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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에 약한 백신입자, 말랑말랑 ‘겔’로 감싸 폭염에도 상온보관 OK

산포로 2022. 8. 11. 09:09

열에 약한 백신입자, 말랑말랑 ‘겔’로 감싸 폭염에도 상온보관 OK

 

‘섭씨 65도까지 변질 없음’ 입증
의료 인프라 부족한 곳에서도
백신 보급률 높일 것으로 기대

 

하이드로겔 그물 구조에 백신 입자가 달라붙은 모습. 백신 입자는 열을 받으면 서로 달라붙어 변질되지만 하이드로겔 그물에서는 서로 거리를 유지해 그런 문제가 없다./Science Advances

 

코로나 백신을 새로운 보호 물질로 감싸 무더위에도 상온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상용화되면 냉장 시설 같은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서 백신 보급률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의 마크 티비트 교수와 미국 나놀리 바이오사이언스 공동 연구진은 “백신이나 진단 시약을 보호 물질로 감싸 섭씨 65도까지 견딜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지난 6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밝혔다.

 

백신은 냉장 보관이 필수이다.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단백질이 열에 약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백신 속 단백질은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서로 결합한다”며 “삶은 달걀을 되돌릴 수 없듯 한번 변질한 백신은 온도를 낮춰도 회복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백신을 바꾸는 대신 하이드로겔이라는 보호 물질로 감싸 열을 견디도록 했다. 하이드로겔은 묵이나 젤리처럼 물을 많이 함유해 말랑말랑한 물질이다. 이번 하이드로겔은 고분자 물질인 폴리에틸렌 글리콜(PEG)이 그물처럼 연결된 형태다.

 

백신에 열을 가하면 단백질이 서로 달라붙어 변성되지만 하이드로겔에 넣으면 마치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단백질이 그물 구조에서 서로 분리된 상태를 유지해 문제가 없다. 연구진은 “하이드로겔은 단백질을 분리 보관하는 일종의 분자 타파웨어(반찬 통)와 같다”고 설명했다.

 

백신이나 진단 시약 속 단백질은 열을 받으면 서로 뭉쳐 변질된다(위). 하지만 하이드로겔로 감싸면 단백질들이 그물 구조에 각각 달라붙어 서로 결합하지 않아 변질되지 않는다(아래)./Science Advances

 

백신이나 진단용 단백질, 의료용 바이러스는 보통 2~8도로 냉장 보관해야 한다. 연구진은 독감 백신과 진단용 효소 단백질,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 백신에 쓰인 아데노바이러스를 각각 하이드로겔로 감싸면 섭씨 25~65도까지 견디는 것을 확인했다. 나중에 백신을 접종할 때 당분이 포함된 용액에 넣으면 다시 단백질이 하이드로겔 그물에서 떨어진다.

 

티비트 교수 연구진은 이번 하이드로겔 기술은 백신의 생존 능력을 높일 뿐 아니라 의약품 콜드 체인(cold chain·냉장 유통 시스템)에 들어가는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기대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2020년에 전 세계 콜드 체인 서비스 시장 규모는 172억달러(약 22조4400억원)나 됐다. 연구진은 “백신 유통과 접종 비용은 콜드 체인 때문에 생산 비용을 넘는 경우가 많다”며 “하이드로겔 캡슐 기술은 콜드 체인 비용을 백신 생산으로 돌려 더 많은 생명을 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 백신에 하이드로겔 캡슐 기술이 적용되려면 안전성 연구를 더 해야 하고 임상 시험도 거쳐야 한다. 연구진은 대신 열에 민감한 암 연구용 효소나 실험용 단백질은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chosun.com)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22.08.10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