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나. 이 날이 되면 하버드, MIT, 옥스퍼드 등 굴지의 명문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모여 기념행사를 벌인다. 참석자들은 각종 파이와 파인애플을 먹으며 노래를 부른다.
두 번째 힌트. 해마다 서울 광신고에서는 이 날이 되면 각 반의 담임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초코파이를 나눠준다. 이 날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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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는 상수이면서도 특별한 규칙성 없이 소수점 이하로 영원히 진행되는 특유의 신비함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수학자들을 매료시켰다. | 이쯤 되면 눈치 빠른 독자들은 다 알아차릴 것이다. 오늘 3월 14일은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화이트데이’이자 원주율 π를 기념하는 ‘파이데이’이다.
3월 14일이 파이데이가 된 것은 원주율을 뜻하는 기호 파이(π)가 3.14159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과학관에서는 파이데이 기념행사를 정확히 3월 14일 1시 59분에 맞춰 진행한다.
이날 행사 참가자들은 3분 14초 동안 묵상을 한 뒤, “해피 파이 데이 투유(Happy pi day to you)”라는 파이데이 송을 부르며 파이를 먹는다. 이 밖에도 각국에서 파이 암기 대회, 파이 퀴즈 등을 진행하며 소수점 행렬을 암송한다.
파이의 비밀 밝혀내기 위한 노력들
파이는 끝없이 이어지는 비순환소수로, 원 둘레를 원의 지름의 길이로 나눈 값을 말한다. 이는 상수이면서도 특별한 규칙성 없이 소수점 이하로 영원히 진행되는 특유의 신비함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수학자들을 매료시켰다.
파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2000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당시 쓰여진 ‘테머 폐허의 린드 파피루스’에 원주율이 3.16으로 계산된 흔적이 남아있다. 이어 그리스·중국·인도·페르시아의 학자들이 파이의 정확한 값을 구하는 작업에 뛰어들었다.
이중 파이를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계산한 사람이 바로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이다. 기원전 225년 아르키메데스는 하나의 원에 내접·외접하는 각각의 정96각형을 그리고, 그 길이를 쟀다. 당시 많은 수학자들은 원의 내접 정다각형 또는 외접 정다각형의 둘레의 길이로 근사값을 대체했다.
아르키메데스는 측정 결과 원주율이 223/71과 22/7 사이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는데, 이는 소수로 3.140845…와 3.142857…사이를 뜻한다. 우리가 원주율로 알고 있는 3.14라는 수치는 이때 처음 나온 것이다.
이후 많은 수학자들이 파이의 분석에 매달렸고, 1882년 파이가 초월적인 수라는 사실이 독일 수학자 페르디난트 폰 린데만(Ferdinand von Lindemann)에 의해 밝혀지게 됐다. 이는 “원주율이 정수(整數)를 계수로 하는 대수방정식의 근이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파이의 정확한 수치를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이제 수학자들의 관심은 이 초월적인 수를 “소수점 이하 몇 자리까지 구하느냐”로 넘어갔다. 그리고 컴퓨터라는 첨단기술의 힘을 빌린 이 ‘소수점 이하 원주율 구하기’ 경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이 부분에서 최고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일본의 곤도 시게루라는 회사원이다. 교도 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그는 작년 8월 자택에서 본인이 직접 제작한 PC로 원주율 소수점 이하 5조자리까지 계산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2009년 프랑스의 프로그래머 파브리스 벨라르(Fabrice Bellard)가 기록한 2조7천억 자리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곤도씨가 자비 2천100만원을 투입해 만든 PC가 5조자리를 계산하기 위해 걸린 시간은 총 90일 7시간이었다. 특히 “가장 큰 어려움은 매달 2만 엔 이상 나오는 전기세였다”는 부인 사치코씨의 말로 미루어보면 이 원주율 계산이 얼마나 많은 계산을 요하는 작업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컴퓨터가 뿜어내는 열기 역시 대단했는데, 방안 온도가 40°C에 달했다고 한다.
무한하고 새롭지만 변하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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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도 파이데이 관련 행사가 늘고 있다. | 이 외에도 파이는 그간 많은 부문에서 화제가 됐다. 2005년 8월 구글은 자신들의 주식 공모에 원주율을 도입해 많은 화제를 낳았다. 정확하게 14,159,265주만 신규 발행한 것. 여기에 3만 붙이면 우리에게 익숙한 3.14159265가 된다. 주식 발행 숫자를 원주율의 소수점 8자리와 일치시킨 것이다.
파이의 무한성은 그 상징성이 크다. 파이를 활용한 구글의 유쾌한 주식 발행에는 구글 검색 엔진의 무한대성을 강조하고 싶은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
작년 9월에는 원주율 13자리를 치면 외계인들에게 지구를 홍보하는 사이트가 있음이 방송에 의해 밝혀져 화제가 됐다. 주소가 http://3.1415926535898.com/인 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정체불명의 코드음과 함께 알 수 없는 형상들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우주인에게 보내는 지구 초대장 및 지구에 거주하고 싶은 외계인을 위한 구인 정보 등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에서도 파이데이 관련 행사가 점차 늘면서 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파이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영원하면서도 항상 새로운, 그러나 변하지 않는’ 특성이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이기 때문이 아닐까. 마침 3월 14일은 ‘파이데이’이자 ‘발렌타인데이’이기도 하다. 이번 14일에는 서로에게 ‘영원하면서도 항상 새로운, 그러나 변하지 않는’ 파이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