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리포트]기후 변화로 서식지 잃은 야생동물의 반격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 네이처 기후 변화에 연구 결과 발표
인간과 야생동물 갈등 49건 중 80% 이상이 기후 변화 탓
야생동물이 지니던 바이러스 변이로 신종 감염병 위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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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야생동물이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후 변화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식량과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이 사람이 사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간과 야생동물의 갈등으로 인명·재산 피해는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조류인플루엔자(AI) 같은 감염병 창궐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브리아나 아브라힘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28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기후 변화’에 “기후 변화로 한정된 자원을 두고 인간과 동물의 갈등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예로 든 건 2009년 아프리카 탄자니아다. 킬리만자로산이 있는 탄자니아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고, 코끼리떼가 농장을 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가뭄으로 먹이를 찾으러 마을에 내려온 코끼리는 농작물을 먹고, 수도관을 파괴해 농장에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마을 주민들은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코끼리 여섯 마리를 언덕 위로 몰아냈고, 코끼리들은 모두 추락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연구진은 이외에도 히말라야 설산 지대에 사는 눈표범이 지구 온난화로 먹이를 찾지 못해 사람이 사는 마을로 내려와 인명 피해를 입히거나, 바다 수온 상승으로 혹등고래의 대규모 이동 시기가 바뀌면서 선박과 충돌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이처럼 인간과 야생동물 서로 간에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계속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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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힘 교수는 “가뭄 같은 기후변화로 나타나는 인간과 동물의 갈등은 점점 장기화되고 있다”며 “인간과 야생동물의 상호작용을 단순히 행동학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기후 변화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통해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구진은 전 세계 6개 대륙, 5개 대양에서 일어난 인간과 야생동물의 갈등 사례 49건을 분석해, 이 중 80% 이상이 기후 변화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구진이 수집한 사례에서 인간과 야생동물이 부상·사망한 사례는 각각 43%, 45%에 달할 정도로 피해 규모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과 야생동물 사이의 갈등은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과 바다에서 발견됐고, 비교적 경제 수준이 낮고 식량 부족을 겪는 아프리카 지역이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아브라힘 교수는 “인간과 야생동물이 갈등을 겪는 사례는 45%는 식량 부족으로 인한 문제”라며 “아프리카는 이상기후로 가뭄, 산불, 홍수 피해를 많이 입으면서 야생동물과 갈등도 가장 많이 겪고 있다”고 말했다.
야생동물과 접촉이 늘면서 인간에게 감염되지 않던 바이러스의 변이가 감염병을 일으키는 사례도 늘고 있다. 야생동물을 통해 인간에게 감염된 바이러스는 인간이 겪지 못했던 새로운 감염병을 일으킨다. 지난 2009년 박쥐와 공생하던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코로나가 대표적이다.
아브라힘 교수는 “기후 변화로 인한 먹이, 서식지 같은 자원 부족은 인간과 야생동물 종 사이의 경쟁과 서식지 침입을 유발한다”며 “이로 인해 병원성 바이러스는 더 다양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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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18년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해 연구개발(R&D)을 서둘러야 하는 감염병’에 질병X를 추가했다. 야생동물로부터 발생한 미지의 감염병이 인류 최대의 위협 요인 중 하나라는 의미다.
송대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기후위기로 인간과 야생동물의 접촉이 늘면 지금까지 겪지 못한 새로운 감염병이 나타날 가능성도 높아진다”며 “이를 미지의 감염병이라는 의미에서 ‘질병X’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캄보디아에서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사람이 숨진 사건으로 야생동물에 의한 감염병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11세 소녀가 이달 22일 조류인플루엔자 감염으로 숨졌다고 23일 밝혔다.
야생동물에서 전파된 감염병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는 범용 백신 개발과 원 헬스(One Health) 정책을 통한 예방이 강조되고 있다. 송 교수는 “인간의 건강을 인간만의 관점으로 보지 않고, 자연과 동물의 건강까지 연결해 하나로 보는 것이 원 헬스의 개념”이라며 “기후 변화로 야생동물 접촉이 늘 것으로 보이면서 감염병 예방을 위해 탄소중립 달성, 생태계 보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Land Use Policy, DOI : https://doi.org/10.1016/j.landusepol.2014.10.018
Nature Climate Change, DOI : https://doi.org/10.1038/s41558-023-01608-5