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단번에, 싱가포르는 점진적… 위드코로나 성패 갈랐다
[‘위드 코로나’ 택한 나라들은 지금…] ② 영국과 싱가포르 엇갈린 선택
완화 속도-백신 접종률 희비 갈라… 영국 위중증환자·사망자 배 증가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면서 봉쇄 전략의 한계를 느낀 일부 국가는 코로나19와의 공존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위드 코로나’에 돌입한 각국의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영국과 이스라엘에선 새로운 ‘n차’ 팬데믹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는 반면 싱가포르는 상황이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모습이다. 이들의 운명을 가른 건 방역 완화 속도와 백신 접종률 수준으로 분석된다.
영국·이스라엘 글쎄, 싱가포르 안정적
위드 코로나는 백신 접종으로 인해 치명률이 낮아진 만큼 일일 발생 확진자 수에 연연하지 않고 사망자와 위중증 환자 중심으로 방역체계를 전환하자는 주장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영국과 이스라엘은 바뀐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일보가 30일 영국 정부 공식 통계를 바탕으로 ‘자유의 날’을 선언한 지난달 19일 이후 상황을 분석한 결과 영국의 위중증 환자는 611명에서 지난 26일 982명으로 6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1주일 평균 사망자는 55.3명에서 113.9명으로 배 이상 증가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사프론 코데리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중환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최근 감염과 입원이 모두 증가하면서 환자들이 적절한 시기에 치료받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때 코로나19 청정국으로 불리며 팬데믹 시대의 모범적인 사례로 소개됐던 이스라엘은 더 극적인 지표를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에선 지난 26일 1만446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사상 최대치를 갈아 치웠다. 국제 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1주일 평균 사망자는 실내 마스크 착용 지침까지 해제한 지난 6월 15일 1.4명에서 지난 26일 26.4명으로 19배 폭증했고 중환자도 20명에서 165명으로 8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싱가포르는 코로나19 상황이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모양새다. 싱가포르 보건부 통계에 따르면 당국이 방역을 완화한 지난 10일 기준 입원 중환자는 11명이었으나 29일 기준 중환자는 오히려 6명으로 줄었다. 사망자는 지난 20일간 13명 증가해 하루에 1명꼴도 되지 않는다. 치명률은 0.08%로 소폭 증가했지만 여전히 전문가들이 말하는 독감 치명률 범위(0.03~0.1%)를 벗어나지 않는다. 1주일 평균 확진자도 70명 안팎으로 방역 완화 시점과 유사한 수준이다. 아직 방역을 완화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방역 상황만 따졌을 때 현재까지 싱가포르의 위드 코로나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봉쇄 일시 해제 vs 점진적 방역 완화
이 같은 차이를 만든 건 개방 속도다. 영국과 이스라엘은 단번에 마스크를 벗어던졌지만 싱가포르는 방역 상황이 긍정적이었는데도 마스크 착용 의무를 유지하는 등 매우 신중한 접근법을 취했다.
영국은 자유의 날을 기점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모임인원 제한 등 사실상 대부분의 방역조치를 해제했다.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권고를 내리긴 했지만 의무가 아니어서 마스크를 꾸준히 착용하는 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스포츠 경기장의 관중 입장도 100%까지 허용했다.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 결승전이 열린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는 6만4000여명의 노마스크 인파가 몰리면서 총 9402명의 확진자가 나오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방역과 일상의 ‘균형’을 맞추는 단계적 개방 전략을 마련했다. 당국은 5인 사적모임을 허용하고 500인 이상의 종교·체육·문화행사도 허가하는 등 봉쇄 강도를 낮췄지만 여전히 마스크 착용 의무와 영업시간 제한은 유지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백신 접종률 80%를 달성한 후에야 추가적인 완화 방침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옹예쿵 싱가포르 보건장관은 “(새 로드맵은) 영국의 ‘빅뱅’과 같은 봉쇄 해제와 상당히 다르다”며 “생명과 우리 일상을 저울질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로렌스 웡 재무장관 역시 싱가포르 매체 스트레이트타임스에서 “많은 서구 국가들이 해온 방식으로 방역을 완화하길 원치 않는다”며 “이는 쉽게 입원율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접종률 전 인구 70% 넘어야 의미 있어
봉쇄 완화 조치를 내린 지난 10일 싱가포르의 백신 완전접종률은 67%로 거의 70%에 육박했다. 그로부터 불과 20여일 뒤인 29일 싱가포르 보건부는 백신 접종률이 80%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인구 500만명 이상 국가 중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포천지는 싱가포르의 높은 백신 접종률이 일상을 천천히 회복하는 바탕이라고 분석했다. 봉쇄 해제 시점의 백신 접종률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영국은 봉쇄 해제 당시 인구의 53%가 백신 완전 접종을 마쳤고 이스라엘도 마스크 지침 해제 당시 백신 완전접종률이 58.6%로 60% 이하였다. 전문가들은 전염성이 강한 델타 변이의 확산과 맞물린 탓에 영국과 이스라엘의 백신 접종률이 충분치 않다고 분석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영국은 백신 완전접종률이 충분히 올라오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빨리 방역을 완화하면서 지금의 결과가 나왔다”며 “기본적으로 전 인구의 70% 수준에서 위드 코로나를 서서히 시작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영국과 이스라엘은 상대적으로 백신 접종을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백신의 면역 효과가 감소한 영향이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국민일보 (kmib.co.kr) 임송수 정우진 기자 songsta@kmib.co.kr 입력 : 2021-08-31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