관리하고 있다.
연구소에서 이 일을 10년간 해왔는데 주변 동료들도 근속 연수가 긴 편이어서 서로에 대한 업무 이해도가 높다. 서로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 원활한 편이기 때문에 ‘육아하는 아빠’로 6개월 보낼 수 있었다. 6개월 휴직을 신청했을 땐 오히려 상사로부터 왜 1년 휴직을 안 쓰냐는 얘기까지 들었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남자가 육아 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는 아녔어요. 아기가 아픈 상황일 땐 썼지만 그렇지 않으면 남자 직원이 쓰기엔 좀 껄끄러웠는데 최근 몇 년간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저희 팀 8명 중 6명이 실무자인데 그 중 3명이 한꺼번에 휴직을 사용해 나머지 3명이 실험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다들 애를 키워본 사람들이라 육아의 어려움을 아니까 6명이 하던 걸 3명이 짊어지고 했죠.”
휴직을 쓴 직원의 공백을 남은 직원들이 메워야 했지만 자신에게도 육아 휴직 타이밍이 돌아온다는 점을 생각해 ‘품앗이’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휴직을 하는 동안에는 직장에 있었으면 놓쳤을 아이의 성장 과정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모 연구기술원은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부쩍 크는데 첫째 때는 일 때문에 아기의 성장 과정을 제대로 못 봤다”며 “둘째는 목을 가누거나 몸을 뒤집거나 하는 것들을 직접 봤다.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아빠들은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어서 신기하면서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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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모 연구기술원과의 일문일답.
Q. 육아 휴직을 못 쓴 첫째 땐 휴직을 쓴 둘째 때보다 양육 강도가 높았나.
"첫째 때는 육아 단축 근무 제도를 활용해 하루 6시간만 근무를 했어요. 8시간 근무를 6시간 동안 끝내야 하니까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바빴다. 그래도 빠르게 일을 마치고 퇴근해서 가정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이 많은 날엔 야근도 했지만 보통 6시간 안에 전부 일을 마치려고 했다. 우리 연구소는 휴가를 30분 단위로 쪼개서 낼 수도 있어 그것도 유용했다. 아이의 등원이 좀 늦어질 것 같으면 30분 휴가를 내고 좀 늦게 출근하기도 한다.
단축 근무나 쪼개 쓸 수 있는 휴가가 있어 좋지만 아내가 첫째를 낳을 때 한 달 일찍 낳는 조산을 경험했고 몸도 좀 안 좋아져서 둘째 출산 후엔 더 많이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휴직을 결심했다. 양가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아내 혼자 많이 고생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Q. 첫째 때 아내가 혼자 했던 일을 둘째 땐 함께 했을 거 같은데 육아 휴직 때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냈나.
"아내가 새벽부터 수유를 하고 나면 트림시키는 일은 제가 했고 아이가 깼을 때 다시 재우는 일도 제가 했다. 첫째 등원시키는 일도 했고요. 아내가 산후조리를 해야 하니까 아이를 안아주고 밥 먹이고 옷을 입히는 일은 물론 집안일도 많이 맡아 했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가 질투한다. 그런 부분도 신경을 많이 써주려고 했다. 둘째는 귀가 접힌 상태로 태어나 교정 치료를 하러 병원에 자주 다녔다. 아내 혼자 이 모든 걸 감당했다면 산후 우울증이 왔을 수도 있을 거 같다.
첫째 땐 아내가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몰랐는데 휴직을 쓰고 둘째를 돌봐보니 왜 항상 힘들어했는지 알게 됐다. 낮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보채는 아이를 달래고 해야 할 집안일도 계속 생겼다.
주말엔 아이들과 더 열심히 놀아주려고 했던 거 같다. 대전에 과학관, 박물관, 야외 공원이 많으니 이런 곳에 데려가고 대전을 벗어나 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평일엔 첫째를 등원시키고 둘째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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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휴직 기간에도 연구를 완전히 놓기는 어려웠을 거 같은데.
"연구소에서 업무 관련 연락을 거의 안 했다. 아주 가끔 모르는 부분이 있을 땐 전화를 줬지만 육아를 방해받는 수준은 아니었다. 6개월은 업무적인 감각을 잃을 정도로 긴 시간 또한 아녔던 거 같다. 복직 후 조금 바뀐 부분은 있었지만 빨리 적응하려고 노력했고 주변에서도 도움을 많이 줘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예전엔 가정보다 일이 우선이고 승진이나 출세 욕심을 낸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큰 욕심 없이 성실하게 일하면서 가정을 돌보는 데 비중을 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복귀 후에는 일에 소홀하지 않도록 선을 지키고 있고 휴직 기간에 가족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Q. 요즘 자녀가 둘인 가정이 많지 않은데 2명을 키우기 힘들진 않나.
"둘은 하나랑 확실히 다르다는 말은 그전부터 들어왔다.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라 3이라고들 했는데 그걸 진짜 실감한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가 유아퇴행을 겪으면서 요구사항이 많아진다. 갑자기 젖병이나 쪽쪽이를 찾기도 하고 안아 달라고도 하는데 이걸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했다. 다행히 휴직 기간에 아내와 이 부분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첫째를 키운 경험치가 있으니 둘째를 키울 때 더 수월하거나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Q. 육아 휴직을 고민하는 아빠 과학자들에겐 휴직을 권장할 생각인가.
"아이가 어린 시절은 그때뿐이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첫째 때는 휴직을 안 써서 볼 수 없었던 아이의 성장 과정을 둘째 때는 하나하나 볼 수 있었다. 특히 생후 36개월까지는 부모와의 관계 형성에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들었다. 그 기간 충분히 교감하면 나중에 아이의 성장 과정에 분명히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믿는다.
아이와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고 아내의 몸조리도 돕고 가족 관계도 돈독해질 수 있다면 인생에서 6개월의 시간을 휴직에 할애하는 건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짧으면 3개월, 가능하다면 1년을 쓰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나중에 육아 휴직을 더 낼 생각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아이가 12시에 하교해 돌아오니 돌봄이 필요하다. 맞벌이 부부 입장에선 아이를 학원 2~3곳에 보내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아이가 부모 퇴근 시간에 얼추 맞춰 돌아오기 때문이다. 적어도 방학 때만이라도 쓰면 어떨까 생각한다."
동아사이언스(dongascience.com)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2024.06.20 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