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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만 하다 창업에 뛰어든 고군분투기] 실험실에 돌 맞는 청개구리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산포로 2024. 6. 3. 10:25

[연구만 하다 창업에 뛰어든 고군분투기] 실험실에 돌 맞는 청개구리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사람의 일생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래 예측이라는 건 신의 영역인지 개인의 영역이 아닙니다. 올해같이 R&D 자금이 홀라당 날아가는 사태를 작년에 예측하는 건 ChatGPT라도 인간들이 무작위적 감정에 의해 발생하는 사태이기에 전혀 이성적인 대응을 불가능합니다. 아마 R&D 삭감되는 걸 알았더라면 연구의 규모를 줄였거나 시작 자체를 안 할 겁니다. 이렇듯 아무리 안정적인 단계에 있더라도 갑자기 일어나는 비상식적인 권력자들의 변심에 대응하기란 대기업이라도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하물며 모든 상황도 아닌 1-2달 정도의 매출만 끊겨도 급여 주기가 힘든 스타트업 일수록 본인의 잘못도 직원의 잘못도 아닌 천재지변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것도 보험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이런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고 맙니다.

 

당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있어 자금을 어느 정도 확보해 2-3년의 장기 매출 구조도 마련되어 운영의 어려움이 해결하고 아무 걱정 없이 회사의 내실을 다져야 하는 시기인 기억에도 지우고 싶은 2017년에 SAAD 사태가 회사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제 갓 창업한 직원도 얼마 안 되는 스타트업 회사에 SAAD 사태가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나 물어본다면 개인적으로 파산 일보 직전까지 갔습니다라고 대답할 겁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SAAD로 나라가 시끌벅적하고 결국 미사일이 한국에 배치되었을 때 중국에 생산한 물건의 계약금을 치르고 난 뒤 계약에도 없이 갑자기 최종 단가를 깎아주겠다는 조건으로 생산량을 늘려 달라는 요청을 하였습니다. 물론 저도 고민을 해보고 자금 확보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니 그 결재일을 미뤄달라는 요청을 중국에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제품을 잘 생산해서 중국 측에서 보내왔고 뭔가 위험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단가를 절약할 수 있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해 은행 대출까지 얻어 생산된 물건을 받으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한 뒤 대금을 받고 아니나 다를까 일방적으로 중국 생산공장 측에서 계약을 파기한다는 국제우편을 보내왔습니다. SAAD를 배치한다고 중국 내 국내 기업에 대한 제재를 내리지 얼마 안 되는 기간에 일어났습니다. 몇 천만 원이나 되는 현금은 다 떼였고 거기에 준비한 돈은 위약금으로 국내 계약한 업체에 물어줘야 했습니다. 국제 변호사를 선임한다 하더라도 그 소송비용은 몇 천이나 들며 소요되는 시간이나 그 외 추가될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감당은 고사하고 뭘 할 수 있을지 답조차가 없었습니다. 이런다고 정부나 기관에서는 도움을 받기 너무 힘들었고 또 다른 대출을 받으면서 피해 구제 조치로 대응하기엔 쌓이는 빛을 감당하기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걸 대비해서 신용장을 얻어 거래하면 되지 않느냐고도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 거래가 파기된 이전에 몇몇 중국에 거래 대금을 보내기 위해 은행에 시도해 보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한 신용도가 낮은 스타트 업에 몇 백 단위라면 모르겠지만 몇 천이 되는 금액을 내주지는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아야 했습니다.

 

집도 절도 그리고 가족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운 그야말로 대금 회수가 거의 힘든 신용불량자 아니면 한강에서 겨울에 원치 않는 얼음 목욕을 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까지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 시기가 인생에 가장 힘든 시기기도 했고 모든 걸 정리하는 결정을 요구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평생 했던 취미생활이 상황을 역전시킵니다. 앞서 칼럼에서 이야기드렸지만 제 전공은 의생물학입니다. 하지만 취미생활은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하드웨어 연결해서 작동시키는 지극히 공학적인 취미를 가졌고 나름대로 해외 프로그래머 사이트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도 올렸고 제가 지재권 등록한 프로그램도 몇 개 있습니다.

 

이런 이력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몇몇 업체에 용역 업무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완전히 소멸되었던 학생들을 회사 인턴으로 국가에서 재정 지원을 받아 고용해 매출을 일으키기 위한 신규 제품도 개발했습니다. 그 외 현재 회사에 R&D 파이프라인 중에 하나로 자리 잡아 2020년부터 임상 실험을 거쳐 학회 발표하게 된 파일럿 스터디도 이때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용역만으로 회사 미래의 매출을 결정하는 건 무모한 판단하에 중국에 사기당한 이후 약 1년 넘는 기간 동안 개인적으로 수많은 아이디어를 내서 신제품에 대한 테스트를 하였고 동시에 용역도 같이 진행해 대학원 시절처럼 집에 못 들어가는 일이 허다하였습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내가 새로운 물건을 만들 수 있을까부터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이고 앞으로 미래가 있을까 하면서 혼자 미친 듯이 우울해 절대 선택해야 하지 말아야 하는 아찔한 생각까지 수없이 하였습니다. 이게 혼자 사는 인생이라면 뭘 하든지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가족이 있는 상태에서 가족에 평생 짐이 될 행동을 한다는 건 도저히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필드 테스트까지 끝내고 난 다음 납품에 성공했고 납품 후에도 계속 오류 수정 작업을 해서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살아남아 갈 수 있게 매출이 나오는 자기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이게 참 그렇습니다. 창업을 하게 되면 어려움이 있을 수는 있고 그 어려움을 넘지 못하면 회사를 접어야 합니다. 젊을 때는 매출이 안된다 판단하면 회사를 정리하겠지만 40대가 넘어가면 내가 망가지더라도 과감하게 회사를 운영할지 아니면 그냥 새로운 직업을 찾을지에 대한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 기준으로 저같이 랩 경험이 아예 없는 40대라면 연구소에서 절대 안 써줍니다. 경험도 없는 데다 연구 실적도 없으면 5년 내에 제로면 더욱더 취업에 대한 문이 좁아집니다. 즉, 전공을 살리면서 회사를 가느냐 아니면 아예 R&D에서 벗어나서 앞으로의 인생에 연구란 없다는 선택을 하는 것뿐입니다. 

 

여기서 선택에 대한 건 본인이 해야 하겠지만 지속이라는 결정을 해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 이걸 어떻거든 풀어나가는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데 기술 기반의 창업을 할 경우 제일 중요한 건 창업을 주도하는 사람이 기술력을 가지고 용역으로 어려움을 때우거나 영업으로 자금을 회전시켜야 합니다.

 

이게 안되면 회사라는 건 유지하게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창업 이후 중국에서 생산공정 감수하느라 생산에서 무작위 샘플 테스트까지 혼자서 수없이 굴러봤던 경험도 있었고 영업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몇몇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셔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전문가가 지금 매출을 일으키고 있는 제품에 대한 단기간의 고도화는 불가능해 일정한 이익 외에 IT 기기의 특성상 단기간의 다양한 라인업의 신제품 출시는 인원과 자금 그리고 시간적인 문제로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따라서 회사를 장기간으로 존속하기 위한 결정을 하였습니다. 어차피 좀 더 제품에 대한 고도화를 할 수 있는 건 제 전공 능력이며 최소한의 R&D 자금을 투여해 효과를 낼 수 있는 의료장비 신제품에 매출의 이익금을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게 매출과 더불어 저의 인생에 상당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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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ibric.org) Bio통신원(김위) 등록일2024.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