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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와 연구행정가의 효과적인 소통 방법] <5회> 이메일

산포로 2024. 10. 11. 10:13

[연구자와 연구행정가의 효과적인 소통 방법] <5회> 이메일

 

ⓒ Unsplash+

 

연구자 A는 연구행정담당자 B에게 단단히 화가 나 있다. 연구자 A의 이메일 내용으로 보건대, 연구행정담당자 B는 연구비 관리 업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예산협의과정에서 추가 증빙 자료를 ‘쓸데없이’ 요구했고, 근거가 되는 규정이나 매뉴얼의 해당 조항을 알려주지도 않고, ‘성의 없이’ 규정 전체내용을 파일로 첨부하며, 알아서 찾아 읽어보라 한다. 연구행정담당자 B가 이런 식으로, 연구를 지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연구를 방해하는 식의, 문제 있는 응대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벌써 수 회째 반복되고 있다. 이메일 본문 글씨는 검정/파랑/빨간 색이 섞여있는데, 시종일관 연구행정담당자 B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시정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이메일 작성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아뿔싸, 담당자의 이메일 주소는 참조란에 있고, 수신란에는 연구행정부서의 부서장인 내 이메일 주소가 보인다. 그제야 [회신요망]....으로 시작하는 이메일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회신’을 ‘요망’하다니, 이메일에는 으레 답장을 하는 것이건만, 회신이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니 괜스레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연구행정의 중요한 분야 중 하나인, ‘컴플레인’ 관리 업무 하나 추가다. 나는 우선 담당자와의 면담을 통해 사태를 파악한다. 담당자는 펄쩍 뛰며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숙한 점은 있었겠지만, 이전 담당자에게서 인수인계받은 대로, 규정에 맞게, 추가로 필요한 자료를 요청했고, 근거가 되는 규정 조항을 알려드렸으며, 규정전체를 파일로 첨부한 것은 오히려 더 상세히 안내하려는 선의에서 그런 것이라며, 황당해한다. 이메일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나는 곧바로 연구자 A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은 상대방은 놀란 눈치다. 몸을 뒤로 물리는 것이 보이는 듯하다. 

 

이메일로 답변을 해주길 요청했는데 전화를 받아서 당황스럽단다, 이메일로 주고받아야 ‘증거’가 남는데, 이런 식이면 좀 곤란하단다. 글로 사고가 났으니, 말로 보다 직접적으로, 사과도 하고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어보고자 의도했던 나는 당황한다. 서둘러 전화를 끊으려 하는데, 이번에는 상대방이 그런 나를 붙들고 말을 늘어놓는다. 기왕 통화를 하게 됐으니 말인데, 부서장으로서 부서의 직원들 업무분장은 적절히 잘한 것이냐, 최근에 업무담당자 변경은 왜 하였느냐, 직원들 업무 감독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이냐, 팀 운영 방향이 그게 맞는 것이냐, 질타에 가까운 질문들이 쏟아진다. 다소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만, 직원 출산휴가 등으로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 등등의 소소한 변명과 함께 최선을 다해 성실히 답변을 한다. 마음을 다한 정성스러운 응대는 결국 상대방의 화를 누그러뜨린다.

 

때는 이십여 년 전 종이문서, 즉 공문의 시대. 부서 간 업무 협조 요청은 당연히 공문으로 보내고, 답변 또한 공문으로 받는다. 공문은 상단에 펀치로 구멍을 내어, 업무별로 구분된 노란색 문서보관파일에 시간 순으로 철하여 문서장에 보관한다. 공문 첫 페이지 상단에는 담당자부터 결재권자 서명란이 3~4개 모여 있고, 보다 큰 박스로 만들어진 최종결재권자의 서명란은 최상단에 위치한다. 정중하게 잘 쓰인 공문은 협조를 불러오고, 허술하게 성의 없이 쓰인 공문은 혐오를 불러온다. 부서 간 갈등의 상황 속에서, 더러 누군가가 자신의 우위를 강조할 때면, 깊숙한 서랍장에서 중요한 공문을 내보이며, 그야말로 종이문서 한 장을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기도 한다. 

 

어느덧 이제는 전자결재 및 전자문서시스템이 보편화되고, 공문은 문서파일, 문서철, 펀치기 등과 함께 사라진 지 오래다. 이메일의 위상은 거의 예전 공문 수준에 가깝다. 수신했으나 읽지 않은 이메일은 화면에 숫자로, 색깔로 표시되어, 수신자가 속히 확인하기를 독촉한다. 이메일은 내용과 함께 수발신 시각까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중요한 ‘증거’로서 손색이 없다. 또한 작성자에 따라 문어체보다는 구어체에 가까운 언어를, 때론 그 절반씩을 섞어 쓰기 때문에 유연하다. 상대방과 가볍게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 짧다, 어찌 이런 표현을 하느냐, 등 자칫 문맥을 신경 써서 쓰지 않으면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단점도 있다. 

 

예전 담당자 시절, 가을 시즌, 국정감사에, 계획서 접수 마감에, 사업계획수립에, 그야말로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연구자 C로부터 받은 이메일 하나가 기억난다. 본문 첫 줄이 이렇게 시작한다. ‘연일 계속되는 격무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큰 의미 없이 상투어로 그렇게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으나, 순간 나는 격하게 감동한다. 이어지는 본문 내용을 보니 괜히 하는 말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어투는 시종일관 예의 바르고, 요청은 정중하며, 상대방을 배려한다. 정말 연일 격무를 계속하고 있던 나는, 그 이메일 한통에 ‘누군가 내 고생을 알아주는구나.’ 생각이 들어, 순간 스트레스가 스르르 녹아 없어진다. 한 마디 말로 천 냥 빚을 갚는 법이다.

 

”세포도 그 자체로는 생물의 복잡성을 설명하기에는 불완전하다. 세포-세포 상호작용, 세포-환경 상호작용도 필요하다. 즉 세포학에 전체론을 끌어들여야 한다... 나는 때때로 질병이 세포들 사이의 사회계약 위반이라는 생각이 든다.“*

 

암을 치료하고 연구하는 의사이자, 대중과의 소통에도 재능이 있는 싯타르타 무케르지는 세포를 주제로 한 최근의 저서에서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세포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더 나은 혜택을 입고 공진화하기 위해서는 하나에서 다수로 나아가며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딱딱한 공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적인 편지도 아닌, 공과 사의 경계 어디쯤에 존재하는 듯한 이메일, 다시 한번 주목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소통의 매개체이다.

 

아침에 출근하니 연구자 A에게서 [회신요망]... 이메일이 한 통 또 도착해 있다. 이번에도 누군가의 업무처리에, 그 사람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자신의 합리적인 의견에 동의를 구하고, 본인이 희망하는 대로 조치해 주기를 바라는 내용일 것이다.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고, 연구를 일부러 방해할 생각도 없으며, 퇴근 후 좋아하는 소설 읽기를 고대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 이메일을 열어보기 전부터 이미, 발신자가 원하는 대로 기꺼이 조치를 취할 마음을 먹는다. 어느 정도의 수고로움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혹여 누군가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타 부서 협력이 필요한 사항이라면 조치하기 힘든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쓰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고마워할 것이고, 보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메일 제목을 본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두근거리기 시작한 가슴을 진정시키고, 용기를 내어 제목을 클. 릭. 한. 다.

※ 참고

 

* <세포의 노래> 싯타르타 무케르지 지음, 이한음 옮김, 까치글방, p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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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바이오행정가) 등록 2024.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