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엄마과학자창업도전기] 26화. 연구자의 마음을 버리면 대표가 된다

산포로 2024. 10. 8. 14:17

[엄마과학자창업도전기] 26화. 연구자의 마음을 버리면 대표가 된다

 
동료 대표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연구자 출신 대표들이 들어본 공통적 멘토링 멘트가 있다. 
 
"연구자의 마음을 버려야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구체적인 워딩은 각각 다르지만, 맥락은 다 비슷했던 듯하다. 
 
대체 연구자의 마음은 대표로 거듭나는 것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대체 스타트업 대표는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연구자의 티가 벗어나야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것일까?

 

초기 회사를 운영하며 가장 많은 고민을 하는 부분이 이런 지점이었다.

사실 창업 초기, 다년간의 연구 경험으로 만들어진 강철 멘털덕에 수많은 탈락에도 좌절하지 않았고, 여러 시비도 잘 이겨냈던 듯하다.

그러나 사업 초기 연구자의 티를 벗지 못했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 본다면, 나는 과거와 달리 연구자보다 이제 대표에 더 가까운 모습을 갖추게 된 듯하다.

 

사실 업무상 연구자로 있던 시절이나, 대표로 있는 지금이나 업무상 큰 차이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연구소의 책임자가 해야 하는 업무와 연관되다 보니 별 수 없이 업무는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자의 자아 반, 대표자의 자아가 반씩 혼합된 반반 상태로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초기에는 비슷하던 업무의 결이 조금씩 변화하며, 나의 자아 역시 반반 상태가 아니라, 자아 분리가 진행되고 있다. 서로 다른 두 업무를 보다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연구자와 대표의 업무 성격이 달라지게 될까? 우선 업무를 수행하는 목표가 다르다. 연구자는 회사의 연구를 수행하되, 해당 연구가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목표는 연구 자체를 수행함에 있다. 이 과정에서 연구의 성공과 실패 모두 회사의 자산이 되므로 우선 될 때까지 도전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표의 입장에서 연구는 사업화에 가까워야 한다.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으로 연구를 수행하여 사업화에 적용하는 것이 가장 큰 성공이 된다. 물론 해당 과정에서 실패를 자산으로 보는 것은 동일하다. 다만, 대표의 연구는 돈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 아마도 연구자의 목표 면에서는 다를 수밖에 없다. 회사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에 있다. 그 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재화를 팔게 되고, 기술 기반 기업은 그 재화가 기술이 되는 것뿐이다.

 

연구자와 대표의 업무는 이것만 다른 것이 아니다. 연구자는 연구의 큰 그림을 보고 설계해야 하나, 대표는 연구의 큰 그림을 다른 그림에 연결시켜야 한다. 사업화라 부르는 큰 그림 안에 연구가 들어가야 하므로 이때 어떤 연구에 투자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비용을 설계하는지 전반적인 것들을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한다. 연구의 가치를 중점에 두는 연구자와는 입장이 완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결국 대표는 돈을 벌어 회사를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입장이 다르니, 대화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거 연구자의 자아가 강했던 사업 초기, 대화가 매우 솔직했던 기억이 있다. 실험의 성공, 실패에 대하여 가감 없이 이야기했고, 100% 확신을 하지 않는 연구자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여 확신하지 못한다는 대답을 많이 했던 듯하다. 100% 확실한 것이 없는 불확실성이 강한 연구의 특성상, 확실해지지 않으면 이야기를 못하던 방식은, 연구자가 아닌 이들과 이야기할 때, 오히려 의심을 사게 했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사업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는 이미지를 주기도 했었다. 그래서 자문을 해주던 많은 주변 사람들은 나와 공동대표에게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곤 했었던 듯 하다. 

 

이런 경험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나는 연구자의 자아와 대표의 자아를 분리하여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과거처럼 불확실한 표현은 하지 않고, 담백하게 현재 하고 있는 일만 이야기하게 되었다.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연구자의 자아를 버리니, 될 건 하고 안 될 일은 빠른 포기도 가능해졌다. 어쩌면 대표가 되면서 효율성은 더 증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성격도 자아에 맞춰 변했다. 연구자 모드와 대표자 모드가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 상황인데, 연구자 모드일 땐 호불호가 강하고, 대표자 모드일 땐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거나, 아예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가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연구자 모드에서는 연구원들에게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을 하라 하지만, 대표자 모드일 경우, 안돼_절대_글쎄_나중에 라는 표현이 더 많이 사용된다. 마치 아이가 무언가를 요구할 때 거절하는 부모처럼 말이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부정적 표현은 내부에서 사용되고, 외부에서는 무한 긍정적 표현을 사용하며 우리 회사가 잘 되어 가고 있음을 어필한다는 점이다. 마치 앞에서는 혼내고 뒤에서는 칭찬하던 우리네 부모님처럼 말이다.

 

앞에서 직접적인 표현을 잘하지 않게 된 계기는, 대표의 말에 담긴 힘 때문이었다. 간혹 대표의 칭찬이 인사평가로, 혹은 대표의 의례적인 대답이 확정적 약속이 되어 지시 사항이 되거나 혹은 계약사항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를 처음부터 피하기 위해선 직접적이거나 확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스스로를 돌아볼 때 점점 더 의뭉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현타가 오기도 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해 달려가는 스타트업 대표의 삶에서 내가 지켜야 하는 선을 지키며 의뭉스러운 너구리가 되는 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아마도 하루하루 연구자 모드에서 멀어지지 않을까 한다.

 

대표가 될 생각이 있는가? 일단 자아 분리가 가능한지 확인해 보라. 연구자 모드와 대표자 모드를 오가며 지킬앤하이드가 될 수 있을지, 혹은 한쪽 모드로 살아갈 수 있을지 그래도 살만하다 싶을지 고민해 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타를 견딜 자신이 있다면, 어쩌면 당신은 대표자 모드에 재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

 

BRIC(ibric.org) Bio통신원(윤정인) 등록 2024.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