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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와 연구행정가의 효과적인 소통 방법] <3회> 회식

산포로 2024. 9. 13. 10:08

[연구자와 연구행정가의 효과적인 소통 방법] <3회> 회식

 

ⓒ Unsplash+

 

가운데 기둥도 없이 탁 트인 대형 실내 홀을 갖춘 한옥 식당. 최근 이룬 성과에 대해 기관장이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통째로 예약한 회식장소이다. 누구나 신발은 벗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마룻바닥에 놓인 상 앞에 앉아서 식사하도록 되어 있는 우리나라 전통식 구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앉아 있기에 누군가 한 명이 일어서면 그는 눈에 잘 띄고, 그가 말을 하면 그 목소리는 홀 전체를 울려 잘 들리게 되어있다. 이런 디테일 한 부분들까지 신경 써서 예약을 잘했다고, 회식 주관부서 담당자는 칭찬을 들을 만하다. 필수 근무인력을 제외하고 약 200명 정도가 모인다. 아마도 몇몇 용기 있는 사람은 저녁 시간 선약이 있어 참석을 못하지만, 그 인원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므로, 담당자가 꼭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아니다. 도착해 보니 이미 수많은 테이블에 기본 음식과 수저, 젓가락이 놓여 있다. 곧이어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반찬이 나와 식탁의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보기에도 좋은 다양한 색감과 질감의 반찬들이 그 주위를 둘러싼다. 풍성하게 잘 차려진 한상 컨셉의 한정식이다. 나도 모르게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이것저것 열심히 입으로 가져간다.

 

‘아니, 너희들 뭐 하는 거니? 너희들이 지금 여기 앉아서 밥 먹을 군번이니? 주변 테이블 보면서 빈 반찬접시 있으면, 새것 가져다 나르고 부지런히 서빙을 해야지, 여기 인원이 많아서 식당직원들로는 제대로 서빙 안 되는 거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앉아서 먹기만 하면 어떡해?’ 말에 불과했지만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다. 목으로 넘어가던 음식물은 순간 멈추고, 이내 몸이 화끈 달아오른다. 그는 행정 분야 선배이자 회식 주관부서의 장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업무의 연장인 회식을 철저히 계획대로, 즉 기관장이 흡족해할 수 있도록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입장에서는 나같이 눈치 없는 신입 후배직원들은 그런 꾸지람을 들어도 싸다. 평소 연구자들로부터 좋은 소리 못 들으며 업무에서도 헤매던 나는, 아무리 그렇더라도 밥상머리에서, 그런 말을 듣자 서러움이 복받쳐 오른다. 회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번엔 으레 그렇듯 삼겹살에 소주다. 업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연구자들과도 어느 정도 친분이 쌓여, 이번 회식자리는 왠지 마음이 좀 가볍다. 내친김에 나는 연구행정가로서 연구자들과 좀 더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비슷한 사람들 속에 섞여 있음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위안을 뿌리치고, 과감히 연구자들 테이블에 낀다. ‘박사님, 요즘 OOO 연구 잘 돼가시나요?’ 갑자기 소주잔이 날아온다. 가까스로 피한다. 얼마 전 연구과제 평가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그의 핵심 연구주제 키워드를, 기특하게도 순간 기억해 내어 인용함으로써 그와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이내 무색해진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돌발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한다. 고기 굽는 뜨거운 숯불에, 소주로 인한 취기까지 더해져 몸에서는 땀이 줄기차게 흐른다. 어찌 마무리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몸과 마음이 애써 그날의 자세한 기억을 지워버린 듯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당시 하던 연구에 부침이 있어 논문실적이 미진한 상황이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전 연구비도 삭감당해 그야말로 말이 아닌 처지에 있었는데, 하필 그때 내가 눈치도 없이 그런 무모한 안부 인사 테러(?)를 하고 만 것이다. 회식자리, 마음은 가볍게, 말은 주의 깊게.

 

한껏 기대에 부풀어, 연구행정가로서 미국으로 3개월 단기연수를 떠난다. 떠나기 며칠 전, 연구자 A로부터 전화가 온다. 연수 떠나게 된 것을 축하한다며 이미 그곳 경험이 있는 본인과 몇몇 연구자들이 시간을 내니 함께 점심을 먹자고 한다. 미국 생활에 대한 이러저러한 유용한 정보를 얻을 기회다. 좀 멋쩍지만, 내가 주인공이 되는 가벼운 점심회식 자리다. 메뉴는 곧 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하게 될 사람을 특별히 염두에 두고 정한 삼계탕. 소심하게 닭살을 뜯는 중에 고마운 말을 듣는다. 만만치 않은 요금이 부담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어, 공항에 도착하면 숙소까지 택시로 이동할 생각이었는데, 연구자 B의 지인이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어, 차로 이동을 도와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비행기가 연착되어 저녁 늦은 시간에 공항에 도착하지만, 그분의 도움으로 낯선 곳에서의 고생을 피할 뿐만 아니라, 너무도 고맙게도 마트에 들러 생필품까지 사서 숙소에 안착한다. 몸과 마음이 통하는 회식, 유익하다.

 

회식은 뭐니 뭐니 해도 함께 먹는 음식이 주인공이다. 민주적으로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후보 식당 중 한 곳을 점심 회식 장소로 정한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벌써 각자 온라인으로 주문한 햄버거, 샌드위치, 피자, 파스타 등 다양하고 보기에도 화려한 음식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팀장님 한 말씀이나, 직원들 각자 돌아가면서 한마디는 금물, 테이블마다 스몰 톡(small talk)하며 음식을 맛있게 먹고 일찍 헤어진다. 회식도 중요하지만 점심시간도 소중하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언택트(untact) 시대를 불러오고, 회식 문화도 바꾼다. 원래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중요한 것은 잘 알고 있었다는 듯이, 요즘 직원들은 저녁 회식은 자제하고 퇴근 후 부지런히 집으로 향한다. 선배직원 B는 ‘자존심이 상해서’ 저녁에 일찍 집에 못 들어가겠단다. 퇴근해서 집에 일찍 들어가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니,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무슨, 어떤 자존심을 세우고 사는가, 궁금하기만 하다. 데이터 사이언스(Data Science)의 대가인 연구자 C는, 버추얼(virtual) 회식을 하자고 제안한다. 각자 원하는 음식을 각자의 공간에 시켜놓고, 화상회의 시스템에 접속하여 함께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는 형태다. ‘그 음식 괜찮아 보이네요, 맛은 좀 어때요?’ 대화의 흐름이 가끔 끊겨 답답한 것은 시스템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좀 더 업그레이드된 시스템이 도입될 것이고, 그때는 좀 더 원활한 비대면 회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꼭 회식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람 관계에서 마음이 무질서에 빠지지 않고 바람직한 질서를 유지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우리 목표와 다른 사람의 목표 사이에서 어떤 합치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성공적인 어울림을 가능케 하는 또 하나의 조건은 다른 사람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음식을 먹는 일, 결코 쉽게 볼 일이 아니다.


※ 참고

 

* p106,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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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바이오행정가) 등록 2024.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